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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934)] 사냥꾼들

[책을 읽읍시다 (934)] 사냥꾼들
 
제임스 설터 저 | 오현아 역 | 마음산책 | 316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사냥꾼들』은 작가의 작가라는 찬사를 받은 제임스 설터의 데뷔작이다. 제임스 설터 하면 앞의 수식어들 못지않게 자주 그의 특별한 이력이 언급되는데, 바로 1952년 전투기 조종사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일이다

 

『사냥꾼들』은 제임스 설터가 당시 제335전투비행대대에서 겪은 일들이 바탕이 된 소설로 덧없고 쓸쓸한 분위기가 짙은 그의 이후 소설들의 시원인 작품이다. 이 책은 분명 전쟁, 그중에서도 공중전을 소재로 하지만 주로 지상의 부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부대 내의 경쟁과 알력, 그 때문에 적이 구원자가 되는 아이러니, 관보다 좁은 조종석에 유폐돼 철저히 혼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고독감 등을 그린다. 하지만 제임스 설터가 공들여 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영원할 줄 알았으나 시간의 더께에 빛을 바래가는 것이다.

 

다섯 대 이상의 적기를 격추하면 붉은 별 다섯 개와 함께 에이스 칭호가 주어진다. 서른한 살의 대위 클리브 코넬은 에이스가 되려는 일념으로 자신감에 부풀어 김포 기지로 전출되지만 좀처럼 적기를 만나지 못하거나 놓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미그기를 몇 대 격추했는지가 최고선이 되어버린 부대의 분위기 속에서, 승전보를 가져오라고 독촉하는 이밀 대령과 편대장 자리를 노리는 천부적인 사냥꾼 펠 사이에서 심리적 압박과 고립감을 겪는다.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클리브는 공훈에 눈이 멀어 독단적인 행동을 일삼고 동료를 위험에 빠뜨리는 부하 펠을 견제하려 하지만, 나날이 에이스로 추앙받는 펠의 높아진 입지만 확인할 뿐 자신은 절박감과 회의감을 더해간다. 그러던 중 부대 전체가 술렁일 일이 발생한다.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적군의 에이스 ‘케이시 존스’가 돌아온 것. 하늘을 공포로 물들이던 케이시 존스의 등장으로 부대는 전의를 가다듬고, 클리브 역시 기사회생의 기회를 될 케이시 존스에게 차라리 동질감을 느끼며 ‘F-86 세이버’에 올라 숭고한 선택을 향해 나아간다.

 

『사냥꾼들』은 분명 전쟁, 그중에서도 공중전을 소재로 하지만 주로 지상의 부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열린 공간에서 적과 아군이 뚜렷이 양분된 채 치고받는 치열함은 이 작품에서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부대 내의 경쟁과 알력, 그 때문에 적이 구원자가 되는 아이러니, 관보다 좁은 조종석에 유폐돼 철저히 혼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고독감 등을 그린다. 하지만 제임스 설터가 공들여 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다른 소설에서처럼, 영원할 줄 알았으나 시간의 더께에 빛을 바래가는 모든 것이다.

 

싸움에서 귀환하지 못한 동료의 빈자리가 늘어날수록, 전역을 하여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동료가 늘어날수록 클리브는 쓸쓸해지고, 줄곧 그를 지탱해주었던 ‘에이스가 되는 일’ 자체에 회의를 느낀다. 그는 영웅도 언젠가 퇴색하리란 걸 알지만, 승리와 패배라는 두 가지 선택만이 존재하는 전장 바깥의 다른 삶은 알지 못한다. 전투기를 몰고 이미 이생의 끝까지 가보았고, 완벽하고 순수한 하늘에 매료당해서. 결국 클리브는 야비하고 덧없는 성공과 일수만 채우다 명예 없이 퇴역하는 실패 사이에서 가늘게 빛나는 제3의 운명을 향해 나아간다.

 

 

작가 제임스 설터 소개

 

미국 소설가. 1925년 뉴저지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졸업 후 전투기 조종사로 수많은 전투에 참전, 비행 중대장까지 지냈다. 한국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군에서 집필한 『헌터스』(1957)를 출간하면서 전역, 전업 작가로 데뷔했다. 1967년 『스포츠와 여가』가 “사실적 에로티즘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후 한동안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해 영화 ‘다운힐 레이서’(1969)와 ‘어포인트먼트’(1969)의 시나리오를 썼고, ‘세 타인들’(1969)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1975년 『가벼운 나날』을 발표, 또 한 번 큰 호평을 받았다. 작가 브렌던 길은 “생존 작가 중 『가벼운 나날』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쓴 작가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밝혔고, 줌파 라히리는 “이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로 큰 빚을 졌다”라고 말했다. 1988년 펴낸 단편집 『황혼』으로 이듬해 펜/포크너상을 받았으며, 시집 『스틸 서치』(1988), 자서전 『버닝 더 데이즈』(1997)를 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단편집 『어젯밤』(2005)을 발표해 “삶이라는 터질 듯한 혼돈을 누구도 설터처럼 그려내지 못한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외 작품으로 소설 『암 오브 플레시』(1961, 개정판 2000년 『캐사다』), 『솔로 페이스』(1979), 여행기 『그때 그곳에서』(2005), 부부가 함께 쓴 에세이『위대한 한 스푼』(2006) 등이 있다.

 

2013년 소설 『올 댓 이즈』를 발표해 언론으로부터 “더없을 위업” “설터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등 많은 극찬과 주목을 받았다. 2012년 펜/포크너 재단이 뛰어난 단편 작가에게 수여하는 펜/맬러머드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예일대에서 제정한 윈덤캠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15년 6월, 뉴욕 주 새그하버에서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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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