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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972)] 날마다 만우절

[책을 읽읍시다 (1972)] 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저 | 문학동네 | 316 | 14,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완숙하고 예리한 시선을 바탕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 윤성희의 여섯번째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 2016년 봄부터 2020년 겨울까지 쓰인 열한 편의 단편이 묶인 이번 소설집은 그전과는 또다른 아우라를 내뿜으며 윤성희 소설세계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젖히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단편소설의 마에스트로라는 수식을 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게 한다. 

 

소설집의 전반부에는 최근 윤성희 작가가 활달하게 써내고 있는 노년 여성 서사가 주로 배치되어 있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여름방학 는 오래 근무하던 회사에서 잘린 참이다. 적금 만기를 몇 달 앞두고 퇴직하게 된 상황이 불만스러울 법도 한데 는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퇴직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한다. 그 첫번째는 오래 일한 자신을 위해 꽃다발을 사기, 두번째는 축하주 마시기, 그리고 세번째는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남은 기억  또한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영순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영순의 용건은 오래전 자신의 남편과 내연관계였던 여자와 남편의 회사에서 일하다 공금횡령을 했던 남자가 결혼해서 차린 국숫집이 대박이 났는데, 그 국숫집에 함께 가서 욕을 해달라는 것.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으면서도, ‘는 자신의 아들이 어렸을 때 아들에게 장난감을 많이 사주었던 영순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기에 영순을 따라 그곳에 찾아가기로 한다.

 

이어지는 작품인 어느 밤에 나오는 육십대의 할머니 는 어떤가. ‘는 아파트 단지를 거닐다 놀이터에 세워진 분홍색 킥보드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훔친다. 지쳐 있던 에게 바퀴의 불이 커졌다 꺼지는 것이 마치 자신을 갖고 가라는 신호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막연하게 정적이고 노련하리라고 여겨지는 노년의 삶은 이렇게 윤성희를 통과함으로써 생생한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수십 년 써온 이름을 개명하기로 결심할 때, 친구의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날 때, 놀이터에서 훔친 킥보드를 타고 달릴 때, 그럴 때 우리의 시간은 고요히 멈춰 있기를 거부하고 어느 때보다 맹렬하고 생기롭게 흘러간다는 것을 윤성희는 이 작품들을 통해 인상적으로 그려 보인다.

 

눈꺼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 두 작품에는 모두 십대 남자아이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눈꺼풀 는 단짝 친구가 핑계를 대고 다른 친구들과 놀러간 것에 상심해 낯선 동네로 갔다가, 차선을 넘나들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버스에 치여 병원에 입원한 상황이다.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같이 찾아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족의 목소리는 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시시한 존재가 아님을 부드럽게 상기시킨다.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증명왕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 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증명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미성년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다. ‘외로운 사람이 감기에 더 잘 걸리느냐는 물음에도, ‘왜 그렇게 동생이 미워졌는지에 대해서도 쉽사리 답할 수 없는 는 자신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지켜주던 옆집 형이 왜 뉴스에 나올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다만 명백히 증명할 수 없는 일이 자신의 삶에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걸, 그것이 성장의 다른 면이기도 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아챈다.

 

마지막에 놓인 세 단편 블랙홀」 「스위치」 「날마다 만우절은 우리가 그 시절을 지나온 후에도 선명하게 해석되지 않는, 누구에게나 뚫려 있는 검은 구멍을 들여다본다.

 

블랙홀 속 세 명의 자식은 어머니가 감옥에 간 뒤 집을 팔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체육대회가 열린 날 동네 사람들이 먹을 음식에 농약을 넣어 감옥에 간 어머니. 어머니는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는 자식들의 대화들 사이로 각자의 마음속에 검은 구멍이 생기던 순간들이 비쳐 보인다.

 

스위치 가 교도소에 있는 막냇삼촌을 면회하러 가는 동안 삼촌이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선명히 떠올리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삼촌은 내게 눈사람을 만들어주었”(270) 새벽마다 오줌이 마렵다는 나를 귀찮아하지 않았”(272) 조카들 중 나를 제일로 예뻐했다”(273). 물론 이러한 회상이 삼촌의 행동을 옹호해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소설은 그에 대해 확정적인 대답을 내놓는 대신 다른 가능성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인 날마다 만우절에 그 가능성이 담겨 있다.

 

의 가족은 삼 년 만에 고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삼 년 전 아빠와 고모가 싸운 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지냈는데, 고모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가족에게 고모는 그거 거짓말이야. 다들 속았지”(296)라고 말하며 웃는다. 안도와 황당함이 지나간 뒤, “그런 거짓말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302)라는 말을 시작으로 가족은 각자가 품고 있던 이야기를 서로에게 내보인다.

 

거짓말일 수도,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는 각자의 내밀한 사연이 거짓말의 외피를 두르고 가볍게 던져질 때, 마음을 답답하게 옥죄던 비밀의 부피가 조금씩 줄어들며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채워질 공간이 생겨난다.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의 방식을 통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만들기. 윤성희의 소설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것은 바로 이렇게 날카로운 날을 부드럽게 만들어내는 이 전환의 마법이 아닐까.

 

 

작가 윤성희 소개

 

1973년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청주대 철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99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서른세 개의 단추가 달린 코트 2001 계단이 연이어 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1에 실렸으며, 모자 2001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 그림자들 2001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수록되었다.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부메랑으로 2011 11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이수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베개를 베다, 날마다 만우절 등이 있고, 중편소설 첫 문장, 장편소설 구경꾼들, 상냥한 사람, 중편소설 첫 문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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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