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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27)] 그 남자의 소설



그 남자의 소설

저자
이선영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 2012-05-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여자, 세상에 나설 수 없었던 남자!한국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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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127)] 그 남자의 소설

이선영 저 | 자음과모음(이룸) | 344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파격적인 1억 원의 상금으로 화제를 모았던 제3회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 『천 년의 침묵』의 작가 이선영의 2년 만의 장편소설. 전작이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역사와 신화를 오가며 수학자 피타고라스와 그가 남긴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해 매혹적인 스케일의 상상력을 펼쳤다면 이번에는 한국 문학계와 ‘고스트 라이터’를 소재로 삼아 평단과 출판업자, 작가들이 벌이는 문학 권력에 대한 이전투구를 보여준다.

 

메이저 일간지에서 주최하는 문학 공모전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소설가 ‘리영’은 그 후로도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평가와 시장에서의 판매를 모두 거머쥐며 ‘베스트셀러 제조기’라는 닉네임을 얻고 있다. 다섯 번째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던 그녀에게 어느 날 국내 최고의 영예로 평가받는 ㅇㅇ문학상에 자신이 올해의 후보로 선정됐다는 희소식이 전해진다.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냈다고는 하지만 고작 등단 6년차에 불과한 리영 입장에서는 후보자로 선정되었다는 것도 파격적인 일이다. ㅇㅇ문학상 최종심이 진행되기 전에 이번 신작이 출간돼 다시 한 번 호평을 얻으면 수상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거라는 주변의 귀뜸에 리영은 지지부진한 집필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결심한다. 리영은 강원도 모처에 자리한 비밀스러운 별장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휠체어에 앉은 시커먼 두꺼비’ 같은 모습을 가진 용민이 살고 있다. 리영은 용민에게 한 가지 제안을한다.

 

작가는 처음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나중에는 해야 할 이야기를 쓰며 창작력이 고갈된 막바지에는 쓰면 ‘먹힐 것 같은’ 이야기를 내놓는다고 한다. 단 한 편의 신춘문예 당선작을 제외하면 그후로 자기가 쓴 모든 작품을 타인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그것이 만인의 찬사를 받는 것을 조용히 지켜봐야만 했던 한 남자가 있다. 다섯 번째 작품을 쥐어짜내듯 완성하고 나서 더 이상 자신에게 남은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그는 직감한다. 이제 그가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자신의 아름다운 누이, 자신의 소설에 대한 공식적인 소유권을 지닌 베스트셀러 제조기 리영에 대한 애증과 죄의식뿐이다.

 

『그 남자의 소설』은 작가 개인의 매력과 문학이라는 숭고한 판타지를 통해 상업성을 극대화하는 문단을 놓고 냉소적인 시선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그 안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을 파헤치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이란성 쌍둥이 남매인 ‘리영’과 ‘용민’의 관계 설정은 특히 더 나은 삶에 대한 밑바닥 인생들의 갈망이 지적 욕구와 세속적 허영 두 축으로 어떻게 나뉘는지 완벽하게 보여준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명예를 얻기 위해 사람을 속이는 두 남녀 주인공들은 플라톤의 『향연』에서 등장하는 남녀 한 몸의 인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스타 작가를 발굴하고 그와 함께 권력을 키워간 평론가와 문학 출판사의 행태에 대한 묘사는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며 냉소적이고 세부적인 원고 집필과 출간 계약, 작가와 평론가, 편집인, 기자 등을 다루는 디테일한 설정 또한 흥미를 더욱 자극하는 볼거리다.

 

작가 이선영 소개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문예창착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생후 8개월에 소아마비를 앓았다.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있던 체육 시간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과 함께 보내며 문학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스물여섯에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해 작가의 꿈을 키웠다. 어린 시절 깨달은 이야기의 황홀은 이선영에게 하나의 사명과도 같았다. 서른이 되어서도 ‘장래희망’은 작가였지만 십여 년간 중학교 학생들에게 수학을 지도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다. 수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해 수학사를 다룬 책을 밤새 탐독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어느 날 한 줄의 글이 이선영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대학원에 진학해 창작을 공부했고 단편소설을 쓰며 필력을 키워나갔다. 고대 그리스와 피타고라스학파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눈을 감고도 소설의 주 무대인 크로톤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하늘빛과 바람의 냄새, 그리고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하루하루 살아낸 그는 마침내 마흔이 되어 첫 장편을 완성했고 이 년여에 걸친 수정 작업 끝에 작품을 응모했다. 그리고 2009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했다.

 

『천 년의 침묵』을 받아든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수학적 '정보'가 인문학적 '성찰'로 승화되면서 고급 지적(知的) 소설의 경지를 보여준다.”, “철학이나 과학을 넘어 이제는 '수학'까지, 한국소설의 영역이 확대된 대표적 증좌!” 감히 시도한 적 없는 세계적 스케일로 이천오백 년 전의 고대 그리스의 디테일을 생생히 그려낸 『천 년의 침묵』은 작가 이선영의 세계였고,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기도 했다. ‘첫 줄의 희열’ 때문에 글을 쓴다고 말하는 이선영. 이제 그토록 원하던 작가가 된 그는 또다시 그의 심장을 뛰게 할 새로운 첫 줄을 꿈꾼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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