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9)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9)

한 중년의 사내가 길 없는 길을 달려갔노라!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고르간’은 엘부르즈산맥 북동쪽 기슭에 고르간평야를 끼고 있다. 그러나 이 평야는 곧 황량한 사막으로 바뀐다. 산맥의 자락을 지나고 평야를 지나자 곧 가만히 있어도 숨통을 조일 것 같은 더운 공기가 덮쳐버린다. 사막이 시작되자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지평선 끝은 황사 먼지로 뿌옇게 지워져 있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이란을 지나고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가는 길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제 그리도 만나고 싶었고 두려워하던 사막에 들어선 것이다. 키 작은 관목만이 뜨문뜨문 보이는 황량한 사막이 눈앞에서 끝없이 펼쳐진다. 나는 우주의 춤 속으로 녹아들고 우주의 숨결 속으로 뛰어들었노라! 무한과 유한, 고요와 떨림 사이를 달리며 우주적 내막을 살금살금 엿보는 내가 여기에 있다. 늘 부딪치는 자기 한계, 그 벽을 넘고자 하는 열망, 이 나이에도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이곳에 섰다. 배우지 않아도 문리가 트여 하늘의 법도와 땅의 이치를 두루 통달할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체가 하나의 관계로 이어지면서 전개되는 우주적 세계와 생명이 경이롭고 신비롭게 변화하면서 흘러간다. 쇳물 같은 뜨거운 열정이 솟아오른다.

 

담배 연기 같은 외로움이 몽글몽글 피어나고, 두려움이 포도주처럼 혈관에 퍼져간다. 늘 고독을 자초하지만 이곳에 서니 외로움이 사무쳐 떨게 된다. 나그네에게 추상적으로 보이는 모습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들에게는 지극히 현실이다. 어떤 이유로 이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생명들은 치열하게 살아간다. 오늘 33도까지 오른 사막을 달리는 나의 모습도 잠시 명상 속에 유체 이탈하여 바라보니 나도 치열하기 짝이 없다. 치열하게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 국경 마을인 ‘인체보론’을 향해 달린다.

 

생명이라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이 땅 위에도 무수히 많은 생명이 살아가고 있다. 개미도 있고 작은 갑을 쓴 생명체들이 셀 수 없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조그만 구멍들이 보이고 그 구멍으로 도마뱀들이 분주히 드나든다. 간혹 양 떼들과 말들도 보인다. 까마귀와 이름 모를 새들, 그 너머로 사람이 사는 가옥도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가는 길목에 낙타 젖과 사막의 관목을 땔감으로 파는 아이들이 종종 보인다. 이곳에서 낙타 젖은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낙타 젖은 우유보다 젖산과 콜레스테롤은 적고 다른 영양분이 많다고 한다. 이슬람의 영향력이 강한 중앙아시아에서는 민간요법으로 낙타의 젖과 함께 소변도 마신다고 한다. 창건이가 사온 낙타 젖 맛은 시큼하면서도 떨떨했다. 처음 느끼는 맛에는 적응을 잘 못 하는 게 이런 여행을 하는데 가장 큰 결격 사유이다. ‘고르간’을 지나서는 투르크메니스탄 넘어가기 전까지는 잘만한 곳이 없었으므로 다시 고르간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가는 도중에 산 닭을 작은 픽업트럭에 싣고 와서 파는 사람이 보였다. 닭의 모가지는 순식간에 비틀어졌고 털은 금방 벗겨졌다. 작게 토막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으로 고추장이 있고 감자와 양파가 있으므로 오늘 밤 닭볶음탕을 끓였다. 얼큰한 닭볶음탕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기침을 하면서 곧 깨었다. 갑자기 변한 날씨에 감기가 들었다. 오한이 나서 일어나니 누런 코가 흘러내린다. 몸이 펄펄 끓는다. 늦은 시간이라 약국을 찾을 수도 없어서 여관 주인에게 감기약이 혹시 없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먹던 약이라며 내준다. 약을 먹고 옷이란 옷은 다 꺼내 입고 이불도 더 달라고 해서 뒤집어쓰고 잤더니 아침에 일어날 만했다.

 

그동안 터키와 그루지아에 연한 흑해와 이란이 연한 카스피해를 지나면서 겨울이지만 큰 추위 안 만나고 비교적 쾌적한 환경과 기온에서 달려왔는데 이제부터는 무더위와 거친 환경 속에서 뛰어야 한다. 사막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이로웠다. 갈증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물을 마셔도 펄펄 끓는 물은 쉽게 갈증을 해소시키지 않는다. 몸에 아주 고은 소금의 결정체가 맺힌다. 감기까지 앓고 난 후에 갑자기 맞는 더위라 적응이 잘 안 된다. 어디 나무 그늘이라도 있으면 들어서서 한 시간이라도 낮잠을 자고 다시 달리고 싶었다. 한숨 자고 나서 시원하고 달콤한 탄산음료라도 벌컥벌컥 마시면 공중급유를 받은 전투기처럼 다시 쌩쌩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전갈이 어디서 슬그머니 나타나서 신고식을 할지도 모르지만!

 

황량한 사막에 오늘 유난히 국경을 향해 가는 차가 많았다. 한국의 추석이나 설날처럼 차량 행렬이 줄을 섰는데 반대로 가는 차는 별로 없다. 이렇게 많은 차량이 국경을 넘으면 입출국 수속에 시간이 많아 걸릴 것을 염려하면서 국경에 도착하니 거기에 큰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무역을 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투르크메니스탄 상인들이 경제제재를 받는 이란에 물건을 가지고 오고 이란 사람들이 사러 오는 그런 장이었다. 장 근처에 텐트나 돗자리를 펴고 가족끼리 식사하는 시골 장터의 모습이 사막으로 옮겨온 것이다.

