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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왜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가?

[칼럼] 왜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가?

▲노태구 경기대 명예교수.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노태구 경기대 명예교수] 우리는 왜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는가?’를 고찰해 봄으로써 인간을 한울처럼 섬겨야 하는지를 쉽게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사상의 근거이기도 하다. 

 

세계관 정립을 두고 인간을 통해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재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존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물학적 존재들, 말하자면 동물들은 모두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자연에 예속되어 순응하기보다는, 자연을 개척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존재이다. 세계를 이끄는 주인으로서 아직은 인간의 힘이 그리 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과 의식을 가진 인간보다 더 위대하고 발전된 존재가 없기 때문에 세상 만물 가운데서 우리가 신비화하고 숭상해야 할 것이란 인간 말고 그다지 없다고 본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우리의 인식을 보다 확고히 가져야 한다. 인간이 가장 진보적인 존재이고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확립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좋지만 유물론적인 현재의 축척된 지식과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날 세계관으로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을 어떻게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이는 물질이 아닌 오직 인간에 중심에 두는 새로운 세계관이 나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인간은 물질적(객관적)인 존재인 동시에 생명과 영혼을 가진 정신적(주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육체가 손상되면 살 수 없고 또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육체만 있다고 해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으며, 생명을 가져야 함과 동시에, 정신을 가져야 비로서 사람이라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이나 정신은 주관적 속성이다. 하나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주관성과 객관성을 같이 가지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원자나 분자를 아무리 분석해보아도 정신이나 생명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을 분석을 할 때에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보아도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진보된 존재(최령자)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발전할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를 보아야 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첫 번째 특성이다.

 

 

둘째,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자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 또한 자연의 한 부분인 동시에 자연을 개조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자주적인 존재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는 창조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명력을 생물학적 육체에만 체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에 체현시키는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객관화된 힘이 있기 때문에 지식과 기술을 대를 이어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동물들은 죽음과 동시에 개체가 지니고 있던 능력이 모두 소멸되고 만다. 이 때 아마도 몇 만분의 일 정도가 유전자를 통해 유전될 수 있겠지만, 축척된 지식과 기술을 후대에 물리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은 문자와 기록을 통하여 지식과 기술을 후대에 물려주고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인간은 위대한 것이다. 결국 인류의 발생으로 세상은 자연적 존재와 인간적 존재(사회적 존재)로 구분되어지고, 그동안 자연현상에 의해서 변화 발전되어왔던 세상은 인간에 의해 개발되고 발전되어 진다.

 

곧 사회적 존재의 주도적 역할에 의해 세상이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발생 이후의 세계는 단지 자연현상만을 잘 이해했다고 해서 세상을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세계를 알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만큼 최령자로서의 인간은 올바른 세계관,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이러한 사회적 존재의 발생이 인간의 지위를 높이고 또 인간이 세계를 이끌어간다는 사명을 가지게 되므로, 우리는 인류의 발생이 우주의 변화발전에 획기적인 의의가 있음을 자각하고 더욱 성실한 자세로 삶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상호 협력문제에 있어 상호간 긴밀히 협조하면서 물질적인 힘, 정신적인 힘, 사회 협조적인 힘을 축적시키고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존재이다.

 

현대사회는 물질적인 발전에 비해서 사상적 수준이나 정치수준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다. 정치가 사회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가 사회발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적 존재의 우월성이란 주인의 지위로서 그 책임을 다할 때만이 성립된다. 주인으로서 책임은 다하지 못하면서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발전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좀 더 빨리 서양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사대주의적으로 서양문물을 무조건 숭배하고 추종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의 장점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동양의 전통적 제도와 사상을 로 하고 서구의 근대 과학 기술을 로 하자는 주장)에 좀 더 힘을 실어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

 

셋째, 인간은 개인적 존재(개인주의)인 동시에 집단적 존재(집단주의)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두 가지 예보다 현실적인 의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의 두 가지가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한 것이라면 세번째 특징은 관계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사회관계에서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은 개인적 존재뿐만이 아니라 집단적 존재라는 데에 있다. 이것이 모든 사회관계에서 기초를 이루고 있는 사항이다.

 

사회관계의 분석에 있어 개인적 존재와 집단적 존재, 즉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가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이 관계를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여 어떤 경우에는 집단주의에 기울어지고, 또 어떤 경우에는 개인주의에 기울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개인주의(자본주의)를 무시한 집단주의(사회주의)는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집단주의를 무시한 개인주의 역시 인류발전에 도움이 되지않는 것이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한번은 집단주의에 한번은 개인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과정에서 우리는 제3의 교훈을 얻게 되는데 개인주의의 장점과 집단주의의 장점을 결합 시켜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지금 우리가 주장하는 인간중심(人乃天)철학이다.

 

결과적으로 개인주의나 집단주의가 완전히 통일되기까지는 서로 조정하고 보완하는 진통의 시간들이 필요하리라 본다. 한번은 좌경으로 한번은 우경으로 방황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차이를 점차 줄이고 결과적으로 개인주의의 장점과 집단주의의 장점을 결합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장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들이 다양한 생명 에너지를 가지고 다양성을 확대시키고 창조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구성요소와 결합구조로 되어 있다고 볼 때, 구성요소란 개개인을 말하는 것으로 개인들의 창의성을 비롯한 각각의 구성요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결합구조인 집단의 통일성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본다.

 

인간중심의 인내천철학은 인간의 본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개인의 생명 에너지의 다양성을 발전시켜야만 구성요소 또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성요소만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으며, 구성요소가 결합되어 상호 협력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집단주의적 협력관계 또한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개인주의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집단주의와의 상보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때 결합구조에 관련된 부분은 정치가 담당해주어야 한다. 자연개조와 인간개조가 구성요소를 발전시키는 측면이라면 사회 협조적 힘인 정치는 결합구조를 강화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민족사의 당면과제인 민족의 평화통일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세상을 인간을 중심으로 보는 데서 그 세계관적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서 특히 사회관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서는 인간은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 존재라는 것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동양이 서양보다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성을 두고 성선설(집단주의)과 성악설(개인주의)로 설명하고 있으며 통합의 중용 중도정치를 일찍부터 표방하여 오고 있었던 것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의식적으로 인간이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 존재라는 것을 철학적으로 해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측면만 주장하게 되면 인간의 본성은 남을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선한 생각이 없이, 오직 개인의 이익만 생각하게 되므로 악하다고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또 집단주의를 중심으로 할 때는 심청전을 들으면 모두 눈물을 흘리듯이 인간의 본성은 선하게 된다. 동양이 25백 년 전에 이미 성선설과 성악설을 주장한 것은 아주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찍이 우리는 동학·천도교의 "인간을 한울처럼 섬기라"는 시천주(侍天主) 원리 속에 인간을 통해 세상을 보는 세계관, 인생관, 사회관을 확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인내천사상을 한국민족주의(Koreanism)로 정치 이념화하여 민주주의 이념당을 건설하여 한민족의 정치발전과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리더십을 발휘해나가야 하겠다.

 

: 노태구 경기대 명예교수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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