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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24)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24)

퍼스트 펭귄 (First Penguin)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펭귄은 휴식을 취할 때 바다 밖으로 나온다. 얼음 위에서 한참 휴식을 취하고 놀다가 보면 다시 배가 고파진다. 펭귄의 무리는 뒤뚱뒤뚱 줄을 서서 바다로 달려간다. 마침내 바다가 바로 코앞에 펼쳐지는 순간 펭귄들은 멈칫한다. 바닷속에는 물고기가 많아 금방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자신들을 노리는 범고래, 상어, 바다표범, 물개 등 천적들도 많기 때문이다. 바다는 먹이를 구하기 위한 멋진 공간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공포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럴 때 한 마리 펭귄이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펭귄들도 두려움을 이기고 잇따라 뛰어든다. 처음으로 물속으로 뛰어든 펭귄은 누구보다도 배가 고팠다. 누구보다도 간절해서 용기를 갖고 먼저 물속으로 뛰어든 펭귄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 이때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도 뒤따라 뛰어들도록 이끄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 바닷속과 같은 불확실성을 우유성(偶有性)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과감한 퍼스트 펭귄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일에 처음으로 뛰어드는 일은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항상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재빨리 2등으로 출발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침내 1등까지 앞지른 2등 전략이 언제나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사회였다. 언제나 눈치 보기와 비굴한 처신을 하며 오로지 시험을 잘 보는 머리 좋은 영악한 인간이 두각을 나타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과감하게 시도하는 스타트업을 선택하면 생존율이 3~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 탈락하여 낙오자가 되면 취업을 하거나 경력을 쌓는데 치명적인 결격사유로 작용한다. 다시 역전의 기회를 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자본주의 무한 경쟁체재에서 젊어서 실패하는 것은 재기가 거의 불가능한 낙오자를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도전하지 않고 모험하지 않고 눈치작전만 편다.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넓고 훤한 곳에 터져 나와 손을 펴고 발을 펴매 그 마음이 시원할 것이니, 어찌 한마디 참된 소리를 내어 제멋대로 외치지 않으리오. 그러므로 우리는 저 갓난아이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저 비로봉 산마루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며, 황해도 장연 바닷가 금모래 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며 이제 요동 벌판에 와서 여기서부터 산해관까지 1천2백 리 사방에 도무지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변두리에 맞닿은 곳이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고금에 오가는 비구름만 창창할 뿐이니 이 역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소.”

 

압록강을 건너 광활한 만주벌판을 마주하고 감격한 연암 박지원은 이곳이야말로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외쳤다. 빛나는 환희와 깊은 애상은 상통하는 법이다. 비좁은 땅을 벗어나 저 만주벌판과 같이 한없이 드넓은 세계로 나선 해방의 기쁨은 통곡으로밖에는 표현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연암은 이를 마치 아기가 좁은 어머니 자궁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의 첫 호흡을 시원하게 터트리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였다.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좁은 국토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를 숙명으로 알고 살았다. 그러니 휴전선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온 우리가 얼마나 답답증에 걸려 병이 됐을까? 삼면은 바다이고 나머지 한 면마저도 철조망이 가로막혀 세상으로 뻗어가지 못하는 한반도의 모습은 자궁 속 아기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 같은 냉전 시대의 좁은 시각을 버리고 평화와 화해의 새로운 길을 갈 때이다.

 

연암은 건륭제 치하의 중국이 온갖 물품을 수레에 싣고 규격이 정해진 길을 따라 어디든지 이동하는 모습에 감탄을 쏟아냈다. 지금 시진핑의 일대일로는 청의 건륭제 때 유정일로와 상통한다. 박지원은 조선의 땅을 어머니의 태중으로 비교하였고, 또한 중국의 수레가 사통팔달한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연암의 눈에는 수레가 바로 문명의 척도로 보였던 것이다. 중국의 풍부한 물산을 막힘없이 사방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것은 길을 잘 정비했고 수레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수레에 비해서 중국의 수레바퀴는 정확하게 동그란 원형이고 규격화되어 있었다. 길이 좋지 않으니 수레가 발달하지 않았고 가마를 타고 이동하는 불편을 감수한 것이다.

