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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88)] 60. 프랑스(France)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88)] 60. 프랑스(France)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몽블랑 정상을 배경으로, 2006.6 (c)시사타임즈
▲< 국기 > 청색과 적색은 프랑스의 전통색깔. 청색은 성 마르탱과 자유, 적색은 성 데니스와 박애, 백색은 평등을 상징. < 국장 > 중앙부 좌측은 사자머리, 우측은 독수리 머리, 월계수는 승리, 오크잎은 영원과 지혜, 도끼는 정의를 상징.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프랑스는 서유럽에서 제일 큰 나라이며 교통 요충지로 예로부터 유럽의 십자로라 불렸다. 동은 대서양 서는 라인강 북은 북해 남은 지중해와 접해 있으며 한 변이 대략 1000km인 육각형 모양이어서 ‘헥사곤’이라고도 불린다. 평균 표고는 342m이며 500m 이상의 고지대는 면적의 18% 250m 이하의 저지대는 62%를 차지하는 광활한 대지이다. 남동쪽의 알프스 산맥은 이탈리아와 스위스, 남서쪽의 피레네 산맥은 스페인, 서쪽의 라인강은 독일과 자연적인 국경을 이루고 있다. 수도 파리는 세계 패션을 주도하며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개선문, 몽마르트 언덕, 노트르담 사원을 찾아 관광객이 넘친다.

 

France is located in Western Europe with several overseas territories. From its shape, it is referred to as l’Hexagone. France has been a major power with cultural, economic, military and political influence. France has its ideals expressed in 18th-century Declaration of Rights of Man and of the Citizen. From 17th century, France built e second- largest colonial empire. France possesses the third-largest nuclear weapons and the world's second-largest diplomatic corps. France is one of the five permanent members of the UN Security Council.

 

1. 국명(Country) : 프랑스(French Republic)

2. 수도(Capital) : 파리 (Paris)

3. 면적(Territory) : 640,679㎢

4. 인구(Population) : 6,740만명

5. 국민소득(GNI) : US$4만불

6. 언어(Language) : 프랑스어 (French)

7. 독립일(Independence) : 1792.9.22

 

▲에펠탑 야경 (c)시사타임즈

자유 평등 박애의 땅, 프랑스

 

라인에서 대서양까지

북해에서 지중해까지

알자스에서 바스크까지

 

축복 받은 비옥한 땅이여

교회의 큰 딸이여

유럽문명의 십자로여

 

에펠탑에 세워라 자유의 파란 깃발을

개선문에 달아라 평등의 하얀 깃발을

몽블랑에 날리자 박애의 빨간 깃발을!

 

생각이 존재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법의 정신은 무엇이며

신은 죽었다 외치는 자에게도

노트르담의 종소리

사랑과 구원의 종소리

오늘도 울려 퍼진다

 

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어도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른다

 

우리의 추억이 흐른다

우리의 사랑도 따라 흐른다.

 

Land of Liberty, Egality and Fraternity, France!

 

From Rhine to the Atlantic

From the North to the Mediterranean

From Alsas to Bask

 

Land of Bless and Fertility,

The Eldest Daughter of Church,

The Crossroad of European Civilization

 

Hoist Blue Flag of Liberty at Eiffel Tower

Raise White Flag of Egality at the Arch of Triumph,

Fly Red Flag of Fraternity at Mont Blanc!

 

Thinking is Existing

Let's Return to Nature

 

To those, who are crying,

“What is Law's spirit?” or “God was dead?”

Do Notre Dam's bells resound

With love and deliverance

Today, too

 

Summer has gone after Spring

Autumn has come, again

Below Bridge Mirabeau flows the Seine

 

So do our stories along the Seine.

So does our love, there!

 

1. 프랑스 약사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최고 10만 년도 더 된 것으로, 프랑스 지방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정착생활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BC 1200년경에 켈트계 갈리아인이 라인 강 유역으로부터 현재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향해 남쪽과 서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BC 600년경에는 이오니아계 그리스인이 마실리아에 상업식민지를 건설했다. BC 121년에 시작된 로마인의 갈리아 정복은 BC 58~5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정복으로 끝났다. 로마가 쇠퇴하면서 갈리아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받게 되었다.

