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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847)] 선택

 

[책을 읽읍시다 (847)] 선택

양진채·이경희·정태언·조현·허택 공저 | 강 | 320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선택-테마 2008 5인 중편소설집』은 2008년에 등단한 다섯 소설가가 2008년을 주제로 쓴 중편소설을 엮은 책이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스카 라인』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양진채, 2008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도망』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경희, 200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소설 『두꺼비는 달빛 속으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태언,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조현, 2008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리브 앤 다이』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허택. 이들은 광우병 파동,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숭례문 화재 사건, 한반도 대운하, 세계 금융위기 등 2008년의 굵직한 사건들을 관통하는 다섯 편의 중편소설을 통해 가장 뜨거웠던 시기를 회고한다.



양진채 「플러싱의 숨 쉬는 돌」


우리는 모두 어딘가를 건너왔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때로 어떤 일들은 그 길에서 시간이 멈춘 채 밀폐된 기억의 저장고에 밀봉되어 있다가, 저장고에서 그 일을 꺼냈을 때는 넣었던 그대로 부패하지도 않은 채 녹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내게는 하루에 두 번, 바다의 썰물과 밀물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돌이 그랬다. 이제는 그 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경희 「달의 무덤」


태안에 가면 드르니항이라는 어항이 있다. 작은 어촌 마을과 어울리지 않게. 무슨 불어인가 했는데, ‘드르니’ 는 우리말로 ‘들르다’ 라는 뜻이었다. 드르니항의 명물 꽃게다리에서 감상하는 서해의 낙조는 차진 개펄이 뿜어내는 열기로 숨막히게 경이롭다. 바다는 섬을 품고 개펄은 바다를 품는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와 섬과 개펄의 경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꽃게와 달이 춤추는 그곳, 서해에 가고 싶다.



정태언 「성벽 앞에서―어느 소설가 G의 하루」


글쓰기가 두려워진 어느 날 아침, 소설가 G는 숭례문으로 달려간다. 2008년 불길을 활활 내뿜으며 사투를 벌이던 두꺼비를 보았던 곳. 이제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새로 쌓아올린 성벽을 올려다보니 G는 더욱 막막해진다. 촘촘히 틀어박힌 돌들. 그 자리를 뒤바꿔 다시 쌓고 싶다는 충동이 일지만 G에게는 그럴 힘이 없다.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 속의 역사(力士)라면, 아니 그와 같은 힘을 지닌다면 몰라도. G는 그 역사를 찾아 동대문을 휘돈다. 하루가 온통 저물고 도로 숭례문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앞에 펼쳐진 광경. G는 그것을 꽉 거머쥔 채 뒤돌아선다. 이제 다시금 자리에 앉을 시간이다.



조현 「선택」


지극히 익숙한 것을 자르면 가끔 낯선 단면이 발견된다. 삶이 낯설어지는 순간이다. 그런 예리한 단면은 매우 큰 통증을 수반하지만 그때야 점은 선분으로, 선분은 면으로, 그리고 면은 입체로 확장된다.



허택 「대사 증후군」


전후 세대인 나는 한국 근대사의 세파를 겪으며 격동의 60여 년을 살아왔다. 동족상잔의 비극적 빈민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초고속 진입으로 한국은 세계가 경이롭게 여길 만큼 경제성장을 했지만 한국의 현대사는 당뇨병 환자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 전후 세대,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국 현대사와 운명을 함께한 대사 증후군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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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