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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82)]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책을 읽읍시다 (1182)]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성석제 저 | 문학동네 | 284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흔히 짧은소설은 ‘엽편소설(葉篇小說)’ ‘장편소설(掌篇小說)’로도 불린다. 그 분량의 단출함으로 인해 ‘나뭇잎 한 장’과 ‘손바닥’에 비유한 것이지만, 성석제의 손바닥소설은 다 읽고 나면 ‘장편소설(長篇小說)’이 주는 감정에 부럽지 않은 인생에 대한 통찰과 감동을 선사한다.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은 지긋지긋하게 사랑스러운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성석제식의 해부도이자, 요즘 ‘문학’과 ‘책’이 다소 어렵고 멀어 보인다는 이들에게도 거침없이 건넬 수 있는 유쾌한 프로포즈이다.

 

성석제는 신작이 담긴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과 함께 데뷔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와 성석제 짧은소설의 백미로 평가받는『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개정판을 함께 펴냈다.

작가는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 ‘몰두’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다. 그는 언제나 무언가에 미치고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어 열중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 자체가 되는 사람들에 집중해왔다. 이번 소설들에는 ‘적당히’ ‘얼추’ 살아가지 않고 ‘끝까지 가는’ 인간들의 다양한 풍경이 담겨 있다.

 

「낙타 경주」는 아랍에미리트에서 펼쳐지는 낙타들의 경주와, 그 경주를 따라 차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출발선에 제대로 서려고도 하지 않고 신경질을 내며 생똥을 싸대는, 무표정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낙타들의 엉망진창 경주와 그 옆에서 차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의 열정 넘치는 광란의 질주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화자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그 장면은 그저 피식 웃고 지나칠 만한 가벼운 농담 같은 풍경만은 아니다. 그들의 경주는 “그저 그러고 싶어서, 좋아서 하는 것”이며, 그래서 더욱 “격정적이고 진지”하다. 화자는 그 ‘웃기는’ 풍경에 담긴 ‘인간성’을 발견해 독자들 앞에 펼쳐 보인다.

 

쓸데없어 보이는 짓, 돈이나 명성과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일을, 거기에 미쳐서, 그것을 너무도 사랑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쓸데없으므로 인간적이다. 같은 일을 무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결국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언제나 그전과는 조금 달라진 채로 돌아온다.

 

「아무도 모르라고」는 아무도 모르게 노래를 연습해 같은 반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문제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화자는 어느 날 학교 주변 폭력계의 실력자로 알려진, 평소 말수가 적은 친구의 속마음을 듣게 된다. 그는 반드시 대학에 진학하고 싶고, 때문에 예능 쪽으로 특기를 기르고 싶다고 말한다. 한 번도 그 친구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화자는 친구의 이야기를 무심하게 들어넘긴다. 그로부터 1년 뒤 2학년 봄소풍 장기자랑에서 그 친구는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아무도 모르라고]를 부르며 반 친구들 앞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자랑하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음악 선생님을 찾아가 대학에 가고 싶고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한번 마음먹은 것을 바꾸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 꾸준히 실천한다는 조건하에 아무런 대가 없이 음대에 진학할 수 있는 노래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 간절하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생에 대한 사랑을, 아찔하고 황홀한 인생의 단면을 엿본다.

 

그러나 언제나 ‘너무’ 열심히, ‘너무’ 한참 더 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이 책에는 성과주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기 착취를 거듭하고 있는, 지칠 대로 지치고 피곤할 대로 피곤한 우리 모두를 향한 이야기도 있다. 너무 열심히 살다가 너무 고단해져버린 우리들의 자화상, 바로 「쉬어야만 하는 이유」와 「길 위에 잠들다」다.

 

「쉬어야만 하는 이유」의 화자는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단골 선술집 맞은편에 새로 생긴 일식집을 발견한다. 어떤 가게인지 살피려고 해도 정기휴일이 월요일, 화요일, 이틀이나 되니 알 길이 없다. 직장인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파는 가게에서 배짱도 좋게 평일에 이틀이나 쉬다니, 하고 생각한 화자는 꿀벌에 대해 떠올린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나 포식자의 공격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일찍부터 일을 시작한, 즉 일생의 3분의 2를 놀지 못하고 3분의 1만 놀았던 일벌은 과로로 수명이 짧아져 죽어라 일만 하다 일찍 죽는다. ‘번아웃 증후군’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다들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너무 빨리 지쳐버렸는지도 모른다.

 

한편 「길 위에 잠들다」는 2005년 11월 24일, 낮 12시 41분 창경궁 동남쪽 담장 바깥 작은 공원의 나무 아래 손수레 안에서 환경미화원들이 입는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고단하게 잠든 모습에 대한 묘사로 시작해 그 남자가 계속해서 평화롭게 자고 있는 것으로 끝이 난다.

 

주황색 작업복과 담에 기대어져 있는 빗자루, 손수레로 보아 주인공은 새벽부터 오전까지 쓰레기를 치우며 고된 노동을 견뎌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숨 돌릴 만한 짬이 생긴 정오, 그는 미소까지 지어가며 길 위에서, 손수레를 점령한 채 자고 있다. 이 달콤한 휴식을 위해서는 세상 날씨마저 따뜻하고 시계조차 더디게 간다.

 

성석제의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인생의 무게를 지고 있지만, 그에 대해 현학적으로 떠들어대거나 ‘인생의 고뇌’를 운운하며 엄살부리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낸다. 누구는 귀엽게, 또 누군가는 괴팍하게, 혹은 무모하게, 묵묵히, 당연하다는 듯이…… 그 나름의 방식들은 모두 압도적이고 경이롭다.

 

도대체 노인은 석판을 어디까지 지고 올라가야 하는 것일까. 1700여 계단 가운데 몇 번째가 잘못되었을까. 지나치면서 본 노인의 눈에는 무구한 미소가 어려 있다. 그 미소, 낯선 사람 때문에 생겨난 수줍음 때문일까. 압도적이다.

 

성석제의 소설은 이 압도적인 세계 속에서 소모되고 닳아가는 우리들의 시간과 인생을 손 안에 꼭 쥐었다가, 인간적인 것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눈앞에 슬며시 펼쳐 보인다. 오직 성석제의 소설들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우연’과 ‘찰나’의 서사는 우리의 마음에 순식간에 스며든다.

 

 

작가 성석제 소개

 

1995년 『문학동네』에 단편소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첫사랑』 『호랑이를 봤다』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참말로 좋은 날』 『지금 행복해』 『이 인간이 정말』 『?리도 괴리도 업시』『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아름다운 날들』『인간의 힘』 『도망자 이치도』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투명인간』, 산문집 『즐겁게 춤을 추다가』 『소풍』 『농담하는 카메라』 『칼과 황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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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