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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891)] 모든 것은 영원했다

[책을 읽읍시다 (1891)] 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저 | 문학과지성사 | 212| 13,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한때 미국 스파이로 오인 받던 공산주의자 현앨리스의 아들인 실존 인물 정웰링턴의 삶을 주축으로 삼는다. 

 

정지돈은 건조한 정보에 풍부한 허구를 뒤섞고 필연과 우연, 회의와 믿음을 오가는 진지한 담론에 실없는 농담을 교차시키면서 정웰링턴과 그 시대 사람들에게 지면을 내어준다. 흩어져 있던 이미지, 자료와 텍스트가 정지돈을 경유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인용과 질문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이 지적인 책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통해 생각하며 보내진 편지? 정지돈이 큐레이팅한 전방위 네트워크? 작가는 아마도 특유의 방식대로 응수할 것 같다

 

제 소설 전체를 통칭할 수 있는 말은 없고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니콜라 레). 무엇이라 부르든, 지나간 세기의 기록이 어떻게 오늘 우리의 현실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그의 접근 방식에 동참해보기에 적절한 연말이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속 겪어본 적 없는 그리운 세계를 방 안에서 경험해보기 바란다.

 

정웰링턴에 대해 알려진 기록은 적다.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인 현앨리스의 아들. 192710월 하와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1945년 외항선을 타는 선원이 되었다. 1947UCLA 의예과에서 잠시 수학했다. 1948년 프랑스, 독일을 거쳐 체코의 헤프에 도착했다. 이듬해 프라하 찰스대학교 의대에 입학했다. 1955년 의사가 되었다. 1958년 소비에트 출신의 체코 여성 안나 솔티소바와 결혼해 딸 타비타를 낳았다. 그해 10월 정웰링턴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고 체코 시민권을 요청했다. 19594월 귀화했다. 196211월 헤프 시립병원 중앙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됐다.

 

196311월 병원 해부실에서 독극물을 삼키고 자살했다. 그는 하와이 이민 1세대 집안의 자식으로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동양인이었고 자주 인종적 편견을 겪었다. 북한으로 가길 바란 공산주의자였지만 북한은 미국 시민인 그를 배척했다. 그의 어머니는 북한에서 미국 스파이로 몰려 처형당했다. 체코 비밀경찰의 협력자로 활동했으나 체코 경찰은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정웰링턴은 미국, 북한, 체코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선형적인 삶은 큰 의미가 없다. 약술된 정웰링턴의 궤적 가운데 이 소설에서 주로 다뤄지는 부분은 헤프에서 시작해 헤프에서 끝난 체코 생활이다. 정지돈은 빈약한 사실 사이를 추측과 상상으로 채우고 타임테이블을 뒤섞으면서 정웰링턴을 통해 생각한다.

 

정웰링턴이 역사의 희생자, 시대의 열외자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정지돈이 소설에서 시도하는 것은 그를(또한 그들을) 위로하거나 숨겨진 진실을 밝히거나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는 일이 아니다. 작가가 생각한 정웰링턴은 실제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

 

그러나 역사에 희미한 족적만을 남긴 존재가 이어가는 소설적 현실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상하게 슬프고 웃긴데 신기하게도 따뜻하다. 이것이 추천사에서 학자 김수환이 이야기한 인간다움일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능함이 자신을 증명하는 종류의 능력이라면 불능은 세계를 증명하는 능력이다.” 시대와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불능자정웰링턴의 딜레마를 따라가며 정지돈의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정지돈 소개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에서 영화와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2013문학과 사회의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눈먼 부엉이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창백한 말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실과 허구의 관계를 묻는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역사와 현재, 미래의 의미를 묻는 작업을 지속 중이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아키토피아의 실험] 도록의 에필로그 어떤 작위의 도시를 실었고, 낸 책으로는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문학평론집 문학의 기쁨(공저), 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야간 경비원의 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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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