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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한국인 최초 B국 선교사 서O록 … 한국교회 선교사에 새 역사 쓰다

한국인 최초 B국 선교사 서O록 … 한국교회 선교사에 새 역사 쓰다

복음이 완전히 차단된 나라, 선교사의 신분으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나라

B국의 철벽같은 방어막을 뚫고 마침내 발을 내딛은 서O록 선교사

그의 선교행전은 한국교회 선교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둔의 불교 왕국’ ‘지구상의 마지막 샹그릴라’ ‘행복지수 1위 나라’, 1인당 GNP가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인 3,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지만(2,547달러) 국민 대다수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라, 하루 7시간 노동이 철저히 지켜지는 나라로 알려진 B.

 

참고로 평균 해발고도가 3,459m나 되는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뜻으로,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지명으로 유명하다. 이 소설에서 샹그릴라는 지상에 존재하는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로 묘사돼 있다.

 

▲B국의 풍경  (c)시사타임즈

  

 

다음백과사전이 설명한 B국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B국은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로 전체 인구는 2021년 현재 77 9,900, 수도는 OO이다. 북쪽과 서쪽으로는 티베트고원, 남쪽과 동쪽으로는 인도와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국민은 보태족, 네팔인, 토착부족과 기타 이민족 등으로 구성된다. 농업국가이며 인도로부터의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다. 본래 왕정 국가였으나 2008년 위로부터의 민주화 정책이 실시되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탈바꿈했다. 우리나라완 1987 9월에 수교했으며, 양국은 아직 주재 공관을 설치하지 않았는데 한국은 주인도 대사관이 겸임하며 B국은 주방글라데시 대사관이 겸임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여기에 한 줄 더 곁들인다면 복음의 불모지인 B이 될 것이다. 복음이 완전히 차단된 나라, 즉 선교사의 신분으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방어막이나 장벽으로도 결코 복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실체적으로 증명한 선교사가 있다. 한국인 최초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B국의 철벽같은 방어막을 뚫고 마침내 B국에 발을 내딛은 서O록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서 선교사가 B국에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결단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여 B국 정부 초청으로 B국에 들어가기까지 걸린 세월은 13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 선교사가 B국을 가슴에 품게 된 연유에서부터 시작하여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는지의 과정을 접하노라면 한 편의 드라마 같고, 또한 선교는 이렇게 하는 거야를 보여주는 선교의 모델이요 교과서와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본지는 한국교회 선교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서 선교사의 사연을 접하고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귀국한 서 선교사와 지난 22일 그가 거주하고 있는 경남 통영의 사무실에서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서 선교사와의 인터뷰는 B국 국민들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과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간섭하시며 드라이브하고 계시는가를 보여주는 실체적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서 선교사의 선교행전은 한국교회 선교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선교사의 신분으론 들어갈 수 없는 철의 장벽과도 같은 B국에 어떻게 복음을 들고 들어갈 수 있었을까. 과연 복음을 전할 순 있는 것일까. 서 선교사에게 직접 물어봤다. 

 

▲본지와 인터뷰중인 서O록 선교사  (c)시사타임즈

 

B국 선교에 대해 언제 마음을 품으셨습니까.

-2002 11월에 네팔에 선교사로 갔다. B국에 대해선 네팔에 있을 때 외국인이 들어가기 어렵고 선교사가 없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그래서 2003년도에 답사차 B국 국경에 갔는데 국경 인근의 호텔 숙소 옆에 B국에 들어가는 게이트를 발견하고 게이트 앞에 서서 선교사가 없다면 저를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때부터 B국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럼 B에 발을 내딛은 것은 언제입니까.

-2010년도에 B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B국 사람을 사귀어 초청을 받아 10일간 B국에 머물게 됐다. B국은 관광이나 초청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B국에 공식적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2017년도이다.

 

어떻게 B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까.

-이 점에 대해 얘기하려면 사연이 좀 길다. 먼저 제가 어떻게 선교사가 됐는지부터 얘길해야 할 것 같다. 저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교수님의 권면으로 경찰에 입문하게 됐고 만 45세에 경감으로 명예퇴직했다. 이유는 선교를 위해서였다. 선교의 꿈을 품게 된 것은 1995년 잠실에서 개최된 선교대회에 참여했을 때이다. 그때 저희 부부와 12 3남매들도 모두 선교에 헌신하기로 서약했고, 저는 퇴직 후에 선교지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내가 결혼한 지 6년째 되던 해인 1997년에 암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지만 제 마음에 품어진 선교 비전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래서 90세까지 살 것이라 생각하고 절반인 45세까지는 세상일을 하면서 선교적 삶을 살고 나머지 45년은 온전히 선교에 매진해야겠다고 생각하여 경감으로 명예퇴직 후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선교사의 삶을 시작했다. 이때 제 나름대로 선교할 나라의 기준을 정했다. 선교사가 없는 나라, 선교사가 있더라도 소수인 나라 그리고 선교사가 시급한 나라 세 가지였다. 그런데 2001년도에 당시 후원하던 인도 선교사님 가정에 초등학생인 아들을 보내 인도에서 유학을 하게 했다. 그리고 1년 반 후 제가 평신도 선교사로 인도에 가게 됐다. 그러나 인도에 선교사가 많음을 보고 2002 11월에 국제기아대책기구의 파송을 받아 네팔로 갔다. 네팔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B국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B국을 마음에 품게 되었고, B국선교를 준비하게 됐다. 특히 B국에 선교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여 2017년도에 B국 정부 초청으로 B국에 들어가게 됐다. 이는 2004년에 B국 국경 게이트 앞에서 B국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한 지 13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B국 국민들-우측 두번째가 서O록 선교사  (c)시사타임즈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셨습니까.