 

8세기에 이르러 메로빙거 왕조의 왕권이 카롤링거 왕조로 넘어갔는데, 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인 샤를마뉴는 9세기초 서유럽의 대부분까지 제국을 넓혔다. 이후 카페 왕조는 처음에는 힘이 약했지만 1328년까지 존속했으며, 플랑드르·브르타뉴·부르고뉴·아키텐을 제외한 현대 프랑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1328년에 프랑스의 왕위는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에게 넘어갔으며, 이것이 백년전쟁(1337~1453)으로 알려진 잉글랜드와의 투쟁을 촉발했다.

 

1789년에 일어난 혁명은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인권선언'을 발표했으며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무너뜨렸다. 프랑스 혁명은 유혈사태를 거쳐 5인 총재(總裁)의 약체 정부가 들어서는 것으로 끝났다. 정권은 이내 나폴레옹에게 넘어갔는데, 나폴레옹은 1799~1814년에 처음에는 통령으로, 후에는 황제로 프랑스를 지배했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략한 후 비시 프랑스의 필리프 페탱을 수반으로 하는 친독일 정권이 수립되었다(제2차 세계대전). 영국으로 망명한 샤를 드골 장군의 영도하에 '자유 프랑스'가 결성되었고, 국내에서는 레지스탕스 운동이 일어났다. 프랑스는 1944년 연합군과 자유 프랑스군에 의해 해방되었으며, 이어 제4공화정하에 의회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

 

제4공화국은 1950년대에 인도차이나에서 민족주의자 게릴라들을 상대로 한 값비싼 전쟁과 알제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식민지들에서 대두한 민족주의 운동을 감당할 수 없었다. 1958년 공직생활로 복귀한 드골은 제5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프랑스의 해외식민지들을 대부분 독립시키는 데 앞장섰다. 1981년 사회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1988년에 재선되어 1995년 물러났다.

 

2. 프랑스에서

 

(첫 인상)

 

1992년 6월에 이탈리아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탈리아 직항이 없어서 파리를 경유했다.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니 고교 동창인 김기만 동아일보 특파원이 마중 나왔다. 일 년 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현지로 날아가 매일 특종을 써내며 동아일보의 3-4개 면을 장식했던 그 김기만 기자다. 나와는 죽마고우이다. 그의 차를 타고 호텔에 당도하니 자정이다. 그런데 대 동아일보 특파원 차량이 티코 급이어서 나는 놀랐다. 그가 설명한다. 파리의 거리는 좁고 주차장은 제한되어 있어 운전사 없이 재빠르게 다니기에는 소형차가 최고란다. 그는 서울에 들어와서도 티코를 구입하여 애용했다. 호텔에 여장을 푸니, 아침 8시에 올 테니까 그때까지 아침을 먹고 로비에서 기다리란다. 파리의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루브르 박물관 전경 (c)시사타임즈

정확히 아침 8시에 나타난 김 기자는 나를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 내려 주더니, 4시에 다시 이 자리에 올 테니까 그때까지 박물관을 보고 그 자리에 오란다. 자기는 외교부에 취재를 하러 가야하며, 이어 윤정희, 백건우 부부와 취재 겸 점심 약속이 있다면서……. 나는 그에게 “12시 까지 와서 같이 점심 먹으면 안 되니?”하고 물었다. “그 부부에게 나만 약속이 된 것도 그렇지만 네가 오후 4시까지 나오려고 해도 루브르 박물관을 주마간산할 수밖에 없을 거다.”라고 말하며 황급히 가버렸다.

 

▲루브르 박물관, 2006.6 (c)시사타임즈

그랬다. 루브르 박물관은 동양에서 온 나를 경악시켰다. 그리고 기를 죽였다. 조각이면 조각, 회화면 회화……. 질은 차치하고라도 양이 나를 압도했다. 아니 이 사람들의 선조들은 전부 화가고 조각가였나? 미소 짓는 모나리자는 방탄유리에 갇혀 있었으며 그 앞에는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바로 앞까지 가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문외한이 내가 보기에 모나리자는 소품에 불과했다. 얼마나 크고 화려하고 정교한 작품이 많은지 어느 회랑에서는 누워 천장에 있는 그림을 보며 아픈 다리를 좀 쉬게 했다. 점심도 박물관내에서 간단히 때우고 그가 말한 대로 주마간산하며 간신히 4시에 그와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바삐 노트르담 성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노트르담 성당 측면 (c)시사타임즈

