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영상 시인이자 영상 철학자로도 불릴 만큼,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존재와 구원 등 철학적, 신학적, 존재론적 질문들을 영화를 통해 던졌던 진지한 예술가였다. 그의 영적 탐험의 시기를 열었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 <제 7의 봉인>은 베리만의 작가적 성숙기에 완성된 작품으로, 신과 인간의 존재 그리고 죽음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제7의 봉인'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구절로 세상의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을 일컫는다. 14세기 중엽,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막스 폰 시도우)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가 10년만에 고국 스웨덴으로 돌아왔으나 페스트가 온 나라를 휩쓸어 고국은 황폐해져 있다.
그의 종자 옌스(군나르 비욘스트란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기사는 죽음의 사자의 방문을 받는다. 기사는 자신의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해 사자에게 체스 게임을 제안하고 사자는 그에 동의한다. 승산이 없는 이 내기에서 블로크가 원하는 것은 체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을 말미 삼아 신의 존재와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기사는 교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마녀로 낙인이 찍힌 소녀 옆을 지키기도 하지만 그 어디에도 죽음만이 보일 뿐, 신의 구원을 찾을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죽음의 사자가 이끄는 ‘죽음의 춤’ 장면은 그 간결함과 아름다움으로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새벽, 아직 어둡고 번개치는 지평선 위로 죽음의 사자가 죽음의 춤을 추는 기사 일행을 데리고 가고 있다.
죽음의 춤은 Dance of Death 또는 Danse Macabre 라고도 불리며, 중세 시대의 벽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죽음의 보편성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잉마르 베리만이 묘사한 죽음의 춤은 한 폭의 회화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긴 망토를 휘날리며 낫을 들고 있는 사신에 이끌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기사 일행은 손에 손을 잡고 죽음의 군무를 추며 저 너머 어딘가의 심연 속으로 건너가고 있다.
낫을 깃발처럼 휘두르는 사신에 이끌려 어둑어둑한 황혼녘 지평선 저쪽 끝에서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일곱 사람의 검은 실루엣은, 마차에 그의 가족을 태우고 밝은 곳을 향해 떠나는 광대 요프와 대비된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이 장면은 오히려 평화스럽게 보이며, 그 매혹적인 이미지는 전설적인 명장면으로 남았다.
신의 존재 뿐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 삶의 부조리함, 인간 조건의 비극성 등 실존주의적 질문을 직설적으로 제시하는 영화 <제 7의 봉인>은 신학적, 철학적 주제를 다루는 동시에 고전 문학에 기반을 두면서 그 깊이를 더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돈 키호테>, <데카메론>, <파우스트> 등을 연상시키는 우화적인 이야기에 베리만의 철학적 비전이 더해진 <제 7의 봉인>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 됐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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