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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술 얘기는 대부분 술과 얽힌 뒷얘기다

[칼럼] 술 얘기는 대부분 술과 얽힌 뒷얘기다

 

▲김동진 전국직능단체연합 상임부회장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김동진 전국직능단체연합 상임부회장] 인간이 술을 벗 삼은 지는 아마도 인류탄생 직후부터일 것으로 생각된다. 성경에도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졌다는 마리아의 말씀에 따라 예수님께서 물로 술을 만들어낸 첫 번째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술을 빚었을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음식을 먹다가 우연히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에 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술의 역사는 인간의 사회생활과 똑같은 궤를 같이 해오며 점점 발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술은 우리의 생활에 활력을 주기도 하고 서먹서먹했던 사람까지 가까이 만드는 신비스러움이 간직되기도 한다. 시인 묵객(木客)들은 술이 얼큰해져야 시 한수를 읊기도 하고 붓을 들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세상을 가르친다. 이태백은 배를 띄워 술잔을 기우리다가 서호(西湖)에 비친 달을 안아보겠다고 물에 뛰어들었으니 비록 생명을 건지지는 못했어도 산 사람들을 낭만으로 노래하게 만들었다. 술을 즐기고 잘 마시는 이들을 주성(酒聖) 주선(酒仙)으로 떠받들어 오는 얘기는 오래 되었지만, 요즘에는 술을 이기지 못하고 주정(酒酊)이나 주사(酒邪)를 부리는 이들이 더 많다. 게다가 술에 취한 것 같지도 않은데 아무 말이나 함부로 지껄이는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의 막말 때문에 오히려 술이 욕먹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술을 주제로 시를 쓰거나 소설을 낸 문인들도 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수주(樹州) 변영로의 ‘명정(酩酊)40년’은 술을 사랑한 시인의 일생을 압축한 명저(名著)다. 변영로는 3.1독립선언문을 영어로 번역하여 외국에 알리는 등 독립운동에도 일가를 이뤘으며 온 가족이 애국운동에 참여한 명문가정이다. 이런 분들의 술 얘기는 대부분 술과 얽힌 뒷얘기들이지만, 읽는 이에게는 정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데 술의 근본에 대한 천착(穿鑿)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술을 사랑하며 마시고 있으면서도 술의 유래나 도리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한다. “까짓것 한 잔 마시면 그만이지 일일이 유래를 따지고 도리를 배워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면서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술은 동서양이 많이 다르다. 와인이나 맥주 위스키 같은 술은 아마도 서양이 발상지일 가능성이 크고 탁주나 소주 고량주 청주 같은 술은 동양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것은 원료(原料)의 생산과 관련이 깊다. 생산지의 기온과 토질과 환경은 어떤 술을 빚느냐 하는 가장 큰 전제다. 지금도 술 생산지의 이름을 딴 유명주(有名酒)들이 많은 곳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과거에는 교통문제로 왕래가 어려웠던 지역도 이제는 전쟁지역이 아닌 한 1~2일 생활권에 들어있어 아무리 유명한 술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프랑스의 꼬냑이나 중국의 마오타이는 유명한 만큼 가짜가 많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어쩌다가 한 잔 얻어마시고도 진짜를 마셨는지 짝퉁을 마셨는지 어리벙벙할 때도 있다. 이런 고급술을 다루는 전문 감정인들도 있어 요리사와 함께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영토도 좁고 인구도 많은 나라는 아니지만 술을 많이 마시는 제일국(第一國)이다. 특히 소주(燒酒)가 으뜸이다. 막걸리가 한국고유의 토속 술이지만 소주만큼 많이 팔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본에서 한국막걸리가 유산균 으뜸이라는 인기를 얻으면서 거꾸로 한국에서 막걸리 인기가 절정을 이루기도 했다. 오죽하면 막걸리한잔 이라는 트로트 가요까지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소주는 가장 저렴한 대중주로 한국술판을 지배한다. 1인당 1년에 60병, 년간 36억병이 팔렸다니까. 보통 친구들끼리 저녁시간이 되면 “소주 한 잔 할까”하면서 다른 말이 필요 없게 만들어 버렸다. 모두 습관적으로 소주잔을 기울인다. 와인을 마시기 전에 코에 대고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눈을 지긋이 감고 음미하는 모습을 봤지만 소주는 그런 절차가 없다. 주도가 다르다. 와인보다 값이 싸서 그럴까. 따르면 마신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맥은 숫자가 많이 늘어났고 배합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맥주도 1인당 1년에 100병을 마신다니 놀라운 민족이라 할 수 있겠다, 

 

 

 

차를 마셔도 다도(茶道)를 찾는 문화가 애호가들의 캠페인으로 일상화되었는데 소주는 가장 많이 마시면서도 주도(酒道)를 찾지 않는 이유는 뭘까. 술에 취하기만 하면 그만인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최고의 술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도 소주한잔이다 가난한 반지하 가족의 장남 기태의 한숨이 담긴 이 가사도 봉감독이 “ 사람이 온갖 감정을 느끼게 될 때면 혼자 소주 한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데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소주에 법도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의 명예를 깎는 일이다.

 

우리 처가 가족들도 소주와는 전생에 소주 법도에 금메달을 목에 걸고 살았나 싶기도 한다, 이에 착상한 소주아티스트가 나왔다. 그의 본명은 김완준이지만 글과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예명은 퍼니 준 이다. 그는 8년에 걸쳐 소주에 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왔다. 48세의 중년에 주력 30년 이란다, 하루 소주 두병은 거뜬하단다. 그가 포털사이트 콘텐츠 플랫폼에서 소주하나로 조회수 100만회를 넘긴 것은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모아 ‘알랑 말랑 소주 탐구생활’이라는 아담한 종이책을 펴냈다. 탐구생활이라고 했지만 한마디로 ‘소주 마시는 법’을 체계화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마시는 예절이나 법도에 그치지 않는다. 소주를 둘러싼 모든 의문점을 한꺼번에 풀게 한다. 심지어 술 마신 다음날 해장(解狀)까지 인도한다. 소주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책 제목 ‘알랑 말랑’은 무슨 뜻일까. ‘알까 말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술 마신 사람처럼 혼자서 웃어본다.

 

글 : 김동진 전국직능단체연합 상임부회장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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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전국직능단체연합 상임부회장 ksk36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