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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181)]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책을 읽읍시다 (2181)]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저 | 조호근 역 | 허블 | 384 | 16,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의 매력은 한국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다. ‘구미호’, ‘자동인형’, ‘기계 용’, ‘마법의 문양 등 이질적이고 환상적인 재료들이 한데 모여 보기 좋은 한 상을 차려낸다.

 

주인공 제비의 절친한 친구인 은 꼬리가 아홉 개 달렸으나 인간의 간을 빼먹지 않고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칭 현대적인 구미호 종족이며, 라잔의 군대를 이루는 자동인형 병사들은 화가인 제비가 마법의 문양을 그려 넣으면 생명을 부여받아 살아 움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제비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친구, 전쟁에 쓰일 라잔의 비밀 병기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털끝 하나 해치지 못하는 평화주의자 용 아라지 역시 제비가 그려 넣은 마법의 문양으로 인해 목소리와 생명을 얻어 자유로이 비상하는 기계 용(dragon)이다. 그렇기에 소설의 배경인 화국은 우리나라와 닮았으면서도 소설 속에서 생동하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진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는 근대화의 상징인 전기로 작동되는 가로등이 점점이 밝혀진, 그러나 아직은 구 왕조의 궁궐과 옛집이 남아 있는 수도의 사대문 안 한복판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기계 용이 날아다니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환상적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또한 제비의 연인이자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베이는 마치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검성의 현신처럼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갖춘 검투사다. 마법진으로 대지진을 일으키는 제비와 라잔 대전차 부대의 웅장한 전투 장면과 적을 상대하는 베이의 화려한 검술은 독자에게 눈을 뗄 수 없는 스펙타클함을 선사한다. SF, 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 장르를 자유로이 오가며 소설을 운용하는 이윤하의 한층 더 탄탄해진 필력은 특유의 장중하고 유려한 문체와 어우러져 동양풍 SF의 정취를 깊이 자아낸다.

 

파친코, 작은 땅의 야수들, 사라진 소녀들의 숲』…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한국계 작가가 지은,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진 소설이라는 것이다. 타국에서도 한국 이름을 지키며 살아가는 작가들. 이민진, 김주혜, 허주은, 그리고 이윤하가 있다.

 

그러나 이윤하는 이 세 작가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이민진과 김주혜, 허주은이 한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배경으로 곡절 많은 역사를 진진하게 써 내려갔다면 이윤하는 SF라는 환상의 외피를 한 겹 둘러 입은 다음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다.

 

이윤하의 작품 세계를 떠받치는 두 개의 핵심은 바로 ‘SF’ 한국적 요소. 한국의 풍습, 한국 문화가 SF, 판타지와 합쳐져 분명 우리 것이되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롭고 독자적인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이윤하의 작품 속에서 한국은, 돌연 기이하고 환상적인 무엇이 된다.

 

노미네이트되기만 해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SF계의 노벨문학상이라고 불리는 휴고상’, 데뷔작 나인폭스 갬빗 시리즈로 한국계 최초 3회 연속 휴고상 노미네이트라는 저력을 떨친 이윤하가 이번에는 우리의 역사 일제강점기를 모티프로 한 SF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9살 때까지 나고 자란 이윤하는 미국 이민 생활 중에도 자신의 근본과 뿌리가 한국에 있음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음력 설날에는 할머니 댁에서 떡국을 먹고, 추석에는 온 가족들이 모여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를 땄다. 한국에서 보낸 유년 시절 덕분인지, 이윤하는 미국에서도 한국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이어올 수 있었다.

 

전작 나인폭스 갬빗 시리즈에서 구미호 장군 모티프와 채소 절임’(이윤하가 쓴 나인폭스 갬빗 시리즈 한국어판 서문에 의하면 김치를 뜻한다)이 스치듯 지나간다면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한국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구미호’, ‘김치’, ‘김칫독’, ‘붉은색과 푸른색의 태극 무늬’, ‘겐상도(경상도)의 농부들과 같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익숙한 단어들이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의 배경은 가상의 나라 화국이다. 화국은 마치 우리나라의 구한말 시기를 재현한 것처럼 그려진다. 화국은 제국에 점령당해 식민 지배를 받고 있으며, 갓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중이다. 자연스레 혼란과 격동이 뒤섞인, 그러면서도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구한말 경성’(지금의 서울)을 떠올리게 된다. 화국을 점령한 라잔 제국은 국화(國花)가 벚꽃인 것을 비롯하여 태양을 상징으로 사용하는 등 여러모로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는 가상의 세계관을 토대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가상 역사물이자 메타픽션이며 일제강점기는 모티프이자 강력한 은유로 쓰인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의 주인공 제비는 생계를 위해 처음에는 라잔의 방위성에서 라잔 제국을 위해 일하지만,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결국에는 화국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작기 이윤하 소개

 

한국계 미국인 SF 작가. 데뷔작 나인폭스 갬빗은 로커스상 데뷔 소설 부문을 수상했으며, 휴고상, 네뷸러상, 아서 C. 클라크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나인폭스 갬빗의 속편인 나인폭스 갬빗 2 나인폭스 갬빗 3도 휴고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드래곤 펄은 로커스상 청소년 소설 부문을 수상했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였다. 2020, 신작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를 출간했다. 그의 소설은 토르닷컴’, 오듀본,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F&SF》 《클라크스월드》 《라이트스피드》 《비니스 시즐리스 스카이스 등 여러 매체에 실린 바 있다. 현재 루이지애나에서 가족 및 극도로 게으른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으며 아직 악어에게 잡아먹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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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