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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638)] 달의 의지

 


달의 의지

저자
황현진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5-02-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너’라는 중력에서 벗어나 ‘나’의 정상궤도에 오르다 관계의 ...
가격비교

[책을 읽읍시다 (638)] 달의 의지

황현진 저 | 은행나무 | 131쪽 | 8,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소설 『달의 의지』는 저자만의 특유의 재치 섞인 문장과 뛰어난 구성력, 완결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관계의 끝에 선 이들의 첨예하고 기민한 상황을 제시하고 서로의 물리적, 심리적인 부분들을 ‘달의 의지’에 빗대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삶의 이면, 관계의 이면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추해보게 되는 특별한 힘을 지닌 소설이다.

 

달에게 의지가 있을까? 소설 제목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건 아마도 그런 질문일 것이다. 먼저 지구와 달의 관계가 떠오른다. 알다시피 달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구 주변을 맴돈다. 위성이라 부른다. 또 달은 줄었다 부푼다. 이유는 달이 태양 빛에 닿는 부분만을 반사한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뿐인가. 달은 한 방향으로 오랫동안 지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달 입장에서 지구는 갑쯤 되겠다. 지구중력장에 이끌려 붙들렸고 지구 주변을 하염없이 맴돌고만 있으니 말이다. 한눈팔지 않고 오직 지구, 그 대상만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늘어놓은 모든 얘기는 지구와 달을 상투적으로 빗대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되묻겠다. 달에게 의지란 무엇일까?

 

오래된 연인이 꽤 큰 호수를 산책한다. 호수의 둥근 둘레를 따라 우레탄 재질을 박아 넣어 걷기에 편한, 사람들이 걷기에 편하게 만든 길을 남자는 앞서 걷고 여자는 뒤따라 걷는다.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볼 만한데도 그 남자는 걷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간격은 갈수록 벌어진다. “불러세우자니 어색”하고 민망한 마음마저 드는 사이.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 대부분의 연인들이 헤어지기에 앞서 시간을 질질 끌면서 미련이나 후회를 정리하는 게 보통. 지금 이 연인도 그러한 제의를 비교적 조용히 치루고 있는 것. 왜 헤어졌을까.

 

정확한 작별의 이유를 알고 헤어지는 연인은 얼마나 될까. 아마 짐작건대 대부분의 연인은 자신들이 왜 이별을 했고 사랑에서 멀어졌는지 모른다. 다만 자신이 알고 싶고 확신하는 부분만을 스스로에게 설득하여 이해시킬 뿐이지 않을까. “그래, 그러자.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어”(16쪽) 이 말만을 뒤로한 채 각자는 헤어진다. 주인공 여자는 몇 년 전 책을 한 권 펴냈고 지금은 대기업 사보잡지에서 인터뷰 꼭지를 맡아 근근이 먹고사는 소설가. 방금 남자친구와 헤어진 그녀는 공교롭게도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가수가 되었으나 노래 실력이 아닌 불우한 가정사 때문에 시청자에게 널리 알려진 ‘에그’를 인터뷰하게 된다.

 

고아. 단란주점 웨이터. 포장마차 주인. 태어나면서 버려졌던 아이 에그. 충분히 예상할 만큼의 불우한 유년기를 지나 뒷골목 술집과 유흥가를 벗어나지 못했던 청년 에그. 그녀는 에그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평범한 부분, 즉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불행’에 대해 알게 된다. 그녀는 에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를 믿을 수가 없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 온몸에 흉터와 불에 데인 상처로 덮인 그의 몸. 그 폭력과 학대의 흔적들을 그녀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그녀가 에그의 지금보다 불행했던 과거에 끌렸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노래 실력이 아닌 과거 ‘이야기’를 팔아 먹고사는 것에 동질감을 느껴서? 아니 좀 더 정확하게 그녀는 불행한 에그와 헤어진 남자 ‘한두’를 견주어 스스로에게 정당한 헤어짐의 이유를 얻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한두에게서 벗어날 의지를 에그를 통해 다짐하게 되는 것, 그건 누구나 겪는 이별의 과정일 것이다.

 

달은 지쳤다. 지구를 여태 한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지구와의 간격이 오랫동안 꿈쩍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지쳤고 무심해졌고 무의지해졌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거리를 잰다. 모든 이별은 각자의 무게만큼 해롭다. 무심해지고 건조해졌다고 덜 상심하거나 덜 슬퍼지는 건 아닐 것이다. 결국 작별은 폐기한 기억을 기억에서 멀어지게 하는 어떤 가벼운 제의다. 그런 제의는 철저히 상대를 지우는(죽이는) 형식으로 행해질 뿐이다. 그녀는 이별하면서 그를 지웠다. 과거인 한두를 지웠다. 과거를 어떤 식으로건 이야기로 만들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에그를 통해 체득한 셈이다. 이 소설 『달의 의지』는 어쩌면 그 문장을 부르기 위해 씌어졌을 수도 있겠다.

 

 

작가 황현진 소개

 

2011년 장편소설 『죽을만큼 아프지 않아』 제 16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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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