 

사람들은 수레나 길을 개량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산이 많아서 길이 험하다는 핑계만 대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가마를 타고 골목길이나 다니니 머리가 수레바퀴처럼 돌지 못했다. 가마는 우리에게 정체된 사고였고, 정체된 경제였고 정체된 국방이었고, 정체된 문화였다. 길은 문명의 척도였다. 로마의 길과 그 옛날 연암이 목격한 베이징의 길은 같은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지금 중국과 러시아의 철도가 남쪽에 닿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유라시아의 길을 통해 우리의 젊은이들이 중앙아시아로 유럽으로 직접 통하는 길을 타고 나아가 꿈을 펼치고 일자리를 만드는 세상을 그린다. 남방항로는 무해 통행권이 보장되어 몸도 마음도 상상력도 제약 없이 퍼져나가는 세상을 그린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은 세계평화로 귀결되지 않았다.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양분되었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냉전의 긴장은 사람들의 삶을 갉아먹었다. 그리고 또 냉전이 종식되고도 세계평화는 오지 않았다. 미국은 초강대국이 되었고, ‘America First!’라는 구호 아래는 다른 나라의 안전과 평화는 허울뿐이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미국국민들이 맘껏 스테이크를 먹으며, 맥주를 마시며 프로 야구나 미식축구를 즐기게 하면 쉽게 표를 얻었고 미국인들은 비만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줄도 모르고 현실에 안착하였다.

 

구유고슬라비아에서는 야만적인 전쟁이 일어났고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시리아 등 중동의 화약고는 계속 화염을 발사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은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가난과 질병을 간단하게 외면했다. 그런 환경은 그들의 무기를 팔기 좋은 환경이었으므로 그들은 오히려 이런 불안을 조장하는 데 앞장서왔다.

 

간혹 폭정에 시달리던 민중이 일어나 진보적인 정치지도자가 들어서며 역사가 바뀌는가 하는 순간에도 어떤 이유인지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다시 혼란에 빠지거나 미국의 입맛에 맞는 독재자의 손에 여지없이 정권이 넘어가는 절망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 정부는 여지없이 경제를 왜곡시키는 어마어마한 군사 예산을 집행하고 있으며, 모든 부조리와 폭력의 근원인 엄청난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사람들은 변화를 바라지만 무기력하고 피동적이다. 그들은 퍼스트 펭귄이 되어 물속으로 뛰어들어 맞닥칠 천적으로부터의 위험을 감당할 용기가 없다. 다른 누군가가 첫 번째 두 번째가 되어 물속으로 들어간 다음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결코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려 한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는 사람들은 민첩하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사람들에게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수정의 한 면 한 면을 바라보듯이 결코 짧은 시간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달리면서 응축된 세상을 보았다. 기러기 떼 지어 날고 서풍은 계절을 재촉하는 듯하지만, 백두산 호랑이 한 번 포효하면 곧 동녘 하늘이 밝아올 것이다. 지금 달리는 여기가 바로 영웅들이 수없이 싸웠던 전쟁터 만주벌판이다. 천하가 편안한지 위태로운지는 언제나 만주벌판에 달려 있었다. 만주벌판이 편안하면 나라 안이 잠잠하다. 만주의 서북 방향 따싱안링(大興安嶺) 산맥과 남동 방향에 백두산이 있는 장백산맥에 둘리어져 있는 곳이 ‘東北평야’로 발해가 있던 지역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누구보다도 갑갑증을 느꼈던 내가 먼저 바닷속같이 멋진 공간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 유라시아대륙으로 뛰어들었다. 만주벌판을 달리면서 지나온 생을 반추해보니 특별히 앞으로 나서서 한 일도 없었으면서 늘 경쟁에서 지는 못난이였었다. 그 못난이가 뒤뚱뒤뚱 퍼스트 펭귄이 되어 유라시아대륙을 다 달려서 이제 며칠이면 단둥에 도착한다. 압록강은 내게 빙하의 끝자락 같은 곳이다. 이제 평화와 통일의 물고기가 가득한 압록강 너머로 뛰어올라야 한다. 내가 퍼스트 펭귄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강 압록강과 임진강을 건너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다.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내가 단둥까지 무사히 도착할지 의문이었지만 압록강을 건너는 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때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을 때가 있다. 단동까지만 무사히 오면 압록강을 건너 뒤뚱뒤뚱 한반도를 남북으로 달리는 평화의 퍼스트 펭귄이 될 거라 확신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과 시련 속에서 달려 무수한 고난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압록강이 다가오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입북허가장이 날아오지 않았다. 나는 박지원이 탁 터진 세상을 마주하며 통곡한 것과 다르게 아직도 울타리 안에 갇힌 답답함으로 통곡을 할 지경이었다.

