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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신일팜글라스 김석문 회장, 의료용기 앰플 제패…아프리카 케냐에 종합대학 세우는 꿈 펼쳐

신일팜글라스 김석문 회장, 의료용기 앰플 제패…아프리카 케냐에 종합대학 세우는 꿈 펼쳐
 
회사에서 나와 적자인 신일초자를 인수 흑자 경영으로 전환

아프리카에 종합대학 세우는 꿈을 위해 발을 내딛다

김 회장의 인터뷰 담은 책, <김석문: 기업가의 소명에 품격을 더하다>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3억의 부채가 있었던 회사를 인수하여 적자없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연매출 200억 원의 실적을 올린 후 본인의 호(號)를 딴 심향(心香) 재단을 설립, 아프리카 케냐에 종합대학 설립이라는 꿈을 실천하고 있는 신일팜글라스의 김석문 회장.

 

 

▲필자와 인터뷰 중인 김석문 회장 (c)시사타임즈

신일팜글라스는 의료 용기 앰플(Ampoules), 바이알(Vials) 생산과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회사다. 우수한 기술 인력과 첨단 생산 장비를 구축하여 국내 의료 기기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김 회장이 설립한 신일팜글라스는 지난 1986년 경기도 광주에서 신일유리주식회사로 출발했다.

 

1994년 공주시 검상농공단지로 공장을 이전한 신일유리는 2002년 공주공장을 대지 6,6116㎡으로 증설·확장하였고 2006년에 신일팜글라스로 회사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김석문 회장, 군 복무 후 YH 회사와 인연을 맺다

 

김석문 회장은 1948년 7월1일 경상남도 사천군 곤명면 성방리에서 2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김 회장은 그러나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대학을 중퇴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 YH 회사에 취업했다.

 

그렇지만 김 회장은 “YH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다른 회사로 옮겨 젊은 때에 차장 달고 고속 승진을 했을 때도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업은 아무나 하나. 김 회장의 경우 자기 사업을 위한 혹독한 트레이닝이 YH 회사에 근무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회고담을 듣고 있노라면 그것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군대 제대하자마자 YH  사라는 작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당시 살던 봉천동에서 회사가 있는 종암동까지 가려면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한다. 게다가 12시간씩 2교대로 일했다. 그래서 4시간도 못잤기 때문에 수면부족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지 말자 생각하면서 1년을 버텼다. 그러다가 그만 두고 다른 곳에 취업을 했다. 너무 편했다. 월급도 더 받았다. 그런데 YH 사 사장이 다시 찾아왔다.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겠다며 회유했다. 아마 성실하고 창의 능동적인 업무처리를 인정했는지 어쨌든 여러 번 찾아와서 회유하기에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YH 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말한 그대로 해 주진 않았다. 그래도 승진은 빨랐다.”

 

중국의 유비가 제갈공명을 데려오기 위해 삼고초려 했다는 말처럼 YH 사 사장이 김 회장을 삼고초려하다시피 하여 다시 YH 회사로 데려온 것은 신의 한 수와도 같았다.

 

“회사가 점점 커지고 거래처도 많이 늘어나고 다른 곳의 거래처도 우리 쪽으로 왔지요.”

 

당시 김 회장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업무계획을 쫙 세웁니다. 오늘 전화할 업체, 방문할 담당자, 식사할 대상 이렇게 적어놓고 한명씩 전화를 했어요. 하루에 10군데 이상은 꼭 방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점심이나 저녁은 꼭 거래처 담당자들이랑 먹었습니다. 어쩌다가 약속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방문할 곳이 펑크가 나면 제가 못겼디겠더라구요. 다른 담당자랑 약속을 잡고 밥을 먹고 개인적인 얘기도 하고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이렇게 십 수 년을 영업하니까 회사는 물론이거니와 저도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6개월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더라고요 진짜 졌다고. 김석문 씨 믿고 거래하겠다고.”

 

이처럼 능력을 인정받았던 김 회장이 왜 YH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까.

