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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8)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8)

형제의 나라 터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이제 나그네의 여정 중에 기독교 문화권을 다 지나 이슬람 문화권에 들어섰다. 격변하는 이슬람 세계로 뛰어들었다. 터키와 이란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을 지나서 중국에 들어가서도 신장웨이우얼 지역까지 거의 전 일정의 절반 정도를 이슬람 문화권을 통과하게 되어있다. 전 세계 57개국 17억 인구가 이슬람 사람이지만 그들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세계관을 심어놓으려는 저 빌어먹을 교육 당국의 책임이다. 시험 점수 1점으로 수많은 젊은이의 운명을 갈라놓은 교육 당국이 세상의 반을 일부러 감추고 역시 수많은 젊은이와 세상을 왜곡시켜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이 기회에 그들을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스탄불을 호기심을 가지고 찾는 외국인 여행자 수는 넘쳐나는데 이슬람 문화에 대한 오해의 깊이는 더 심해져 간다.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외국인은 이슬람인들의 삶의 방식에 무지하다. 그 책임의 대부분은 서방 언론과 교육 당국의 기독교식 교육에 있다. 그중에서 일부다처에 왜곡된 시선이 제일 치명적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이슬람 여인들은 우리가 아는 것만큼 이슬람이 여인들에게 불리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증언할 뿐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여자가 남자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조금 전에 차를 세우고 나에게 다가온 세헤르라는 여자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내 팔짱을 끼었다. 내게 예의 바르게 행동한 것과는 달리 대동한 남자에게는 거의 위압적으로 행동했다. 그가 남편인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물어보진 못했다. 그리고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라는 폭력성의 부각은 치명적으로 적대적인 프레임으로 이슬람을 왜곡하는 주범이었다. 이들은 문명, 근대, 민주’로 서구인들이 세뇌시켰던 지난 백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백년을 함께할 동반자이다.

 

할리우드도 이런 썩어 빠질 일에 앞장선 정황은 많다. ‘솔로몬의 딸’ ‘트루라이즈’ ‘블랙 호크 다운’ ‘언더 시즈’ ‘ 델타 포스’ 등의 영화 외에도 무수히 많은 영화가 아내를 구타하는 무슬림 남편, 폭탄을 던지는 테러범, 등 우스꽝스럽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앞장섰다. 이슬람 공포증, 즉 비이성적인 이슬람 공포증은 9,11을 겪으면서 극에 달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이슬람 이민자들은 강제로 재등록 대상자가 되었고, 이유 없이 구금되거나 추방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는 외모 때문에 불심검문을 당하고 공항에서 곤욕을 치르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아직도 유럽이나 미국의 일부 교과서는 무함마드를 간질병 환자로 묘사하고 꾸란을 성서의 거짓 사본으로 간주한다. 또한 이슬람을 과학적 이론과 학습 전통이 전혀 없는 종교로 가르친다. 그들은 터키와 칠면조가 깊이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모르는 만큼 신비스럽다. 그러나 모른다고 다 신비롭지는 않는다. 오늘날 서구 문명을 대표하는 미국인의 과반수가 이슬람 세계에 존경할 만한 것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대답할 만큼 무지하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역사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배우다 보면 중동 과학의 큰 결실 없이 서양 문명을 상상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세 유럽은 어둠이 지배하던 야만의 문명이었다. 오죽하면 칭기즈칸이 헝가리 평원을 넘어서 독일로 진격을 하다 전쟁에 승리해도 부하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줄 것이 없어 진격을 멈추고 말머리를 돌렸을까?

 

당시 유럽인들은 글자를 읽을 줄 모르고 달력을 갖지 못했다. 조금씩 그들에게 흘러간 이슬람 문명 덕에 수백 년 만에 조금씩 이성에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슬람으로부터 실용성을 배우고, 이슬람의 학문으로 과학적 사고를 하게 되었고 이슬람의 철학에서 르네상스의 씨앗인 이성을 찾았다. 기독교 세계가 이슬람에 빚을 졌으면서도 이슬람을 잔인한 근본주의 문명으로 낙인찍는 것은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억울하기 짝이 없다.