 

이제 단둥 도착 며칠을 앞두고 서울에서 응원단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나와 같은 마라톤클럽의 백형식형과 전주에서 김안수씨와 경기도에서 김종익씨가 와서 동강까지 함께 달렸다. 나는 마치 오지에서 구출된 사람처럼 눈물로 사람들을 맞았다. 입북허가장을 아직 받아들지 못한 나는 결혼축하연에 아직 신부는 오지 않았는데 하객들이 먼저와 조바심이 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희망과 소명을 공유하는 일은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만주벌판을 함께 달리는 것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솟게 한다. 이제부터는 조선·중국 국경 지역이라 중국 공안이 무척 신경을 곤두세우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달리지도 말고 구호도 외치지 말며 더욱이 현수막은 들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가 떨어진 상태에서 눈치껏 조심하며 달렸다.

 

동강까지 달리고 마지막 단둥 철교까지 한 구간을 남겨놓고 심양, 푸순 환영문화제에 참가하려 심양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송인엽, 박민서, 연상흠씨 등을 만나서 다음날 일찍 푸순의 교포가 운영하는 신안 민속촌으로 이동하였다. 벌써 교포들로 구성된 풍물패와 교포들로 꽉 차 있었고 입구에는 ‘환영 강명구 마라토너의 유라시아 평화의 길’이라는 현수막이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이곳에서 동포들의 뜨거운 환영이 나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250여 명이 함께 평화의 띠그림을 이어 들고 풍물패의 길맞이 행사가 이어지고 이장희 상임대표의 경과보고와 김성곤 전 의원의 축사 조선족 대표의 환영사를 해주었다. 황량한 벌판에서 뜨거운 생명력과 근면함으로 일어선 이곳 동포들의 통일 열기가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조국의 화해와 통일을 목말라 했던 동포들, 지금 조국은 둘로 갈라졌지만 이들 기억 속에서 조국은 언제나 하나였다, 조중 접경지역이라서 더 뜨겁고 간절할지도 모른다.

 

조국의 통일은 정상들끼리 백두산 천지에서 두 손을 마주 잡는다고 오지 않는다. 우리 같은 민간인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부둥켜안아야 오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간절히 북녘땅 대동강 변 버드나무 아래서 세계적인 평화의 축제가 신명나게 펼쳐지기를 제안한다. “남한, 북한 시민 5만씩 재외동포와 세계시민 포함하는 약 15만이 대동강맥주와 남한 막걸리를 마시며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축제를 벌이자. 이념을 뛰어넘는 어울림 속에 마음의 분단선을 지워버리자”

 

누구보다도 갑갑증을 느꼈던 내가 먼저 바닷속같이 멋진 공간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 유라시아 평화의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내 발걸음에 수많은 남북한 시민들, 해외동포들 세계시민들의 처음 뒤뚱뒤뚱 달려올 때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만 보던 많은 사람이 이 평화의 길을 따라 달린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함께 달리면 이제껏 세계사에서 유래를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평화의 길’이 될 것이다. 간절한 마음이 얹어졌기에 나는 기꺼이 퍼스트 펭귄이 되어 압록강을 뛰어넘어 이 슬픈 강을 기쁨의 강으로 영원토록 흐르게 하고 싶다.

 

난 훗날 젊은이들과 맥주 한잔하며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두려워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노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일을 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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