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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한기총을 고발 한다

[칼럼] 한기총을 고발 한다

 

 

[시사타임즈 = 장계황 박사]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은 너무나 위대하며 가치 있는 일이다. 종교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도 많을뿐더러 산업사회 이후 인본주의가 메마른 현대인에게 종교는 희망이며 안식처이다. 어느 종교나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나 자비 등으로 사회를 안정적으로 순화 시키며 정부나 시민사회 단체가 미처 보지 못하는 구석진 곳을 바라보고 챙기는 곳이 바로 종교집단이다.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해방공간이 빚어낸 남남갈등” 저자 영토학자 장계황 박사(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c)시사타임즈

 

민중과 기독문화

 

우리 고유 종교가 아닌 외국에서 들어 온 종교를 잘 분석해 보면 기독교는 순수 민중 종교이다. 불교는 사국시대에 권력층으로부터 유입이 되어 고려시대를 부흥 시켰고 또한 권력과 함께 하다 보니 불교의 타락으로 인해 고려가 망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호국불교라는 미명아래 권력과 함께 한 것이다. 이후 유교도 조선의 창립 시기에 권력과 함께 들어온 종교이다.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하나 이는 명나라를 거치며 제도가 되어 조선을 지배하게 되는데 지나친 예의와 제도가 조선을 고립시켜 결국 유교의 시스템에 의해 조선이 망한다.

 

반면 기독교는 사색당파 중 정약용 등 남인을 중심으로 천주학이 들어오면서 민중을 통해 우리 사회와 접하게 되었고 발전해 왔으며, 이후 개신교의 선교사들을 통해 대중화 되었다. 이런 측면서 본다면 기독문화만이 민중과 함께 시작한 종교이다. 다만 이런 가운데 우리 고유의 홍익인간정신과 재세이화의 본질이 무너진 부분도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한기총과 그 뿌리

 

민중과 함께 성장해 오던 기독교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이하면서 불교나 유교처럼 권력과 하나가 된다. 이미 일제강점기 시절 물적 지원 등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함께 하여 권력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은 해방과 함께 이승만 등을 통하여 민군정청과 함께 권력지향적인 문화로 퇴색되어간다.

 

당시 시대 상황은 북조선에 김일성이 들어와 1946년 3월 8일에 토지개혁을 실시하는데 당시 토지 소유자는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시절 부역을 한 친일파와 일찍 개화에 뛰어든 기독교인들이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약 2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분포 되어 있었는데 토지개혁으로 인해 이들 중 10만 명 정도가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왔다.

 

당시 신의주에서 목회를 하던 한경직 목사의 영락교회도 이때 남한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평야 등지에서 무작정 남으로 내려온 기독교인들을 남한 사회에서 수용하지 못하다 보니 미 군정청과 이승만은 영락교회를 통해 인우보증을 하게 하여 대부분 경찰복을 입혀 무급 경찰이 되는데 이들이 바로 서북청년회이다. 평북회라고도 하는데 경성을 중심으로 평안북도가 서북쪽에 있다 하여 서북청년회로 불린다.

 

권력에 기생하여 성장한 기독문화

 

당시 세계의 정세는 냉정체제가 만들어 지던 시기로서 미국 내에서는 매카시즘이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미국 판 ‘빨갱이’ 사건이다. 미 국무부 내에 공산주의자들이 298명이 있다하여 색출작업을 하는 등 미국 내 ‘빨갱이’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 내 정치적 기반이 약하고 보수의 정통성이 미약하던 이승만은 정권의 정체성을 매카시즘으로 설정 하였다. 공산주의 타파를 정권의 정체성으로 내걸 다 보니 자연스럽게 북한의 공산주의가 싫어 남하한 서북청년회와 한패가 되어 기독문화는 자연스레 반공산주의 노선을 걷게 되고 이승만정부의 권력과 함께 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급성장 하게 된 이유는 해방이후 3년간 민군정의 통치를 받을 시기에 미 군정청은 천주교와 개신교만을 공인교로 인정하였으며, 국영방송인 서울방송을 통해 선교 사업을 진행 하였다. 이후 한국 전쟁 발발 시 모든 구호품을 기독교를 통하여 나누어 주다보니 기독교는 급성장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요인으로는 맥아더 포고령 제1호의 5조 항목에 “한반도의 공식 용어는 영어로 한다.” 라고 하였는데 당시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은 목회를 위해 미국에 유학을 다녀 온 목회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잘 하는 기독교인들이 대부분 미군정의 권력에 다가서 있었으며 자연스레 기독문화가 권력과 함께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해방정국의 한국사회와 서북정년회의 비극

 

이승만 정권은 전통성이 없었다. 독립자금 유용의 문제로 임정으로부터 1925년 최초로 탄핵을 당한 사실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정부를 수립하는데 친일파들을 대거 기용하게 된다. 독립운동을 하던 요인들과 멀어지다 보니 역사성, 전통성 보다는 공산주의 타파를 정권의 정체성으로 내 세울 수밖에 없고 미국 내에서도 매카시즘이 발동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산주의 타파가 정체성이 되는데 이 당시 제주에서 4.3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이때 서북청년회를 경찰과 함께 투입시켜 무고한 양민 3만여 명을 죽이게 된다.

