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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556)] 그라운드제로

[책을 읽읍시다 (1556)] 그라운드제로

이거옌 저 | 남혜선 역 | 알마 | 472| 16,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무색무취의 소리 없는 공격자 방사능으로 한순간에 유령 도시가 된 타이베이. 대만 북부 지역이 폐허가 된 가운데 정부는 대만 남부 타이난으로 천도를 결정하고 예정된 총통 선거도 일 년 반 미뤄진다. 대참사의 원인은 대만 북부의 제4원전을 무리하게 강행한 탓이다. 그러나 역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번진 이 원전 사고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다.

 

그라운드제로는 원전을 둘러싼 정치적 술수와 국가 권력의 민낯을 맞닥뜨린 한 인간의 근원적 공포와 저항을 통해 인류 문명에 대한 맹신과 오만을 날카롭게 비판한 미스터리 역작이다. 프랭크오코너 국제단편문학상과 맨아시아 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가 이거옌은 이 작품으로 중국어권국제SF협회가 수여하는 장편소설상을 받았고, 우줘류 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으며, 2014년 타이베이도서전 대상작 후보에 올랐다.

 

대만 북부에 위치한 제4원전이 처음 상업 운전에 들어가는 날, 비가 내리는 스산한 아침 원전의 엔지니어링 팀은 이유 없이 출근을 제지당한다. 엔지니어 린췬하오는 팀원으로부터 아무 내용이 없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곧이어 팀원 전원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그리고 사고 발생으로부터 이 년 뒤, 홀로 살아남아 기억을 잃은 린취하오는 병원 침상에서 깨어난다.

 

진실에 닿을 실마리는 끝없는 환영과 악몽 이미지뿐. 린췬하오는 당국의 감시 아래 꿈 이미지 복원기를 통해 사랑하는 이들이 스러져간 절망적 광경을 한 컷씩 기억해낸다. 뒤틀린 공간, 악령과도 같은 사람들의 이미지들,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온화한 사랑의 빛깔로 가득 찬 풍광들을 오가며 거대한 음모에 가려진 진실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뜨거운 열기를 더해가는 대만 총통 선거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소설은 주인공 린췬하오가 기억을 잃은 시점인 원전 사고 발생일을 기준으로 두 시간대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대참사를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가운데, 기억을 잃기 전 결혼을 앞둔 린췬하오의 눈에 꿈결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웠던 타이베이와 북부 해안은 참사 이후 알 수 없는 존재에 쫓기며 무의식에 새겨진 단서를 찾아 헤매는 황량한 무대로 전환된다.

 

찬란한 빛이 창의 커튼을 들어 올리는 광경이 마치 아름다운 맹세가 입술 사이에서 입 밖으로 나오려는 모습처럼 느껴졌던 따듯한 방은 실은 방사능이 광활한 공간을 소리 없이 지나쳐 둘의 연약하고 의식 없는 몸을 뚫고 들어가 체내를 할퀴고 상처를 남긴 곳이었다. 이 공간은 거꾸로 매달린 사막, 거울 호수 속의 자갈이 가득한 황량한 들판, 빙하의 틈에 자리한 우림으로 향하는 창문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악몽이 된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추리 과정에 별안간 크레바스처럼 뚝 떨어지는 무의식의 강렬한 묘사들은 이상하게도 사랑스럽던 과거의 풍경들을 닮아 있다.

 

모든 것이 파멸된 공간으로부터 축조한 환상적 이미지들을 통해 작가가 겨누는 것은 인류 문명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견고한 맹신이다. 동시에 이 소설은 재난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불안과 의심을 거둔 채 계속해서 희생당할 뿐인 사람들에 대한 진혼곡이다. 그러나 작가는 디스토피아 풍경과 대재앙의 진실을 성실히 그려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공간과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가능한 다른 세계를 치밀하게 묘파하며 우리의 선택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정확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이거옌은 이 작품을 “3센티미터의 위험한 자기부상磁氣浮上의 거리를 유지하는소설이라고 명명했다. 두 시간대의 이야기가 치밀하게 얽혀 전율을 일으키는 서스펜스와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무장한 미스터리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제 정치인과 언론, 기관을 실명으로 등장시켜 현 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마치 평행우주 속의 다른 세계처럼 전개해나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만 탈핵 운동인 오륙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작가는 이 작품의 집필 구상 당시부터 출간 이후 대만 사회의 반응, 그리고 대만 총통을 비롯해 실존 인물을 대거 등장시켜 고발당할 수 있는 상황까지도 행위예술로 규정해 화제를 모았다.

 

 

작가 이거옌 소개


1977년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났다. 국립 대만 대학교 심리학과와 타이베이 대학교 의학과를 중퇴한 후, 단쟝 대학교에서 중문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국립 타이베이 예술대학교에서 겸임 강사를 맡고 있다. 그는 문명에 대한 오만과 환상이 인간 사회를 어떻게 파국으로 이끌어가는지 강렬한 필치로 그려낸 이 작품을 땅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소설이라고 명명했다.

원전 사고로 폐허가 된 섬뜩하고 몽환적인 풍광이 실존 정치인과 정부기관이 대거 등장하는 견고한 현실 위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작품의 구상과 집필, 독자와 사회의 반응 그리고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고발당할 수 있는 상황까지도 행위예술로 규정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14년 중국어권국제SF협회가 수여하는 장편소설상을 수상했고, 우줘류 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으며, 타이베이 도서전 대상 후보작에 올랐다. 지은 책으로는 프랭크오코너 국제단편문학상과 맨아시아 문학상 후보에 오른 단편소설집 독 안에 든 자를 비롯해 사탕 아줌마를 만나러, 장편소설 꿈을 먹어치우는 자, 시집 당신은 내 동공을 뚫고 들어온 빛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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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