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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제 결정

[칼럼]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제 결정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혁명이라고 하면 정권을 뒤바꾸는 일을 총칭한다고 다들 알고 있지만 꼭 정권이 뒤집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장이 옳고 민중의 뜻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혁명’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동학혁명 역시 전체 국민의 합일된 의사가 응축되었던 거사였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혁명으로 통일하여 부른지 오래다. 다만 일제 강점 하에서 역사책을 썼던 일부학자들에 의해서 동학란으로 표기되었고 그렇게 배웠던 세대에서는 한참동안 용어상의 혼돈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동학혁명 당시 전주화약을 계기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이른바 삼남지역을 완전히 석권했던 동학군의 기세에 억눌린 조정에서는 초토사와의 공식문서를 통하여 모든 관아에 동학혁명군이 파견하는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집강소는 오늘날 도지사격인 관찰사와 군수격인 목사(牧使)가 다스리는 관아에서 모든 행정업무를 동학군의 허락을 받아 집행해야 한다는 임금의 항복문서에 의거한 것이어서 사실상 정권이 뒤집혀진 것과 진배없었다. 따라서 동학혁명으로 호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본군과의 대결에서 공주우금치 참패로 전봉준의 혁명은 종말을 고했지만 그의 백성을 위한 강인한 정신과 의지는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한다.

 

이를 기리기 위해서 정부에서는 5월11일을 국가기념일로 결정했다. 125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의 공식기념일이 된 것이다. 올해는 그 첫 번째 행사다. 모든 기념행사는 발생지 위주로 거행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만 지역주민들의 긍지와 보람을 함께 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첫 번째 기념식이 동학혁명의 발생지인 정읍을 외면하고 서울에서 열렸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국가기념행사가 지방 곳곳에서 벌어진다. 대통령이 직접 참여할 수 없으면 국무총리가 참석한다. 정부를 대표한 최고위 직이 참석한다는 것은 그 지역민들에게 한 가닥 긍지를 느끼게 만든다. 총리가 와야 할 자리에 장관이 대리 참석한다면 홀대를 받았다는 항의가 뒤따른다. 제주4.3행사도 제주에서 총리 참석리에 열렸다. 2·28대구 4·19혁명행사, 3·8대전 4·19행사, 3·15마산 4·19행사 등 모든 기념식은 현지에서 개최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들 행사들이 만일 정부의 편의에 의해서 서울에서 개최되었다면 지역민들의 소외감은 물론 행사자체의 본 면목이 제대로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이번에 개최된 동학혁명 125주년기념식은 광화문광장에서 열렸고 정읍에서도 시장이하 관계자들이 상경하여 행사는 원만하게 진행된 것으로 안다. 필자는 당연히 참석하고 싶었지만 전봉준장군이 기포했던 고부 황토현 현장을 외면할 수 없어 고향인 정읍으로 내려갔다. 경기 성남시에서도, 부산지역에서도 관광버스를 동원하여 출향인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정읍에 도착했지만 황토현 넓은 들판은 텅 비었다. 도대체 동학혁명이 정읍에서 참말 일어났던 것인지 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양 가곡 ‘보리밭’의 가사처럼 “뒤돌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였다. 겨우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벌써 52회째인 황토현 동학농민혁명 기념제와 음악회가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것이다. 유진섭 시장과 유성엽국회의원 이한우 애향본부장 등 지역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기념잔치가 풍성하고 화려하게 막을 올린 것이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이금섭 예술감독의 지휘아래 펼쳐지는 수준 높은 음악회에 아낌없는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특히 이 고장의 상징인 정읍사(井邑詞)를 노래로 부르고 전봉준을 주제로 꾸민 파랑새를 부른 김정선 가객은 녹두장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청아한 목소리로 재현하여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인내천(人乃天) 사상에 입각하여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제폭구민(除暴救民)의 이상향을 꿈꿨던 동학혁명정신이 12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현실로 작용할 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잠잠하던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이 중단된 위기를 타개할 목적으로 보이는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고 있는 시점이어서 북한인권 등 풀어야 할 현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연일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어 미국과의 중재자를 자처하는 문재인대통령의 처지를 매우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는 결코 현명한 태도가 아님을 왜 김정은은 외면하는 것일까. 한국이 처해 있는 샌드위치 처지가 자칫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국제정세의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나 아닌지 무척 안타깝다. 우리는 자주국이면서도 외교적으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고립될 수 있음을 깨달을 때가 되었다.

 

글 :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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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호남본사 대표 ksk36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