 

“1985년으로 기억됩니다. 회사가 많이 커졌고 직원들도 많이 늘었는데 문제가 하나 불거졌어요. 사장님이 영업사원들에게 회사 차량 지원은 물론 식비조차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않아 영업사원들이 자기 비용을 쓰고 영업하는 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무님한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전무님께서 자긴 얘기 못하겠다며 저더러 사장님께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사장님을 찾아가서 이야기 했습니다. 이러저러해서 직원들이 힘들어 한다고. 그랬더니 사장님이 알겠다고 하셨어요. 근데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계속 얘기할 수도 없는 거고. 그래서 회사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저를 제어하시려는 건지 그래 그래라 하시더라고요. 그 대신 일 년 동안 대체할 사람 키우고 나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알겠다 하고 1년 동안 더해주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사장이 다시 찾아오고 했지만 그때에는 저도 다른 생각이 있어서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신일팜글라사 김석문 회장 (c)시사타임즈

◆ 김석문 회장, 적자인 신일초자를 인수 흑자 경영으로 전환시키다

 

이런 연유로 YH 회사에서 나오게 된 김 회장에게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릴 줄이야.

 

“그만두고 나니 가슴이 좀 휑했습니다. 근데 신일초자라는 회사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직원들이 저를 찾아와서 회사를 맡아 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계속 오는 거예요. 그래서 관심을 갖고 회사를 살펴보니까 부채가 3억이었고 매월 적지 않은 적자가 나고 있었어요. 그 당시 굉장히 큰돈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구나 싶어서 경영권을 모두 제가 행사하는 조건으로 친구와 51대 49로 출자해서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광주에 땅을 조금 사서 공장을 옮겼습니다. 조그만 기계 두 대로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때 인수할 때 저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지금 연간 매출액이 200억 정도 됩니다.”

 

놀라운 것은 김 회장이 회사를 인수한 그 다음해부터 흑자 경영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제가 회사에 대해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건 그때 이후로 아직까지 적자가 없었다는 겁니다. 오면서 여러 번 위기가 없진 않았지만 다들 사업하다보면 조금 어려워지기도 하고 그렇잖습니까. 그 정도이지 회사가 위기라고 한 적은 없었습니다. 거래처 세 군데가 줄 도산한 적이 있었고, IMF 때 좀 휘청거리긴 했었습니다. 그때까지 사업하면서 개인적으로 보유해 놓은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익이 나면 직원들 월급 올려주고 또 유리공업이 기계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해야 했기 때문에 버는 대로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IMF가 되니까 환율이 올라요. 그러다가 흑자도산 상태가 나게 되었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나갈 돈 아끼고 들어올 돈 올리고 해야지. 그때 직원들 월급을 50% 반납 받았습니다. ‘회사 사정이 이렇다. 그래서 나는 돈을 안가져갈거고 너희도 50%밖에는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다닐 거냐’ 그렇게 물었더니 모두 같이 다니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고정비 줄이고 원가절감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판매가격을 조금 올렸는데 그래도 저와 몇 십 년을 거래하던 업체라 계약을 파기하고 그러진 않더라구요. 그래서 금방 회복하게 됐습니다. 회복한 후에는 직원들 월급부터 원상복구 해줬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못받은 부분 다 계산해서 돌려줬습니다.”

 

김 회장의 얘길 통해 김 회장이 직원들의 복지와 유리 공업의 특성에 맞는 기계설비 투자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동시에 김 회장의 업무스타일은 철저하게 현장중심의 경영을 펼치고 있음도 알게 한다.

 

“직원들은 저에 대해 부드러운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업무 현장에선 아주 칼 같습니다. 원가가 얼마 들어가고 회사의 수지가 어떻게 되고 이런 거는 제가 직접 챙기고 매월 보고하도록 합니다. 일전에 실적보고를 받았는데 분명 아닌 것 같은데 직원들이 좋은 실적을 가지고 오는 겁니다. 그래서 살펴봤더니 살짝 바꿔서 적자가 나겠는 상황을 숨기려 한 것처럼 된 겁니다. 딴에는 제가 걱정할까봐 호실적으로 보고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일주일에 이틀을 제외하고는 현장으로 가서 직접 살피며 꼼꼼하게 실적 관리를 합니다.”