나는 그 성당을 보고 또 한 번 경악했다. 그 장엄함, 정교함, 정성이란……. 놀라는 나에게 김 기자가 말했다. “너 걱정된다. 너 이태리 가는 길이라는데 로마의, 피렌체의, 베네치아의 성당을 절대 보지 마라. 입이 찢어지지 않으려면…….” 그래, 그런 말이 있지. 유럽 여행은 런던, 파리, 로마 순으로 구경하라. 대번에 로마를 먼저 보면 다른 곳은 하품 나오니까. 입이 찢어질 때 찢어질지라도 로마가 기다려졌다. 그래 촌놈 기죽을 때까지 죽어보자. 나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7시에 김 기자가 안내하는 한식당에 도착하니 공관에 근무하는 이도형 참사관과 김양준 외환은행 차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불 고교 동창회인 셈인가? 오랜 만에, 그것도 타국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고 할 이야기가 많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라 다 함께 에펠탑, 개선문, 샤이오 궁을 보기로 하고 자정이 넘어 헤어졌다.

 

(파리에서 1차 신고식)

 

▲파리 에펠탑 (c)시사타임즈

다음 날 콩코드 광장 개선문을 거쳐 샤이오궁서 에펠탑을 바라보다가 내가 대형 사고를 쳤다. 아니 당했다. 반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반지갑을 날치기 당한 것이다. 하도 교묘히 당해서 우리 일행 4명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당한지 3-4분이 지나서야 내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머니를 만져보니 지갑이 없어진 게 아닌가? 아뿔싸! 금방 계단을 내려올 때 어느 젊은 흑인 녀석이 뒤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나를 껴안으며 간신히 안 넘어졌는데 그때 그는 볼 일을 수행한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지갑을 가져가니 정중히 “미안하다(페르동).”라고 했고 나는 안 넘어졌기에 “괜찮아(that’s OK)”했으니 소매치기를 인지하고 용서한 셈이 되었다.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그가 500m쯤 도망갔을 터인데……. 그 속에는 1,500불정도, 자동차 면허증, 주민등록증,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는데, 속절없었다. 우리 4명은 에펠탑 구경을 포기하고 반경 1km에 있는 쓰레기통과 화장실, 쓰레기통까지 다 수색했다. 돈은 포기하더라도 주민등록증, 면허증을 찾기 위해서였다. 소매치기도 양심이 있어, 돈은 수납하더라도 증명서는 우체통이나 쓰레기통에 넣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다행히 여권은 분실하지 않아 다음날 이탈리아 튜린행 비행기기는 탈 수 있었다. 내가 이탈리아 간다고 하니까 서울 친구들이 로마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 했는데 이탈리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리에서 일을 당했다. 바보 같은 놈…….

 

(칸느에서 2차 신고식 : 무식한 프랑스 출입국관리 직원)

 

이탈리아 튜린에서 연수 받던 어느 날 지도를 들여다보니 내가 있는 튜린이 모나코왕국과 프랑스 칸느와 니스 해변의 지척에 있는 것을 알았다. 알아보니 기차로 3시간 거리란다. 나는 월요일이 휴일이라 연휴를 이용하여 그곳에 가기로 했다.

▲프랑스 이태리 국경의 몽블랑(몬테비양코) (c)시사타임즈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한 열차가 이태리에서 프랑스 국경을 막 넘어서자 여권검사가 있었다. 내가 여권을 보여주자 왜 비자가 없느냐고 묻는다. 나는 우리나라와 귀국 간에는 3개월 관광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된 지 오래라 비자가 없다고 했다. 그 출입국 관리는 그렇지 않다면서 나를 끝내 다음 정거장에서 하차시켜 자기와 같이 택시를 타고 출입국 관리실로 가자고 하였다. 1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 그의 상급자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에게 괜찮다며 그냥 가란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그 상급자에게 물으니 그 직원이 착각을 했단다. 평양에서 온 한국 사람으로……. 미안하다고 하며 역까지 데려다 줄 테니 다음 기차를 타고 가란다. 기분이 상했지만 어떡하겠는가? 무식한 프랑스 관리를 탓할 것인가? 아니면 분단국가에서 태어나게 한 부모를 탓할 것인가? 아니면 분단을 초래한 투르만, 처칠, 스탈린을 탓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이 38선을 책정하도록 원초적 원인을 만든 일본을 탓할 것인가?

