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66)] 먼 길로 돌아갈까?
게일 캘드웰 저 | 이승민 역 | 정은문고(신라애드) | 272쪽 | 13,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게일 캘드웰이 마흔네 살, 캐롤라인 냅이 서른여섯 살 때 처음 인사를 나누었고 공통의 관심사인 ‘개’를 매개로 우정을 쌓아간다. 즐거운 은둔자와 명랑한 우울증 환자가 그렇게 특별한 우정을 즐길 즈음, 캐롤라인 냅이 폐암선고를 받고 마흔두 살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은 게일 캘드웰이 세상을 떠난 소중한 친구를 애도하며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헌신과 용기의 심층을 파고들어 사십대의 나이에 다시 어른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름다운 우정 회고록이자 친밀한 유대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수긍이자 고백이다.
두 여자와 두 마리 견공이 함께 보낸 시간의 결실
여덟 살의 나이 차이, 자라온 환경도 사뭇 달랐던 ‘게일 캘드웰과 캐롤라인 냅’이 빠른 속도로 우정을 쌓은 데는 그들의 애견 ‘클레멘타인과 루실’의 역할이 컸다. 따로 있을 땐 혼자 사는 여성작가이자 겁에 질린 술꾼이며 연애의 참담함을 겪을 만큼 겪은 싱글 여성들에게 애견과의 단순하고 정직한 애착은 기대 이상의 위로였다. 두 사람은 이 위로를 공감하며 알코올 중독과 개인적인 상처들이 하나하나 차지한 ‘마음속의 빈방’을 서로에게 열어 보인다. 강한 아버지의 존재가 크게 드리운 그늘, 관계에 집중할수록 ‘나’를 잃게 되는 두려움, 알코올 기운으로 불안을 감추려던 허세, 추락을 경험한 사람의 고독까지.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함께 보낸 세월이 칠 년이다.
2002년 캐롤라인 냅이 폐암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난다. 이어 게일 캘드웰의 인생에서 가장 감정이 확장되고 즐거웠던 시절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일부였고, 가장 슬펐던 순간의 목격자였던 견공 클레멘타인도 죽는다. 게일 캘드웰은 걷고 대화하며 우정의 길을 닦은 이답게 세상을 떠난 친구와 대화하며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을 실감하며 부정과 침묵과 토로의 애도를 시작한다.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이야기를 바꾸어놓는’ 것임을 이해하기에 이제 일방적인 대화체의 오점과 통찰을 수정하고 고쳐 쓰며 기억을 새로이 서술한다. 게일 캘드웰은 ‘시공간과 마음의 권태’를 경계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문학비평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 게일 캘드웰과 한국에 『드링킹』으로 알려진 작가 캐롤라인 냅이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우정-인간과의 우정, 동물과의 우정-에 관해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아름답고 통렬하게 증언하는 게일 캘드웰의 서술은 차분하고 명민하고 예리하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상실 자체보다 성숙한 여성들 간의 우정의 깊이와 헌신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우리 모두 갖고 있는 가슴 속의 빈방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작가 게일 캘드웰 소개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1951년 미국 텍사스 애머릴로에서 태어나 십대 시절 용감무쌍한 여자들의 우정을 받아먹으며 어른이 되었다. 텍사스대학에서 미국학 석사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1981년 서른 살에 낡은 볼보 트렁크에 위스키 두 병을 싣고 작가가 되고자 보스턴으로 향했다. 1985년부터 2009년까지 <보스턴 글로브>의 북리뷰 편집자로 <빌리지 보이스>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글을 기고했다. 2001년 현대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관찰을 인정받아 퓰리처상 비평부문을 수상했다.
그녀가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여성작가 캐롤라인 냅을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무렵. 따로 있을 땐 혼자 사는 여성작가이자 겁에 질린 술꾼이며 애견인이었던 둘은 공통 관심사인 ‘개’와 함께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다. 2002년 캐롤라인 냅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와 함께 보낸 칠 년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하며 애도했다. 저서로는 회고록 『스트롱 웨스트 윈드』가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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