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570)]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저 | 더숲 | 256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미지의 책을 펼치는 것은 작가에 대한 기대와 믿음에서다. 시집, 산문집, 여행기, 번역서로 변함없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류시화 시인의 신작 에세이. 이번 책의 주제는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이다.
표제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외에 「비를 맞는 바보」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라」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불완전한 사람도 완벽한 장미를 선물할 수 있다」 「인생 만트라」 「자신을 태우지 않고 빛나는 별은 없다」 등 삶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인의 언어로 풀어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진실한 고백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 어차피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하고 또 하고 끝까지 할 수밖에 없다는 「마법을 일으키는 비결」도 실었다.
한 권이 책이 우리를 껴안을 때가 있다. 독자는 읽는 순간 느끼고, 그 느낌을 믿는다. 글 속에 글쓴이의 진정성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를. 어느 인터뷰에서 저자는 말한다.
“내게 독자란, 글을 나눠 읽는 동지이다. 내 글을 읽은 사람을 만날 때 나는 같은 인간 존재로서의 동지애를 느낀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여행을 하다가 칠레의 탄광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갱도에서 일하던 얼굴이 새까매진 광부가 다가와 네루다를 와락 껴안으며 외친다. ‘당신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런 동지가 있을 때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굳건해진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무너지거나 절망한 적이 많다. 그럴 때 나를 일으켜 세워 준 사람들,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가리켜 보인 이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저자는 늙은 암소 한 마리에만 겨우 의지해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던 어떤 가족이 암소가 절벽에 떨어져 죽은 후 삶의 반전을 시도해 비로소 인생 최고의 행운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어떤 암소를 가지고 있는가? 그 암소의 이름은 무엇인가?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좋은 글은 마음을 맑게 한다. 그래서 마음을 치유한다. 시인의 글답지 않게 형용사와 부사를 자제한 문장들, 눈앞에 그림을 그리는 듯한 생생한 묘사가 독자를 ‘몰입’시킨다. 재치와 웃음이 담긴 문장들,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한 편 한 편 완결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책을 덮은 후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때로는 깊은 숨을 내쉬느라,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고 살아갈 날을 내다보느라 페이지 넘기는 손이 드문드문 멈출 때도 있다. 어둠 속에서 노래하는 새처럼 책갈피에서 숨쉬는 떨림과 울림이 있다. 저자의 인생 여정이 담긴 글인데도, 읽는 이는 자신의 숨소리가 들린다. 작가의 상속자는 독자라는 말은 옳다. 빙하기가 와도 삶을 사랑하는 심장은 뜨겁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세상과 인생을 보는 저자의 시각에 공감하고 그 세계에 끌린다. 분명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작가 류시화,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변함없이 좋은 글을 발표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그것을 ‘분투노력’이라고 말한다.
작가 류시화 소개
시인이자 명상가.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바 있다. 1980~1982년까지 박덕규, 이문재, 하재봉 등과 함께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83~1990년에는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구도의 길을 떠났다. 이 기간 동안 명상서적 번역 작업을 했다. 이때 『성자가 된 청소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티벳 사자의 서』, 『장자, 도를 말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등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40여 권을 번역하였다. 1988년 '요가난다 명상센터' 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명상센터를 체험하고,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와 만나게 된다. 1988년부터 열 차례에 걸쳐 인도를 여행하며,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생활해왔다.
그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1989년~1998년 동안 21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시인은 「시로 여는 세상」 2002년 여름호에서 대학생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에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과 함께 이름을 올렸으며 명지대 김재윤 교수의 논문 설문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10위, 21세기 주목해야할 시인 1위, 평소에 좋아하는 시인으로는 윤동주시인 다음으로 지목된다. 저작권 협회의 집계 기준으로 류시화 시인의 시는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낭송되는 시로 손꼽히기도 한다.
류시화 시인의 작품은 문단과 문예지에도 외면을 당하기도 했는데 안재찬으로 활동했을 당시, 민중적이고 저항적 작품을 지향했던 당대의 문단과는 달리 신비주의적 세계관의 작품세계로 인해 문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외계인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주장하고 있는 민중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당시의 문단에서 현실 도피의 소지를 제공한다며 비난을 받았으며 대중의 심리에 부응하고 세속적 욕망에 맞춰 작품이 창작되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 이문재씨는 류시화의 시가 그 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고 초기의 시세계를 유지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2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을 지키며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변화 못지 않은 견딤이라 평가하기도 하였다. 류시화의 시는 일상 언어들을 사용해 신비한 세계를 빚어내어, 걸림없이 마음에 걸어들어오면서 결코 쉽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무게로 삶을 잡아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낯익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낯설음의 세계를 재발견하는 시세계를 한껏 선사해왔다.
그의 대표작인『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는 한층 깊어진 눈빛을 지닌 시세계가 곱씹히고 곱씹힌다. 류시화는 가타 명상센터,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지내며 네팔, 티벳, 스리랑카, 인도 등을 여행하며 그가 꿈꿔왔던 자유의 본질 그리고 꺠달음에 관한 사색과 명상들이 가득한 산문집을 내기도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실소를 자아내는 일화들 속에서, 그렇지만 그냥 흘려버리기엔 너무 무거운 이야기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준다.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비롯하여,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치유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집필했고,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썼다. 또한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와 인디언 추장 연설문 모음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썼으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티벳 사자의 서』, 『조화로운 삶』,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용서』, 『인생수업』 등의 명상서적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7년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2018년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1’ 『시로 납치하다』와 우화집 『인생 우화』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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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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