 

나의 평화마라톤과 평화와 평등의 종교 이슬람이 만나서 펼쳐놓을 이야기보따리가 나 자신도 궁금해진다. 서구가 만들어놓았던 왜곡의 시각이 아니라 아무런 편견 없이, 아무런 사전지식이 있을 리 없는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마주친 사실들을 날것 그대로의 문화적 현상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이것은 분명 서방세계가 자기 국익을 위해 만들어놓은 이슬람의 이미지와는 분명 거리가 있을 것이다. 달리는 몇 달 동안 무슬림이 누구인지, 어떤 의식을 실천하는지, 어떤 과제에 직면해 있는지, 세계적으로 기독교도의 수는 줄어드는데 이슬람이 최근에도 많은 개종자를 배출하는 매력은 무엇인지, 모두 다 알 수 있게 되지는 않겠지만 분명 나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혀가며, 그리하여 나의 삶도 풍부해지고, 세계평화의 새로운 설계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앞으로 통일 이후 평화의 세기를 이끌어갈 사람들에게 21세기는 우리가 인식의 주체가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절실하다. 평화의 시대에 물질적 가치보다는 영성적 가치가 더 고귀한 가치가 될 것이 분명하므로 이들의 삶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터키의 국경을 넘어서 제일 먼저 만난 도시는 에디르네이다. 에디르네에 들어서자 하굣길에 학생들이 친근하게 다가오며 인사를 한다.

 

그들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형제의 나라라며 반긴다. 터키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신들의 조상이 몽골 초원에 살던 튀르크족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서쪽으로 이동해서 세운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제국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배운다. 튀르크족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그 일부는 고구려의 기층 민족이기도 했다.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고 고구려가 멸망하자 돌궐은 고구려의 유민들을 많이 받아들였다. 돌궐의 왕은 선우이었고 그 밑에 좌현왕과 우현왕을 두었는데 고구려 유민을 통치하기 좋게 고려왕도 두었다.

 

당나라의 공격으로 세력이 약화된 돌궐은 8세기 무렵 사라센 제국의 용병으로 남하하여 서방세계로 이동하는 계기가 된다. 용병에 불과했던 돌궐은 11세기에 사라센 제국을 멸망시키고 셀주크튀르크 제국을 건설했다. 지구의 반대편에 존재하면서 우리와 흡사한 것들을 많이 공유한다는 사실에는 놀랄 수밖에 없다. 잃었던 형제가 지구의 반대편에 입양 가서 잘살고 있다가 만나는 느낌이었다. 우선 언어가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에 속하여 문법이나 모음조화 등이 거의 비슷하다. 살아가는 방식이나 감정 표현 방식이 비슷하다. 터키어로도 물은 수(水)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에디르네는 터키 북서쪽 에디르네 주의 수도이며 옛 오스만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건설하였다고 오래전에는 아드리아노플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도시이다. 불가리아부터 흘러내려 오는 마리차강과 툰자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 도시는 하늘을 찌를듯한 미나레트가 저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미나레트는 아랍어로 ‘빛을 두는 곳, 등대’를 의미하는 '마나라'에서 유래하였다. 도시 한가운데 셀리미예 모스크가 웅장한 모습을 하고 서 있다. 378년에는 로마군과 서고트군이 격렬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이고 터키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에디르네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쿠란 낭송 소리이다.

 

기독교와 불교는 종이 있는데 이슬람교에는 종이 없다. 확성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쿠란을 낭송하는 낯선 소리가 나그네의 곤한 잠을 깨우고 만다. 조금 더 잠을 자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나그네에겐 고약한 소음으로만 들렸다. 잠을 빼앗긴 사람의 삐뚤어진 마음으로는 하루에 다섯 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장엄하고 웅숭깊은 아잔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복잡하고 비좁은 찻길을 달리는 여정의 안전을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출발한다. 나는 사실 하루에 다섯 번도 더 기도한다. 이슬람은 알라와 신도가 중간 성직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만난다. 도로는 지금까지 지나온 나라들보다 좋은 편이다.

