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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358)] 너의 얼굴

[책을 읽읍시다 (2358)] 너의 얼굴

이충걸 저 | 은행나무 | 420 | 17,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전 GQ 편집장 이충걸의 첫 장편소설 너의 얼굴. 이 소설은 교통사고로 인해 얼굴이 지워지는 사고를 당한 엄마가 비슷한 시기에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딸의 얼굴을 품고 새롭고 기이한 삶을 시작하는 여정을 진지하게 추적한 작품이다.

 

소설은 교통사고로 시작된다. 뜻하지 않게 결정적 순간들이 운명을 순식간에 바꾸기도 한다. 그날이 그랬다. 4월인데도 스웨터를 걸쳐야 될 만큼 추운 보통의 날.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도로에서 매번 그러하듯. 오래된 차를 몰았고 비슷한 풍경에 익숙한 주행 길일 뿐이었다. 단지, 찰나의 순간에 마주 오는 트레일러가 중앙선을 넘어버렸다는 것. 마주 오는 차를 피해 핸들을 돌렸고 뒤따라오던 수많은 차들과의 충돌. 몸은 튀어올랐다가 급히 추락했다. “지옥의 하강.” 삶이 종료되어간다는 신호.

 

전신 깁스에 반 코마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가늠되지 않았다. 낮과 밤이 수없이 자리를 뒤바꾸었다. 진정제와 진통제들이 앞 다투어 의 몸과 뇌를 점령한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하루를 자고 이틀을 깨 있었나? 병원 안에서의 드문드문 들리는 기계음들과 환자와 의사들이 내는 소리들만이 내가 살아 있다는 자각을 감각할 수 있게 해줄 뿐이었다. 보호자처럼 서 있는 실루엣. 딸의 남자친구인 모하. 모하가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되었다니. 그애의 잿빛 표정. 나를 내려다보는 투명하고 앳된 열일곱 살의 표정. 모하가 거즈로 덮인 내 얼굴을 내려다본다.

 

딸의 이름은 파라. 파라와 함께 앰뷸런스에 실려 갔더라면, 손이라도 맞잡을 수 있었을 텐데.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줄곧 그 생각뿐이었다. 나의 몸은 조금씩 회복되어갔지만 파라의 상태는 처음과 그대로. 나아지지 않았다. 서서히 몸에서 조금씩 풀려나가는 깁스들. 이제는 팔도 움직이고 다리도 움직였다. 모하가 준 이어폰으로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내 몸에서 부러진 것들이 붙었고 파괴되었던 것들이 조금씩 재생되었다. 이 뻔한 섭리를 파라만 받아들지 않는 걸까. 모하의 표정으로 내 딸의 안위를 전달받는다. 아직 파라는 죽음의 문턱에 앉아 있는 걸까.

 

옆구리 근육을 가져와 턱에 붙인다. 허벅지 살로 오른쪽 뺨을 만든다. 장딴지와 팔 근육도. 내 몸의 모든 부분들을 떼어와 나의 얼굴에 붙여본다. 이식한 살들은 반죽처럼 붙어 있었다. 얼굴이었지만 얼굴이 아니었다. 몸에 남은 살로 얼마나 얼굴에 이어 붙일 수 있을까. 종국엔 더 이상 떼어낼 조직이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모하는 굳건한 보호자처럼 이 병원의 의사인 자신의 고모부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안면 이식에 대해. 성공 확률이 적은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 영원히 얼굴 없이 살 수 있을까? 모하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없애주기 위해서라도 안면 이식이란 것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 얼굴의 수여자가 파라라는 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안면이식으로 딸의 얼굴이 엄마()에게 옮겨옴으로써 같이 딸려오는 딸의 삶의 조각들.

 

소설은 딸의 죽음 이후 얼굴을 부여받음으로써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엄마를 추적하며 엄마의 삶과 딸의 삶이 겹치는 그 기묘한 순간들을 조명한다. 그럼으로써 젊음과 늙음, 성장과 소멸, 삶과 죽음이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유해보기를 우리들에게 요구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자식을 잃은 엄마의 비통함과 죽은 딸의 얼굴로 삶을 다시 사는, 기이한 부활이 휘몰아치는 혼잡함의 아름다운 역설이 빛난다. 상처를 주는 동시에 들뜨게 만드는 기묘한 감정들이 자주 태어나고 문장과 문장들에서 퍼져나가는 사색들이 은유와 비유들의 문맥들 안에서 서로 조응하며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생경한 풍경들을 자아낸다.

 

 

작가 이충걸 소개

 

그처럼 개인적이고 체계가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조직 생활을 했는지 의아하다는 세간의 평이 떠도는 가운데 이충걸은 [행복이 가득한 집], [보그] 에디터를 거쳐 [GQ KOREA] 초대 편집장으로 18년 간 일했다. 서양문화의 첨병인 패션 잡지 안에서 언어 포함, 한국적 가치를 사수하는 이율배반적인 시간이기도 했다. 몇몇 사회 문화적 사안들에 나름대로 참견하는 한편,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전공을 배경으로 도시 생태학을 지속적인 지큐 콘텐츠로 다루었다.

 

한편 그는 오래된 책과 옛날 작가, 작은 자동차와 진한 술을 좋아하고, 어떤 사치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의 글에 세속의 어수선함과 산골짜기 같은 무구가 동시에 섞여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가끔, 되풀이해서 문장을 읽어 볼 땐 행간에 서려 있는 어떤 고요에 놀라기도 한다. 이충걸의 글은 회상과 상상에 의한 '스토리'라기보다는 그 스스로 정체성을 부여한 사물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그의 글감이 되는 사물이란 단번에 정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이상한 언어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은,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2011,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을 펴낸다.

 

저서로는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을 비롯, 어머니라는 우주를 조촐하게 기록한 아들의 글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일생 동안 겪은 숱한 이별의 순간을 들추어 추억한 슬픔의 냄새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 외에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에 이르는, 일관되지 않는 산문집 몇 권을 썼다. [11월의 왈츠], [노래처럼 말해줘], [내 사랑 히로시마], [여덟 개의 엄숙한 노래] 같은 연극 대본도 썼는데 모두 배우 박정자와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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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