 

나는 2-3시간을 기다린 후 다음 열차에 올랐다. 열차에는 승객이 별로 없었다. 나는 피로했던지 바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들으니 칸느역이란다. 나는 황급히 내렸다. 호텔을 정하고 여권 제시를 요청하기에 찾다보니, 아뿔싸! 여권이 없다. 열차 옆 좌석에 놓고 내린 것이 분명했다. 나는 역으로 다시 달려가서 분실물 신고를 하고 연락처에 그 호텔 전화번호를 남겼다. 오늘이 토요일인데 월요일 오전까지 돌아올 것인가? 나는 월요일 오후 4시 발 열차를 예매해 놓았던 터였다. 만약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국경을 넘을 수 없으니, 파리 대사관을 찾아가 수속을 한다면 4-5일은 금방 지날 텐데 ……

 

그냥 지금 주말에 파리로 가서 수속을 시작하는 것이 나을까? 나는 고민하였다. 심사숙고해보니 여권은 돈이 아니니까 돌아올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여기가 동남아라면 여권도 돈이 될 테지만 이곳은 자긍심이 세계 제일인 프랑스 아닌가? 나는 프랑스를 믿고 딱 2일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칸느 해변으로 서둘러 갔다.

 

루브르 박물관과 노트르담 성당에서 충격 받은 서울 촌놈이 또 한 번 칸느 해변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젊은 처녀들은 모두 비키니 상의를 벗어 던지고 실낱같은 비키니 하의만 걸친 채 수영도하고 비치발리볼도 하고 있었다. 비키니 상의를 입은 사람은 나이 든 아줌마나 할머니뿐이었다. 그리고 하나 같이 예쁘고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예쁘니 감추기가 아까웠나? 누드 해변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보통 해변에서 저런 옷차림이라니…….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민망해서 눈을 돌릴 데가 없는 나는 영 시골뜨기였다. 그래서 풍덩! 지중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나는 혼자였지만 금방 사진을 같이 찍은 젊은이들과 친구가 되어 같이 비치발리볼을 했다. 가슴을 드러내고 출렁이는 처녀들과 함께……. 무릉도원인지 아비규환인지 서울 촌놈은 알 수 없었다.

 

▲칸느, 1991.6 (c)시사타임즈

그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에 돌아오니, 역무실에서 여권을 찾았다면서, 와서 찾아가라는 메시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멸치 볶음! 메르시 보꾸!” 나는 고맙다는 말을 허공에 대고 연발했다. 호텔 벨보이는 내가 돈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멸치 볶음, 메르시 보꾸!”라고 계속 흥얼댔다. 무식한 프랑스 출입국관리소 직원에 대한 미운 생각도 달아났다.

 

나는 일요일 아침 여권을 찾은 뒤 바로 모나코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1시간도 안되어 모나코에 도착했다. 나는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에 입성한 시이저 마냥 의기양양 당당했다. 여권이 있었으므로……. 하나의 증명서가 이렇게 천군만마 같다는 것을 다른 이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모나코 역을 나서고, 모나코 전 왕국을 두 팔 벌리고 미친 놈 마냥 하루 종일 활개치고 다녀도 또 모나코를 떠날 때까지 아무도 여권을 보자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내 여권 있어요.”하고 소리 치고 싶었다.

 

이제 그 무식한 프랑스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Korea가 주민이 헐벗는 조선인민민주공화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나로 인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만나면 그에게 말하고 싶다. 그 대한민국이 월드컵을 개최함은 물론 4강에 올랐고, G20, 핵정상회의, 세계개발협력회의를 성공리에 개최했으며 런던 올림픽에서 너희 프랑스를 제치고 종합 5위를 달성한 것을 알고 있느냐고? “프랑스 관리여……. 멸치볶음!!! 메-롱!”

▲유럽 대륙의 삼각지 몽마르트 언덕에서, 2006.6 (c)시사타임즈

3. 프랑스 풍경

 

▲마르세이유 궁전의 정원 (c)시사타임즈
▲몽브랑 정상을 배경으로, 2006.6 (c)시사타임즈
▲아내와 두정수 대사, 파리 개선문 옥상, 2006.6 (c)시사타임즈
▲에펠탑 밑에서 (c)시사타임즈
▲세느강의 미라보 다리에서 (c)시사타임즈
▲프랑스 샤모니의 에귀 드 미디, 3,840m (c)시사타임즈
▲샤모니에서 (c)시사타임즈

 

 

 

 

 

 

 

(61번째 나라 이탈리아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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