 

오늘은 두 번이나 군인들에게 불심검문을 당한다. 정확히는 그들은 잔다르마라 부르는 헌병이다. 여권을 받아들고서 꼼꼼하게 살피며 상관에게 보여주러 가기도 한다. 경찰이 아니고 군인이 불심검문을 한다는 것은 정정이 불안하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터키의 군인들은 그 옛날 오스만 튀르크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옛 영광은 잃어버렸지만 아직 강력한 군대이다. 최소한 터키 국민을 향해서는 강했다. 터키에서 잔다르마들은 다른 길 위에서 만난 어떤 사람들보다 더 지적으로 보였다. 일단 그들의 대부분은 영어가 어설프지만 가능할 정도로 일반 시민들보다 나았다. 어디든지 엘리트 그룹들은 권력 있고 돈 있는 곳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지식인들이 공익심 있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란 힘든 모양이다. 터키에서 헌병이란 직업은 우리의 대기업 직원들처럼 매력적인 직업 같았다. 민간 치안까지 헌병들이 맡았으니 그 권력은 대단하다.

 

그는 “내게 당신은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리시는군요. 나는 포레스트 검프를 영화로나 보지 실천은 하지 않아요.” 나는 “그에게 터키에서는 헌병이 친절하게 외국인 관광 안내까지 하는군요. 고마운 일이죠. 당신은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리실 필요가 없으세요. 바쁘시니까요.”라고 웃으면서 뼈 있게 대답해주었다. 그는 나를 따라서 웃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의 웃는 모습은 결국 씁쓸하게 보이고 말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터키에는 아주 작은 마을일지라도 가는 마을마다 모스크가 있기도 하지만 초기 기독교의 7대 교회가 여기에 다 있다. 그러므로 터키는 아시아인에게도 유럽인들에게도 이질감과 동질감을 동시에 주는 곳이기도 하다. 튀르크 민족이 어떤 시련을 겪으며 이 땅의 주인이 되었는지, 어떻게 오스만제국이 세워 지난 600년간 얼마나 광대한 제국을 다스렸는지 더듬어 갈 것이다. 그들은 왜 우리와 서로 ‘형제의 나라’라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하는지 이 땅을 달리면서 사색하고 공부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겠다.

 

터키는 건국 기원을 돌궐이 중국의 유연으로부터 독립해서 나라를 세운 552년을 삼는다. 튀르크족은 동쪽에 있을 때 우수한 철 생산 기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유연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유연의 왕들은 튀르크족이 만들어 준 철제무기 덕분에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였다. 당시 유연의 왕 아나괴는 숙부의 반란으로 골치를 썩었다. 이때 부민은 아나괴를 도와 반란을 제압한 다음 공주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나괴는 부민에게 “대장장이 주제에 감히 나의 딸을 넘봐? 너는 나의 노예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라!”라고 화를 내며 면박을 주었다. 아나괴가 자신의 청혼을 거절하며 모독하자 부민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부민이 유연에 철제 무기를 공급을 끊자 유연은 차츰 힘을 잃게 되고 말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민은 튀르크 부족을 이끌고 유연을 공격해 나라를 세운 뒤 카간에 올랐다. 부민에게 패한 아나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민이 세운 나라가 바로 튀르크족이 세운 최초의 나라이며 터키는 이 해를 건국의 해로 기념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부르는 돌궐은 오랑캐라는 뜻이다. 튀르크 즉 돌궐은 터키에서 멀리 떨어진 몽골 초원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돌궐은 한때 만주를 호령하던 고구려와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기도 했다. 이들은 6세기 후반에 몽골 초원을 아우르는 제국으로 발전하다 동 튀르크, 서 튀르크로 분열되었다. 서 튀르크의 일족인 셀주크 튀르크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해서 셀주크 튀르크 제국을 세웠다.

 

그 뒤를 이어 오스만제국이 나타나고 이를 계승한 나라가 터키이다. 우리의 건국신화에 호랑이와 곰이 등장하듯이 터키의 건국신화에는 늑대가 등장한다. 튀르크족의 영역은 아시아를 넘어 지중해 동부와 몽골 고원까지, 그리고 중부 볼가 분지와 카자흐스탄의 시베리아 경계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뻗어있다. 이 지역에는 터키 공화국 외에도 6개의 독립된 튀르크족 국가가 존재한다.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이다.

 

이밖에도 여러 나라에서 자치지역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 국가 중에 아제르바이잔만 빼고 나는 모두 거쳐 갈 것이다. 튀르크족의 영욕의 그림자를 따라 달려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어쩌면 이 사람들 말대로 나의 피 속에 튀르크족의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니 가슴에 사막의 모래바람 같은 광풍이 몰아친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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