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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498)]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책을 읽읍시다 (1498)]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김상아 저 | 푸른숲 | 268| 14,8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이 책은 미성숙했던 한 성인이 작고 약한 두 생명과 살아가면서 가까스로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서로를 단숨에 사랑하지 못했던 어른과 개가 십 년 넘게 시공간을 함께하면서 신뢰를 쌓기까지, 종이 다른 아기와 개가 서로를 보듬고 이끌어주기까지, 저자는 세 생명이 각자를 알아가고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때로는 깊숙이 개입한 1인칭 관점에서, 또 때로는 거리를 두고 타자의 시선에서 찬찬히 읊는다.

 

생명을 돌본다는 건 오로지 혼자였던 내 삶에 책임의 무게가 실리는 것과 같다. 아기와 개, 두 생명의 보호자로 살아간다는 건 이제까지의 나로만 살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말할 수 없는 이끌림에 안락사를 일주일 앞둔 어린 개를 데려온 저자는 개와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찬찬히 정이 들어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이가 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겹겹이 쌓이는 시간의 틈에 희로애락을 바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언젠간 그 시간에 끝이 보이게 된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이제 더는 함께할 수 없음을 어느 순간 직감하게 된다. 개의 수명은 고작 15년 남짓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과정까지 한 사람의 삶 전반을 밀착해서 접하는 일이 흔치 않다. 그래서 개를 비롯해 수명이 짧은 다른 종의 일생을 본다는 건 삶의 다양한 단면을 미리 겪게 되는 셈이다. 유한한 삶 안에서 그 생명과 관계된 사랑, 기쁨, 짜증, 분노, 후회, 슬픔, 그리움 같은 여러 감정들을 비교적 단시간에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부대끼면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대학 시절 데려온 개는 휴지 두루마리 한 개의 무게만큼 가볍고 작았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내내 개는 저자 곁에 있었다. 저자가 혼자 살던 시절, 우는 저자를 달래주는 일도, 하루의 고단함을 들어주는 일도, 언젠가 집으로 돌아온 저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도 늘 개의 몫이었다. 개는 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시선으로 주인을 바라봤다. 적응할 만하면 바뀌는 거주지 때문에 낯선 곳에 익숙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했고, 갑자기 태어난 아기의 거침없는 애정 표현에 무덤덤해져야 했다.

 

개를 집으로 데려오는 건 사람의 일이지만 그 사람과 그 집의 특성에 맞춰가는 건 팔 할이 개의 일이다. 수년의 시간을 함께한 개는 그래서 이제 단순한 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새신을 사면 헌신은 쉽게 내버릴 수 있지만, 가족은 새로운 가족이 들어온다고 해서 헌신짝 버리듯 버릴 수 없다.

 

개는 삶과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다. 대부분 인간이 개의 생과 사를 결정한다. 우리가 예쁘다고 개를 데려오는 것은, 개에게 삶을 불어넣어주는 일이다. 우리가 늙었다고 혹은 말을 안 듣는다고 개를 버리는 것은, 개를 생애 마지막 페이지 가장 끝자락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사람은 어른이 되면 제 살길을 찾아 나선다. 엄마의 돌봄이 끝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개는 다르다. 개가 제 살길을 찾아 나서기에는 살아내야 할 환경이 너무나 척박하다. 그래서 개들은 죽을 때까지 그렁그렁한 선한 눈망울을 지니고 산다. 돌봄이 필요하다고 온몸으로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의 대상은 가족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사회에서 만난 동료가 되기도 하고, 옆집에 사는 이웃이 되기도 한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와, 산에서 만난 참새와 관계를 맺기도 한다. 아기와 늙은 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종을 떠난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즉 싸구려 풀로 붙여놓은 듯 금세 떼어지는 관계만 만들어온 건 아닌지, 그 관계 안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인지, 타인과 나, 다른 종과 나 사이에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어림잡아 열세 살이 되어버린 개는 앞으로 얼마나 곁에서 살게 될지 알 수 없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리는 그때가 오기 전, 우리가 순간순간 잊고 사는 수많은 공백을 지금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는 사랑스런 존재와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작가 김상아 소개


하루에 배가 한 번 오가는 섬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시골 분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왔다. 새벽 세 시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학교엘 다녔다. 학교에서는 늘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나면 소설책을 읽었다. 글 쓰는 학과인 줄 알고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나중에서야 문예창작학과와 착각했음을 깨닫고 한동안 방황을 했다. 동남아시아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치고 귀국 후에는 라디오 구성작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인 남편, 그리고 11견과 함께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 늘 갈망했던 절친이 셋이나 생겼음에 감사하며 이들이 바닥에 떨구는 보석 같은 말들을 주워 담아, 종이에 옮기는 일을 한다. 글 쓰는 사이트, 브런치에서 목요일 다섯시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한 주간 가장 지치는 목요일 다섯 시 쯤 읽으면 좋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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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