 

이뿐 아니라 제주 4.3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여수와 순천에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를 토벌군으로 차출 하자 자국민을 토벌 할 수는 없다 하여 출동거부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 일어나는 사건을 여순민중항쟁이라 부른다. 이 여순민중항쟁을 무마하기 위해 또 서북 청년회는 경찰과 함께 투입이 되어 약 1만3천여 명을 학살하고 이후 한국전쟁에서 9.28 서울 수복 이후 보도연맹 사건이 일어나는데 여기에 투입이 되어 약 20만 명의 동족을 살상한다. 서북청년회는 기독교 정신은 없고 오로지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권력 지향적인 사고로 동족상잔에 앞장을 선다.

 

기독문화의 한국사회와 한기총의 탄생

 

기독교는 고려 시대의 호국불교와 같이 늘 정권의 권력과 함께 했다. 권력자를 앞세워 구국기도회를 하고 뒤로는 권력과 함께 하면서 한국 정치에 깊이 있게 관여하기도 했다. 이승만 이후 김영삼과 이명박 등 장로가 대통령으로 탄생하기까지 하면서 한국 기독교는 절정에 다다랐고 이를 분위기를 바탕으로 1989년에 기독인들은 한기총을 설립하게 되는데 서북청년회를 거느렸던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탄생하게 된다. 한기총은 교계 원로목사 10여명의 제창으로 각 교단 중 경총회장 및 기관단체 대표들이 함께 회동, 기도회를 갖고 창설되었다. 2009년 제 20차 총회를 거치면서 66개 교단과 21개 기관·단체가 가입한 명실 공히 한국 기독교의 대표적인 연합기관이다.

 

초기 한기총은 남북의 평화통일과 북한선교 사역을 감당하였고 '통일선교대학'을 설립 운영하여 지도자를 양성하였으며 탈북자 보호와 난민지위 획득을 위해 UN청원 활동을 벌였고 국내 정착 지원에도 힘을 쏟았다. 사회의 순기능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종교가 사회 일원으로서 구성원이라는 근본적인 부분을 망각하고 한기총에서 인정하지 않는 종교 단체는 이단 사이비로 몰아가며 사회의 종교 갈등을 조장하였다. 국학원에서 각 초등학교에 상고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설치한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가 하면, 자기 주도적으로 신의 영역인 이단 문제를 한기총에서 결론 내리는 자만적 행태로 수많은 종교와 갈등을 빚어왔다. 지금은 한기총과 함께 활동을 하는 순복음교회를 이단화하고, 통일교를 이단화하고, 최근에는 급성장세를 보이는 신천지교를 이단화 하여 사회의 종교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악마와 같은 집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개종목사를 중심으로 이단으로 결정지은 종교를 믿는 청소년들을 개종시킨다며 인권유린도 서슴 치 않고 있어 과히 악마의 집단이라 하여도 무방할 정도이다.

 

중세암흑시대로 돌아가자는 한기총의 실태

 

과연 한기총이 타 종교에 대해 이단이라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최근 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목사는 “하나님 까불면 나한데 죽어~!” 신의 계시를 받아 문제인 대통령을 청와대로부터 끌어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정권과의 유착을 넘어 정치 통해 종교가 권력을 함께 가지겠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세 시대를 알고 있다. 5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중세사회는 암흑사회라 부른다. 이 시기가 바로 제정일치 사회이다. 사람은 없고 오로지 신의 영역만 존재하는 사회인데 이를 탈피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이다. 인본주의인 것이다.

 

종교가 정권과 함께 하면서부정과 부패 그리고 권력의 남용이 종교의 개혁을 외치게 한 것이고 그 결과물로서 현재의 개신교가 존재 하는 것인데 종교가 나서서 정권을 끌어 내리고 직접 정치를 하여 권력을 갖겠다고 하니 다시 중세의 암흑기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한패거리로 함께 자랑스럽게 ‘아멘’을 외치던 목사들이 떠나고 잇다. 한기총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함께 하기가 창피한 모양이다. 모두가 회개해야 한다. 정치권의 권력 지향적인 부분서부터 타 종교를 이단으로 몰아 사회의 종교 갈등을 부추겨 사회가 혼란스럽게 하고 신으로부터 위임장도 없이 남의 종교를 이단시 하는 결정을 내리는 자만심으로부터 깊은 회계를 하여야 한다.

 

아니 우리사회에서 격리 되어야 하며, 사라져야 할 진짜 이단이다.

 

“해방공간이 빚어낸 남남갈등” 저자

覺永堂 學人

北村 장계황 / 行政學博士

 

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한러공생위원회 대표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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