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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224)] 별일은 없고요?

[책을 읽읍시다 (2224)] 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저 | 한겨레출판 | 280 | 15,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사람과 사람,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을 들여다보는 사려 깊은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 별일은 없고요?이주란의 소설 세계는 촘촘한 일상과 미세한 감정으로 일군 박물관과도 같다. 그 박물관에 들어서면 너무나 사소해서 그대로 지나칠 법한 것들이 어느새 절박하고 소중한 순간들로 변모한다.

 

이를테면 어두운 밤 산책길엔 어디선가 풍겨오는 은은한 라일락 향기를 맡고 주말이면 준경 씨네 밭에서 쑥을 캐고 쑥국 한 그릇과 오이지를 두고 소박한 밥 한 끼를 먹는 일”(118)이 단박에 일으키는 정서 같은 것. 미안함과 고마움,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믿음직스러움과 따스함 등 정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독자들은 초대된다.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  는 회사에 사직서를 쓴 뒤 고향도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엄마에게로 향한다. 아랫집 아저씨의 방화 사건이 그간 오랫동안 해온 고민을 해결한 셈. 리 단위의 고요한 풍경 속에 내려온 는 그날 밤 엄마의 5평짜리 원룸에서 숨죽여 운다.

 

겨울 내내 그림을 그리며 엄마가 밥을 해주는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철물점에 심부름을 다니는, 일상을 지속한다. 얼굴을 보고 먹고 이야기하고 산책하고 마음을 나누는 나날 가운데 이윽고 찾아온 봄에는 재섭 씨를 만나게도 된다. 우연한 서울 동행 후 귀갓길에 별일은 없고요?’라는 재섭 씨의 안부 메시지에 불현듯 눈물이 날 듯한 마음이 든다.

 

어른  는 남은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의 장례 후 고인의 짐을 정리하고자 시골집에 머문다. 몇 해 전 우연히 알게 된 아줌마는 청계천 미싱사로 오래 일해온 정직하고 호방한 인물로 내 곁에 남아 힘이 되어준다. 계약직 사원인 나는 4년째 4개월마다 계약을 이어왔었다. 그때마다 심장이 뛰었고 그래서 더 열정을 쏟아붓고 초조하고 불안해서 그만하지 않고 그럴수록 최선을 다했으나 회사로부터는 당연히 보답받지 못했던 터다.

 

삭막한 서울살이를 그나마 아줌마 덕분에 견딜 수 있었던 것. 할머니의 집을 정리할 엄두는 나지 않고 아줌마와 함께 울고 웃으며 못 다한 감정을 풀어낸다.

 

마치 한 편의 연작 소설처럼 각 단편은 다양한 상처와 상실의 풍경을 그려낸다. 사람들은은 엄마의 죽음을 겪은 , 역시나 엄마를 잃은 뒤 찾아와 신세를 지고 떠난 전 직장 동료와의 며칠을 담았다.

 

서울의 저녁은 객지에서 20대를 함께한 친구의 기일에 모인 이틀을 이야기한다. 이 세상 사람은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인 에 관한 서류에 답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20년간 수없는 이사를 하고 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살고 있지만, 지옥 같은 기억이 점령한 에게 일상의 평화는 간절하다. 위해는 불우한 환경 탓에 어려서부터 뭔가를 아예 꿈꾸지 않는 법을 익혀온, 그게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에 길들여졌던 내가 어느 날 어쩌면 어릴 적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웃집 소녀와 함께한 하루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소설들이 단순히 상실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 건 이주란 특유의 소설적 태도 덕분일 터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슬픔 속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지나가고 조금은 고요해진 뒤의 상태나 감정에서 출발한 소설을 쓰고자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상실이나 슬픔은 어느 시기, 누군가 혹은 어떤 감정이 들고 나는 삶의 심상한 흔적이다.

 

소설집 속 화자들은 욕심이랄 것 없이 남들처럼만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세상은 이런 그들을 너무 쉽게 내친다. ‘는 힘겹게 잡고 있던 줄을 탕 놓은 것처럼 상처받은 몸으로 어느 소도시에 머문다. 그곳에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걷고 이야기하는 일상을 보내며 회복해간다. 실패의 기억, 유년의 상처, 가족과의 이별 등 고통과 슬픔은 도처에 있지만 그 틈 속에서도 따뜻함이 반짝이는 8편의 단편들을 모았다.

 

 

작가 이주란 소개

 

2012 <세계의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선물>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장편소설 수면 아래, 중편소설 어느 날의 나가 있다.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 가톨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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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