 

장터를 지나자 아까 염려했던 국경을 넘는 차가 거의 안 보이는 것이 오히려 불안해졌다. 간혹 우리나라 70년대 승합차 같은 버스가 국경을 넘고 있었다. 국경을 넘어서려 앞으로 다가서니 차를 세우고 서류를 보자고 한다. 비자와 차량서류를 보더니 이곳에는 일반 차량을 통과시키는 시스템이 안 돼 있으니 ‘바기란’으로 국경을 넘으라고 한다. 바그란은 이곳에서 460km나 떨어진 곳이다. 큰 사달이 벌어졌다. 빨리 달려야 저녁 10시 가까이 가야 그곳에 도착하고 그 시간에 국경을 통과시켜준다는 보장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인체보론 국경을 넘어서 그곳에서 우즈베키스탄 국경까지 거리가 1200km 가까이 되는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30일 비자만 주기 때문에 하루도 안 쉬고 아무 일 없을 때나 가능하다. 오늘 하루 허비하고 내일 다시 그곳까지 이동하느라 허비하면 도저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면 한 발자국도 빼먹지 않고 유라시아대륙을 내 발자국으로 고스란히 잇겠다는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는 없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제 방법은 바기란 국경에서 넘어서 그곳에서 우즈베키스탄 국경까지 달려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마저도 안 되게 되었다. 바기란 국경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인 아쉬하바드까지는 군사지역이라 가다가 중간에 내리지도 말고 사진도 찍지 말라는 경고를 엄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차량에 위치추적 장치까지 달아서 내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국경을 넘을 때까지 감시해야겠단다.

 

어쩔 수 없이 460km를 잘라먹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미리 말해두자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정당성을 찾아냈다. 원래의 코스에서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으로 돌아오느라 500에서 600km를 더 달렸고 이란의 서쪽국경을 통과해서 동쪽 국경까지는 갔으니 거리로나 내용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마음의 위로라도 필요했다. 꼭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마음이 찜찜해서 더욱 그랬다.

 

좌절감을 안고 국경검문소를 다시 나와 남쪽으로 조금 달리다 풀을 뜯는 야생 낙타들의 모습이 잃어버렸던 고대 유적이 살아난 것처럼 반가웠다. 낙타들은 얼마 전까지 이 유라시아대륙을 이어주던 급행열차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낙타는 사막에서 생존력이 강한 동물이다. 낙타 등에 달린 불편할 것 같은 혹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고비사막을 중심으로 몽골.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던 쌍봉낙타가 수송용 가축이었다면 아라비아 사막의 단봉낙타는 다목적용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낙타가 단봉낙타이다. 젖은 사람이 먹었고 걸음이 빨라서 전투용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실크로드를 다니는 상인을 페르시아어로 카루반이라고 하는데 카라반은 여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낙타 한 마리가 실을 수 있는 짐은 270kg이고 하루 이동 거리는 45km 정도라고 한다. 그 옛날 세상이 평화로웠던 시기에는 1000~5000마리의 낙타를 이용한 대규모 캐러밴도 있었다니 당시에 실크로드 무역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낙타는 아무리 봐도 눈이 잘생겼다. 성격은 유순하면서도 퉁명스럽고 신경질적이다. 짜증 난 녀석은 되새김질한 오물을 귀찮게 구는 사람 얼굴에 퉤 뱉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차에서 내려 사진 촬영을 위해 낙타에게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이 말을 되새김질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잿빛 협곡을 수도 없이 지났다. 중간중간 만나는 바짝 마른강이 썰렁했다. 달의 표면을 여행하듯 이곳은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 권태와 나른함, 미친 듯 춤추는 뜨거운 태양만이 동행했다. 양치기 목동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곳에도 가끔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집이 가끔 보인다. 이곳에서는 다가오는 봄의 색깔을 찾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저녁 늦게 국경을 넘는 일은 포기했다. 여러모로 현명한 생각 같지 않아서 국경에 들어서기 전 시르반이라는 도시에서 자고 아침 일찍 국경을 향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이란 쪽 수속이 다 끝나고 투르크메니스탄 수속을 마칠 무렵에는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였으니, 어제 시르반에서 자고 온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침묵하고 무엇을 절규하여야 하나? 역사는 한 중년의 사내가 감기몸살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이 거칠고 숨 막히도록 고요한 사막을 필사적으로 달려간 것을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약자의 슬픔과 고통을 역사는 외면했지만 문학은 그것을 좇았다. 우주적 탯속과 같이 이곳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한 사나이가 어떻게 변하는지 세밀하게 묘사하는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내는 일에 장인의 정성을 쏟아붓는다.

 

내 발걸음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며 번창하게 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도 한다. 사막을 달려서 건넌 일이 이야기로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나는 관객이라곤 없는 광대한 리허설 무대에 뎅그라니 선 연사(演士) 같았다. 머릿속에 대사들이 새처럼 날아오른다. “머나먼 실크로드, 모래 먼지 날리는 둔덕 위를 낙타는 메마른 풀을 뜯으며 길 없는 길을 가고 또 갔으며, 한 중년의 사내가 또 길 없는 길을 달려갔노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리라.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