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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1354)] 스페이스 보이

[책을 읽읍시다 (1354)] 스페이스 보이
 
박형근 저 | 나무옆의자 | 232| 13,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스페이스 보이는 기발한 상상력과 위트 있는 문장으로 이제껏 우리가 상상해왔던 우주에 대한 이미지를 시침 뚝 떼고 무너뜨리며 기억과 사랑, 인간다움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주인공이 우주에 떨어진 날부터 약 5개월 동안 벌어진 일들을 시간순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어디에도 없는 아찔한 우주+지구 오디세이가 될 것이다.

 

소설의 화자인 김신은 모든 것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 우주인 오디션에 선발되어 각종 검사와 무중력 훈련을 마친 그는 ISS(국제우주정거장)에서 2주 동안 머물며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로켓이 발사되고 ISS에 도킹한 순간 그는 정신을 잃고 닷새 만에 전혀 엉뚱한 곳에서 깨어난다. 그곳은 우주라기엔 놀랍도록 지구와 똑같은 곳이다. 여기가 우주인가 지구인가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모습을 한 자가 나타나 말한다. 여기는 우주가 맞고 자신은 외계인이며 이곳은 지구의 미적 기준에 따라 꾸며놓은 거대한 세트장이라고. 그는 지구를 본뜬 세계에 떨어진 김신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사라진다.

 

이후 김신은 이 낯선 곳에서 기묘한 체험을 한다. 칼 라거펠트 영감은 귀신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읽고 언젠가 본 적이 있으나 기억은 나지 않는 익숙한 것들이 그의 눈앞에 계속해서 등장한다. 낯설었던 세계는 그가 전기 숲에서 전자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점점 명확해져간다. 전자기타 사운드는 뇌에 가하는 전기 자극이며 숲의 나무들은 그 자극을 받는 뉴런이기에, 마치 전기 자극으로 치매 환자의 기억이 살아나는 것처럼 그의 기억도 선명해진 것이다.

 

그는 비로소 이 세계의 모든 사물들과 곳곳의 장치들이 자신의 기억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고 어쩌면 이 세계가 자신의 뇌 속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우주에 왔는지 알고 있는 칼 라거펠트와 함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세계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험난하고 구불구불한 고랑과 이랑을 지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정원을 마주친 그는 그 익숙한 향기들이 모두 그녀와 함께한 것들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어쩌면 그가 여기에 온 진짜 이유였을 그녀. 마침내 해마를 형사화한 끈적한 늪에 도착한 그들. 그는 그녀의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작가가 펼쳐 보이는 우주와 외계 생명체, 기억과 뇌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은 페르미 패러독스의 세 번째 가설을 전제로 한다. 우주에는 인류와 비교할 수 없는 거대 문명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존재하는데 그들은 인류를 찾아냈지만 인류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아 숨어 지낸다는 가설 말이다. 그들은 우주 탐험을 위해 지구 밖으로 나오는 인간을 몰래 데려가 뇌를 열람하고 인간의 기억을 그대로 현실에 옮겨 공간을 세팅하며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가장한다.

 

또 인간을 지구에 돌려보낼 때는 자신들과 함께한 시간을 기억에서 깨끗이 지우며 그 대가로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 그들의 능력으로는 로또번호를 몇 개 챙겨주는 것은 일도 아니고 줄기세포와 유전자 지도를 손봐서 아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인간의 뇌를 해독하고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존재다. 기억의 일정 구간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뛰어난 기억재단사일 뿐 아니라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해 특정 분야의 천재를 만들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모든 것을 잊지 위해 우주로 간 주인공이 능력자 외계인을 만난 것은 놀랄 만한 행운이라 해야 할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억을 그들에게 맡기지 않기로 결심한다.

 

처음에 그는 그저 지구에서의 삶이 지겨워서 모든 걸 잊기 위해서 지구를 떴다고 말하지만 우주 생활을 하는 동안 전기 자극으로 기억이 선명해지자 가슴속이 먹먹하고” “술 마시면 목구멍까지 올라와 삼키려 해도 넘어가지 않는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차버리고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더욱 선명해진 기억과 마주하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과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도 분명히 자각한다. 하여 그는 지구로 돌아가기 전 소원을 말하라는 외계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1028일에 폭우나 한번 내리게 해줘요.”

 

자신의 뇌 속일지도 모르는 우주에서의 생활도 흥미롭지만 이 소설의 백미는 주인공이 지구로 귀환한 후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그는 외계인의 존재와 문명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어떤 기억도 지우지 않고 지구로 돌아온다. 지구에서 그는 이미 엄청난 유명인사가 되어 있다. 외계인이 세팅해준 대로 그는 ISS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실제로 겪은 것처럼 술술 떠들고 미디어는 이를 빛의 속도로 전파한다. 대중들은 그에게 열광하고 그의 SNS 팔로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TV 출연 및 인터뷰, 광고 요청이 쇄도한다.

이 점입가경의 스타 마케팅은 지금 여기 연예산업의 메커니즘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돈 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여념이 없는 연예기획사도, 밤낮으로 그들을 쫓는 미디어도, 그것을 보고 열광과 비난 사이를 오가는 대중도 모두 숨이 가쁘다. 이 시스템에서 주인공 김신이 자기 역할을 너무도 훌륭히 해낸 건 외계인이 심어준 도움 덕분일 터. 그러나 태풍처럼 불어닥친 변화에 그저 몸을 맡기고 흘러가던 그도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며 문득 깨닫는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지?”

 

박형근은 201120세기 소년으로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작가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소설미학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데뷔한 그가 그로부터 7년 후 두 번째 장편소설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발산하며 독자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스페이스 보이는 기발한 상상력과 위트 있는 문장으로 이제껏 우리가 상상해왔던 우주에 대한 이미지를 시침 뚝 떼고 무너뜨리며, 기억과 사랑, 인간다움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주인공이 우주에 떨어진 날부터 약 5개월 동안 벌어진 일들을 시간순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어디에도 없는 아찔한 우주+지구 오디세이가 될 것이다.

 

 

작가 박형근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120세기 소년으로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2018스페이스 보이로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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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