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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271)] 노란 잠수함

[책을 읽읍시다 (1271)] 노란 잠수함
 
이재량 저 | 나무옆의자 | 320|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신인 작가 이재량의 첫 장편소설 노란 잠수함은 그 빛나는 한순간을 찾아가는 네 남녀의 수상한 여정과 모험담을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그린 소설이다. 봉고차에 성인용품을 싣고 다니며 파는 한 청년이 어쩌다 두 노인과 한 여고생을 자신의 영업용 차에 태우고 원치 않는 여행길에 오르는데, 시작부터 상황이 절묘하게 꼬여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안산에서 출발해 부산, 순천, 무안을 거쳐 목포로 가는 동안 상황은 설상가상, 점입가경, 위기의 연속이다.

 

신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인물들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구성은 치밀하고 정교하며 이야기는 거침없이 내달린다. 혀에 착착 감기는 구성진 전라도 방언과 능청스러운 유머가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인물의 굴곡진 인생사와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을 들려줄 때는 그 아픔에 고스란히 이입되고 만다. 만만치 않은 흡입력에 빨려들어 읽다 보면 어느새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마지막 장의 여운에 쉽게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된다.

 

안산에 거주하며 육봉 1라는 봉고에 포르노를 싣고 다니며 파는 성인용품업자 이현태. 개펄에 올라앉은 폐선처럼 비루하고 지루하고 평화롭던 그의 삶이 어느 날 단골 만화방인 노란 잠수함의 두 노인으로부터 이상한 제안을 받으면서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치매환자처럼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만화방 주인 나해영과 하반신을 못 쓰는 동거인 김난조는 현태에게 거래를 제안해온다. 육봉 1호로 자신들을 부산까지 데려다주면 백만 원을 지불하겠다는 것. 그들은 여생을 바다낚시나 하면서 보낼 예정이며 부산에서 낚싯배를 구해줄 옛 친구를 만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현태는 김 노인에게서 광기에 가까운 어떤 간절함을 감지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그들의 간계에 휘말려 결국 동행 요구를 뿌리치지 못할 뿐 아니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네 문제아이며 아이돌 가수가 꿈인 가출 여고생 모모까지 합류하게 된다.

 

네 사람이 부산으로 떠나려는 그때, 때맞춰 안산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여행은 3차방정식만큼이나 복잡하게 꼬인다. CCTV에 찍힌 모모의 모습과 살인사건, 두 노인이 만화방 보증금을 빼서 사라진 시점 등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육봉 1호의 주인이자 포르노 장사치인 이현태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떠오른 것이다. 현태는 김 노인에게 경찰서에 가서 해명해달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들의 용무가 먼저라며 거절한다. 모모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에게 쫓겨 가출까지 하게 됐는데 이제 와 돌아갈 수는 없다고. 죽이 척척 맞는 두 노인과 당돌한 소녀 때문에 현태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지만 별 도리가 없다.

 

그런데 부산에 도착하고 보니 두 노인이 철석같이 믿었던 옛 친구가 배 계약금을 쥐고 튀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연쇄살인 용의자인 현태를 쫓는 박 형사와 경찰의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된다. , 달려라 육봉 1호야!

 

소설은 야릇한 조합의 네 인물이 길 위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사이사이로 그들의 지난 삶과 기억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특히 여행의 시발점이 된 두 노인의 이야기는 일행이 가는 길의 진짜 의미와 맞닿아 있는데, 그 중심에 두 사람이 젊은 한 철을 보낸 베트남이 자리하고 있다. 나 노인과 김 노인은 젊은 시절 베트남전에 자원해 같은 부대에서 선임과 후임으로 만났다. 그들은 그곳에서 전쟁의 참상과 지옥을 겪었고, 이후의 삶도 전장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성치 않은 몸으로 살아가는 것도 전쟁에서 얻은 부상이자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옥 한가운데 낙원이 있었다. 수이진 마을과 그들이 사랑했던 여자 타잉. 인생에서 단 한 번 경험했던 가슴 벅차게 찬란했던 날. 그 낙원에서의 한순간이 그들을 지금껏 살게 했다.

 

여행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제 두 노인의 이야기는 현태의 여행을 촉발한다. 애초에 두 노인이 자신들을 부산까지 데려다줄 사람으로 현태를 지목한 것도 현태가 그들과 동류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현태는 온힘을 다해 도망쳤던 어린 시절의 어떤 날로 속절없이 끌려가고 만다. 다시 찾아온 악몽은 그 어떤 날과도 닿아 있었다. 결국 현태와 두 노인은 어떤 날, 한순간의 진실과 맞닥뜨린다. 이현태의 어떤 날의 진실은 그를 평생 도망치게 했고, 두 노인의 한순간은 그들을 평생 살게 했다.

현태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배를 구해 육봉 1호의 기원이 됐던 해안절벽의 육봉 바위에서 두 노인을 떠나보낸다. 나해영과 김난조 할아버지는 평생을 버티게 했던 페퍼랜드로 항해를 시작한다. 현태와 아버지와 모모는 황혼 속에서 멀어져 가는 배를 끝까지 지켜본다. 이 여행이 현태와 모모에게는 훗날 인생의 또 다른 한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소설 노란 잠수함은 한순간을 향해 돌아가려는 사람과 한순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 아직 한순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만나 진정한 한순간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독자에게 새겨질 것이다.

 

 

 

작가 이재량 소개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문학의오늘겨울호에 단편소설 캐럴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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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