-B국은 선교사의 신분으론 절대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B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고 B국이 필요한 사람만 초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국에서 필요한 사람이 뭘까를 놓고 기도하며 찾다가 발견한 것이 B국에서 한국어로 가르치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저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꿈은 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남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과정을 마쳤고, 경찰공무원이 되었음에도 계속 교육 관련 공부를 했다. 네팔에서도 학교 운영을 하면서 한국사를 가르쳤으며, 제가 국제기아대책기구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잠시 긴급구호 사역을 했었는데 그때 필리핀인들을 한국에 근로자로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한국어 시험을 쳐야 했기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탄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B국 정부에 B국어와 한국어 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더니 B국 정부에서 원더풀이라는 반응을 보여 B국국립국어원 같은 곳의 정식 직원으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필리핀에 있을 때 시간적 여유가 생겨 자기 발전을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사를 할까 교육학박사를 할까 기도하다가 B국에서 박사를 매우 우대함을 알고 필리핀 세부에 있는 필리핀 사우스웨스트대학 교육학 박사 3년 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나서 다시 남침례교단신학교 M.Div 2년 과정을 하다가 중도에 한국으로 나오게 되어 한국에 와서 나머지 과정을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렇게 준비하게 하신 후 마침내 B국에 들어가게 되어 2017 4 16일 오전 8시에 B국 공항에 도착하여 공식적인 첫발을 내딛게 되었으니 이날이 바로 주일이자 부활절이었다. 그래서 1884년 부활절 아침에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우리나라 제물포항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 생각났다.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닌데 그리되어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감격했다. 생각같아선 B국 땅에 입술을 맞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공항 입국 수속하기 전 활주로에 서서 잠깐 기도했다.

 

B국에서의 선교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시지요.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 3월 한국에 나오기까지 약 4년 정도 B국에서 거주했다. 4년의 기간 동안 2년은 스케치하는 기간이었다. 선교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B국은 특별한 나라다. 가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수도 팀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팀부 외의 다른 지역에 가려면 반드시 여행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누굴 만나는지 일일이 보고해야만 한다. 북한과 비슷하다. B국관광청에 한국어를 가르치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더니 안된다는 답이 왔다. 당신은 사전 편찬을 하기 위해 온 것이지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언어연구만 하라는 것이다. 덜컥 겁이 났다. 2019년도에 통영에 B국선교회를 조직했었다. 그리고 6명을 B국에 초청했다. 봉고차를 빌려서 B국 여러 지역으로 돌아다니려고 했더니 B국국립국어원 소속 공무원이 24시간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이런 상태에서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언어연구만 하고 한국으로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B국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재를 길러야겠다, 기숙사를 만들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겠다. 복음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하여 사무실을 구했더니 사무실 얻기가 너무 어려웠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사무실 자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1년을 걸려도 사무실을 못 얻었다. 사전편찬 작업이 끝나면 또 어떻게 B국에 들어오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가 B국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닦아야겠다고 생각해 조사하던 중 B국에서 외국인을 만났는데 피아노를 가르치러 온 외국인이었다. B국엔 피아노가 없다. 음악과목도 없다. 그러니 음악학원을 하려면 외국에서 와야 한다.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B국 노동부에 알아보니 오케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어교실, 음악교실을 신청하여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져 한국으로 나와야해서 준비만 해놓고 나왔다. 현재 1년 이상 B국에 못들어가고 있지만 그러나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리 복음을 막으려 해도 결코 복음을 막을 순 없다.

 

B국 생활과 B국선교에 대해 정리한다면...

-B국은 전체 인구가 78만 명으로 행복지수 세계 1위다. 부족함을 못느낀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무상교육을 받고 국가가 의료비를 책임진다. 자기들이 못 고치는 환자는 인도나 태국의 병원에 보내 치료받게 한다. 의료비는 전액 국가가 지불한다. 한국인의 경우 B국에서 생활하려면 먹거리와 식수가 가장 불편하다. 반찬거리가 없다. 배추가 안나고 저장시설도 없다. 상수도시설의 노후화로 인해 좋은 물이 나쁜 물이 된다. 생수를 사서 마시든지 물을 끓여서 마셔야 한다. 방글라데시는 돈만 있으면 물건 구입이 가능하지만 B국은 돈이 있어도 살 수가 없다. 자급자족 중심이기 때문이다. B국엔 미국인 선교사 1명과 호주 선교사 2명이 있다. 선교사인 것을 알지만 서로 말은 안한다. 호주 선교사의 경우 부부로 남편은 원어민 영어교사이고 부인은 유치원 교사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B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한국인은 매우 어렵다. B국 선교는 오직 전문인 선교사만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저의 경우 13년간 전문성을 준비하게 하신 것 같다.

 

▲B국의 아이들  (c)시사타임즈

 

인터뷰를 마치며

O록 선교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브니엘) 소속으로 17년여의 경찰공무원과 2년여의 군복무 기간을 합산하여 20년이 채워져 매월 소정의 연금을 받고 있다. 이 연금이 B국 선교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자비량 전문인 선교사로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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