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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967)] 기똥찬 로큰롤 세대

[책을 읽읍시다 (967)] 기똥찬 로큰롤 세대

로디 도일 저 | 정회성 역 | 나무옆의자 | 544쪽 | 14,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로디 도일의 장편소설『기똥찬 로큰롤 세대』. 네 자녀를 둔 중년의 가장이 갑작스럽게 대장암 선고와 수술을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음악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작가의 재치와 통찰이 마치 권투 선수의 잽처럼 빠른 속도로 연달아 날아드는 대사와 문장에 묵직하게 스며 있어 읽는 이에게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살고 있는 지미 래빗. 1980년대에 ‘커미트먼트’라는 밴드를 만들고 매니저로 활약했던 그였지만 화려한 시절은 쏜살같이 지나고 이제는 네 명의 자녀를 둔 마흔일곱 살의 평범한 중년 가장일 뿐이다. 몇 년 전 아내 이파와 함께 시작한, 잊힌 옛 밴드와 그들의 음악 그리고 팬을 부활시키는 웹사이트 기반의 프로젝트 ‘기똥찬로큰롤닷컴’도 현재는 사업 지분의 대부분을 팔고 새로운 사업주의 동업자이자 피고용인으로 남았다.

 

그렇게 젊은 날의 열정도, 잠시 동안 꽃피웠던 열의도 모두 마모된 채 무기력하고 타성적인 삶을 살던 지미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대장암. 창자의 80퍼센트를 들어내는 대수술과 화학요법 및 방사선치료의 과정을 겪으며 심신이 피폐해진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의 이별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각오를 품고서 하루하루를 견뎌나간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옛 밴드 커미트먼트의 멤버인 아웃스팬과 역시 밴드의 멤버이자 한때 흠모했던 여인인 이멜다를 만나게 되고, 2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동생 레스와도 재회한다.

 

지미가 죽음의 두려움과 무기력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음악이다. 같은 작가가 쓴 소설이자 1991년에 제작된 영화 ‘커미트먼트’의 원작이기도 한 『The Commitments』에서 더블린 노동자 계층의 오합지졸 청년들을 규합하여 밴드 ‘커미트먼트’를 결성하고 매니저로서 그들을 성장시킨 장본인이 바로 지미다. 세월이 흘러 지미는 커미트먼트의 멤버 아웃스팬과 암 병동에서 같은 암 환자로서 우연히 재회하고, 죽음과 동행 중이라고 해도 될 만큼 쇠약해진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옛 열정을 되찾고 삶의 의지를 불태울 기똥찬 계획을 세운다.

 

그 첫 번째 계획은 코앞으로 다가온 가톨릭 성체대회에 맞추어 지난 성체대회가 열렸던 1932년의 모든 노래를 찾아내 하나의 앨범으로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 계획은 아들 마빈의 밴드를 불가리아 밴드로 위장하여 자신과 아들 지미가 작곡하고 옛 곡으로 꾸민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온라인상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계획은, 그 가공의 외국 밴드가 출연하는 록 페스티벌 ‘일렉트릭 피크닉’을 ‘오래됐지만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찾아 아들의 공연을 보는 것이다.

 

특히 세 번째 계획, 산소통을 지니고 다녀야 할 정도로 목숨이 위태로운 암 환자 아웃스팬과, 실업자로 전락한 전직 조경사이자 은퇴한 드러머인 데스, 그리고 25년 만에 재회한 동생이자 지미처럼 대장암을 앓은 경험이 있는 레스가 일렉트릭 피크닉에서 함께하는 장면은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시니컬한 것 같기도, 찌질한 것 같기도 한 아일랜드 상남자 네 명이 벌이는 목숨을 건 피크닉. 묘하게 무기력하면서도 묘하게 독자를 흥분시키는 독특한 로드무비가 죽음 앞에 선 중년 남자들이 음악을 통해 구원에 닿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의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지만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려는 것은 결국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일 것이다. 독자는 종종 주인공 지미의 공격적인 속마음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게 되곤 하는데, 한편으론 죽음의 두려움에 의해 가족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서서히 변화되고 있음 또한 눈치챈다.

 

지미는 언젠가부터 모두 날아가 끝장나버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가능성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옛 사랑을 만나 불륜을 저지르지만 곧 아내를 존중하는 충실한 남편으로 돌아온다. 문제를 일으킨 딸을 혼내는 대신 보듬어주며, 체중이 불어가는 어린 아들에게도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음악에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신뢰하고 지원하며 심지어 그들과 동업자가 된다. 친구를 사귀고, 등졌던 형제와 화해하기도 한다. 암이라는 병이 지미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답보 상태였던 그것을 마침내 한 걸음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가히 죽음을 마주한 중년의 성장 드라마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소설의 클라이맥스인 일렉트릭 피크닉에서의 경험은 지미뿐만 아니라 동행한 아웃스팬, 데스, 레스에게까지 정체된 삶에 갇혀 있던 시각을 확장시켜주는 계기가 된다. 공연장에서 맞는 밤에, 데스는 술에 취해 어둠이 깔린 땅을 바라보며 참 멀리까지도 왔다고, 풀밭이 참 넓다고, 도저히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고 중얼댄다. 익숙함의 감옥에 빠진 중년으로서 패배주의자에 가까운 삶을 살던 그가 드디어 각성하고 다시금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이다.

 

 

작가 로디 도일 소개

 

노동 계급 소설의 새 장을 연 작가 로디 도일. 유년시절과 노동자 계층을 매력적으로 묘사한 소설 『패디클라크 하하하』로 부커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제임스 조이스를 통해 생활공간에서 문학의 공간으로 변모한 더블린을 생생하고 날카롭게 조명하며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담아내 왔다. 노동자의 삶, 가부장적 사회인습과 같은 문제적이고 까다로운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유머러스한 저항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저서로는 『커미트먼트』『스내퍼』『헨리라는 별』』로버 크리스마스를 구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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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