 

 

▲(위) 의료용기 앰플 (아래) 의료용기 바이알 (c)시사타임즈

◆ 김석문 회장, 아프리카 케냐에 종합대학 세우는 꿈을 위해 발을 내딛다

 

전역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유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해온 김 회장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아프리카 케냐에 우리나라의 연세대와 같은 종합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꿈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석문 회장은 수년 전 선교 및 구호활동을 하며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아직도 배를 곯으며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김 회장은 이들을 평생 후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일을 혼자서 할 수도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베풀며 복을 얻어갔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바람에서 재단까지 만들었다. 김석문 회장의 호(號)를 딴 ‘심향재단’이다. 김 회장은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내준 사람들과 함께 직접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구호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갈 때마다 여러 곳에서 후원해준 노트북, 학용품, 양말, 티셔츠, 수건, 책 등을 한 보따리씩 짊어지고 떠난다. 그렇게 한국 땅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옮겨갔고, 케냐의 척박한 땅 한 곳에 김석문 회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꿈이 담긴 학교가 만들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도울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아프리카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배우게 되고, 이 나라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구나 알게 되면 자연스레 대한민국을 알리는 거고, 우리나라에도 공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소외받는 아이들이 있지만 학교가 있어도 학교를 안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학교가 없어 못가는 환경인데 이 환경을 바꿔주면 아이들이 배울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또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게 저의 마지막 꿈입니다.”

 

이 꿈의 실현을 위해 김 회장은 자신이 결단한 심경을 내비쳤다.

 

“저는 가족한테도 얘길 했습니다. 지금 재산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을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꼭 이루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종합대학을 만드는 것은 저 혼자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매월 만원씩 후원할 사람들을 열심히 홍보해서 10만 명을 모을 겁니다. 그러면 매월 10억씩 모입니다. 그러면 아프리카에 대학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김 회장의 인터뷰를 담은 책, <김석문: 기업가의 소명에 품격을 더하다>

 

아프리카 케냐에 종합대학을 세운다는 꿈을 위해 김 회장이 한 권의 책을 발간했다. <김석문: 기업가의 소명에 품격을 더하다>는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은 의료용기 앰플·바이알 생산 국내 1위 업체 ‘(주)신일팜글라스’를 이끌고 있는 김 회장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기업 활동 하나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아프리카 케냐에 교육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남은 인생을 바치고 싶다는 김 회장이 이 책을 통해 그의 인생과 기업 이야기, 그리고 그의 신앙과 가족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책은 이 분야에서 업계의 전설로 남은 ‘영업맨 김석문’의 영업 노하우가 담겨진 보배와도 같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석문 회장 자서전 - 기업가의 소명에 품격을 더하다 (c)시사타임즈

이 책에서 김 회장은 “좋은 시설이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메시지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는 그가 실천해온 삶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하던 19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시설과 장비가 열악해 기술자들이 전통 방식대로 벌겋게 달아오른 유리덩어리를 입으로 일일이 불어가며 용기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77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생활보호대상자 등에 대한 의료사업이 실시되고 많은 국민들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의료시장이 커지고 인프라도 발전해갔지요.”

 

그래서 김 회장은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시키고 의료용기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유럽과 미국 등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선진기술을 습득하고 자동화 기계라인을 들여오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 결과, 신일팜글라스는 국내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의료용기를 생산해내는 전문업체로 자리 잡았고, 국내 의료기기 산업 발전과 국민 건강에 크게 기여하였다.

 

김 회장은 아프리카 케냐에 종합대학을 세우는 꿈을 실천하기 위해 “이제 텃밭에 씨앗을 심었을 뿐, 아이들이 건강하고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이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며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의 후원을 기다린다”고 전했다.

 

경영에 있어서는 열정과 포기없는 끈기, 그리고 현장경영을 통한 철저한 실적 품질 관리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CEO이자 밖으로는 배움을 위해 스스로도 다른 사람에게도 아낌없이 투자하는 신일팜글라스 김석문 회장. 김 회장의 얘길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삶에 배어있는 내공이 여상치 않음을 실감한 필자가 송파 서울사무실에서 가진 김 회장과의 만남이 너무 아쉬워 중국과 합작 회사 설립 건 등으로 바쁜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한 차례 더 만남을 요청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룬 김 회장이 아프리카 케냐에 종합대학을 세우겠다는 꿈도 마침내 이뤄내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기에 꿈을 향한 그의 인생 행보가 예사롭지 않게 보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김 회장과의 인터뷰가 기다려짐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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