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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863)]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

[책을 읽읍시다 (863)]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

노바이올렛 불라와요 저 | 이진 역 | 문학동네 | 376쪽 | 14,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는 열 살 소녀 ‘달링’의 시점에서 서술된 작품으로, 솔직하고 대담하며 때로는 불편하기까지 한다. 짐바브웨의 독재 정권하에서 보낸 유년기, 그리고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서 보낸 청소년기 양쪽 모두 가감 없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달링과 친구들 그리고 짐바브웨 사람들의 이야기, 기회의 땅을 찾아 나라를 떠난 이민자들이 마주하는 삶의 면면이 재치 있고 해학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이어진다.


아이들이 맨발로 붉은 흙길을 달린다. 구아바를 훔치러! 이름만 ‘패러다이스’인 가난한 동네를 벗어나, 달링과 친구들은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그곳 저택의 구아바라도 훔쳐 먹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아이들의 달리기가 부쩍 느려지는 건 무리 중 한 친구 ‘치포’의 배에 든 아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치포의 뱃속에 아기를 넣었는지, 방해만 되는 그 아기가 언제 나오는지, 열 살 소녀 달링과 친구들은 그게 궁금할 뿐이다. 아이들은 구아바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수풀에 똥을 누다 나무에 목을 맨 여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기겁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다 이내 여자의 구두를 팔면 빵을 사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들은 시신을 향해 다시 달린다. 웃고 또 웃으면서.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허락되는 많은 것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없다. 제대로 된 이름마저 사치다. 부모들은 뜻도 모르는 영어로 달링(Darling), 배스터드(Bastard), 갓노즈(Godknows) 같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들은 신발이 없어 바세린을 바른 맨발로 흙길을 걷는다. 바지가 헤져 엉덩이가 보여도 새 바지를 구할 수 없다. 학교도 좋은 집도 다 옛일이다. 선생들이 다 나라를 떠나 학교는 문을 닫았고, 경찰들이 불도저로 집을 밀어버려서 이제는 허접한 양철집에서 산다. NGO 사람들이 사진 찍는 게 싫지만, 촬영에 응하면 선물을 주니까 참는다. 이 딱한 아이들은 장난감도 없어서 온종일 길에서, 자기들이 만든 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운다.


달링과 아이들이 하는 놀이 중에 나라놀이라는 게 있다. 바닥에 원을 그리고 똑같은 크기로 나눈 다음 여러 나라의 이름을 적고, 돌아가면서 술래가 되어 좋은 나라를 뺏는 놀이다. 나라놀이에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들이다. 콩고, 소말리아, 이라크, 수단 같은 “걸레 같은 나라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짐바브웨도. “지긋지긋하게 배고픈 나라, 모든 게 엉망인 나라”를 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새로운 희망을 품을 때마다 그 기대는 늘 허물어져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 같았지만 곧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변화를 꿈꾸며 투표를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짐바브웨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됐다. 일을 찾아 두바이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던 사람들은 병을 얻어 돌아왔고, 이제 제때 끼니를 챙기며 제대로 된 집에서 자는 것조차 요원한 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자리가 있고 배를 굶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난다. 달링은 미국에 있는 이모가 자기를 데려가면 짐바브웨를 떠날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그곳에서는 더는 먹을 것을 훔칠 필요가 없을 테니까. 꿈의 차 람보르기니를 몰며 친구들에게도 좋은 선물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미국은 달링에게는 꿈의 나라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풍요로운, 행복이 보장된 레이디 가가의 나라! 누구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라.


일견 에피소드의 나열처럼 보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조화롭게 묶어내는 건 중간중간 끼어드는 장들 속 ‘우리’라는 화자의 등장이다. ‘우리’는 달링이라는 소녀의 시각을 뛰어넘어 유려하고 격렬한 문체로 현대 아프리카와 미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토해낸다. 신화적 구전 서사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장들은 주인공을 관찰자로 내세워 전달한 일화들을 하나의 뚜렷한 선으로 꿰어낸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호흡하던 세계에서 떨어져나와 새로운 세계에 이식된 존재, 개인이자 집단인 그와 그들의 존재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를 읽는 우리는 조용히 웃고 조용히 한숨 쉬고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단정하고 재치 있는 필치로 풀어낸 달링의 이야기에 코끝이 찡해지는 건, 동심과 낙관 뒤에 자리한 애틋하고 고단한 삶의 속살이 도저히 숨겨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가 노바이올렛 불라와요 소개


짐바브웨가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이듬해인 1981년에 촐로초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미국 미시간 주 캘러머주로 이주했다.2009년 단편소설 「스냅숏」이 J. M. 쿳시가 심사한 남아프리카 펜/스터드진스키 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단편소설 「부다페스트 가는 길」로 케인 상을 수상했다. 2013년 첫 장편소설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를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펜/헤밍웨이 신인 소설상을 수상하고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맨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불라와요의 초기 작품을 소개하기도 한, 보스턴 리뷰의 편집자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주노 디아스는 ‘5 Under 35’(전미도서상 수상자 및 최종심 후보자들이 뽑는 젊은 작가 5인)에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를 선정하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는 불라와요에게 허스턴/라이트 레거시 어워드 소설 부문, 에티살랏 문학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신인 소설상을 안겼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등 각종 언론이 선정한 2013년 올해의 책에 포함되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는 코넬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스탠퍼드 대학교 문예창작 과정 특기생으로 재학했다.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소설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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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