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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에 대해서

   우린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 고리를 갖고 살아간다.

특히 교회와 정치간의 관계에 이르면 더욱 그러하다.

가령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가 모르는 대다수 사람들이 투표한 그 결과로 인해 우린 현실적인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영향력은 단지 우리 세대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후대들에게까지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교의 영역도 단지 종교의 영역 안에서만 국한될 수 없다는 한계성을 근본적으로 갖고 있다.

우리 삶의 은신처요 때론 삶의 도피처가 되기도 한 교회 세계도 정치와 결코 무관한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만약 북한의 김정일이 우리의 통치자로 군림한다면 그 즉시 교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으며 특히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순교의 피를 흘려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린 교회 안에만 우리의 눈을 국한시키지 말고 세상을 보는 눈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인 칼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손엔 성경을, 한 손엔 신문을!"

 

그러므로 우린 우리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기도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이든 교육이든 경제이든 일일이 우리가 다 관심을 가질 순 없다할지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의 관심은 갖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린 정치부분만 하더라도 자기 마음에 맞는 정당을 지지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런데 이건 필요하다.

내가 누굴 지지할 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이유는 자신의 감정이나 주관적 논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이유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열매이다.

열매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열매지상주의를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교회존립에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유로운 신앙활동이요 복음증거이다.

민주주의가 성경적이진 않을지라도 우리가 왜 민주주의를 선호하느냐 하면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신앙활동을 보장해줄 뿐 아니라 자유로운 복음전파의 토양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산주의는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럴듯해보여도 반기독교적이다.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들어간 나라마다 교회가 문을 닫았고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았다. 

이 열매들은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가.

따라서 정치적으로 볼 때 우리에겐 공산주의보다 민주주의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정치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정치는 가능한 거리가 멀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불가분의 관계이긴 하지만 그러나 서로는 독자적인 영역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가 정치에 개입한다면 그건 정치가 신앙활동에 중대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다.

물론 이 말은 상당히 형이상학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

사건의 개별성에 따라 해석이 분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한 일원인 우리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행사하는 정당한 투표를 통해서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이 올바른 가치관으로 국민들을 위해 선량한 정치를 펴 주기를 기도하는 삶을 통해서다.

하지만 정치라는 세계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바라는 이상들이 잘 먹혀들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그래서 정치를 진흙탕에 비유하는 말이 들려지기도 한다.

사극을 봐도 왕과 신하와의 정치적 알력 등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는가. 

 

부부간, 부모 자녀간에도 신앙은 물론이거니와 정치 분야에 대해서도 서로의 입장을 달리하는 이해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색깔을 띠는 분야가 정치분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교회 안에선 가능한 정치와 관련된 언급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무관심은 옳지 않다.

그리고 정치 뿐 아니라 어떤 분야이든 간에 관심을 갖고 올바른 분별력을 위해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개방된 사고다.

둘째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자신이 주장하고자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사실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일방적 주장이나 자기 감정을 내세울 게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 한번쯤 왜 그런지 이해하고자 하는 그런 열린 사고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

 

올바른 관점을 정립하는 일은 참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에 반하는 일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후대들에게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엔 국경이 없지만 그러나 복음을 가진 우리들에겐 조국이라는 영역이 설정되어 있다.

우리의 조국이 민주주의의 꽃을 피움으로써 복음의 열매를 더욱 활발하게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인은 애국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매캐한 최류탄 개스로 숨을 쉬기가 어려운, 눈물이 절로 줄줄 흘러나오는 캠퍼스 안에서 서울의 20여개 대학 기독학생 리더들이 각 캠퍼스를 돌며 조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 우리 기독학생들은 어수선한 시국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지를 몰라 방황했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올바른 지도를 해주지 않아서였다.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우린 마이너리티가 되었다.

반면에 대학의 운동권 학생들은 총학생회를 정복하고 나아가 정치계와 교육계 언론계 법조계 등을 장악하였다.

이들의 영향력들은 오늘 우리에게 뿐 아니라 우리의 후대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캠퍼스 시절 총학생회에 간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운동권의 정체성에 대해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봤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섭다”이다. 왜 그러냐하면 두 얼굴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즉 드러내 보이는 얼굴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얼굴이 전혀 다르다는 것.

그건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얼굴이다.

특히 자기의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들의 집요함이 몸서리칠만큼 무서웠다.

그런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목적이란 따지고보면 결국 우리 기독인들의 목을 겨냥하는 것.

공산화된 베트남의 경우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는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주장이다.

 

한번 운동권의 이념 논리에 빠진 학생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어보라.

그러면 그 실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두 명의 후배가 운동권에 빠졌다.

그들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매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를 떠났고 하나님을 떠났다.

대신 그들의 머리는 칼막스의 자본론과 볼세비키 혁명사 등의 이념으로 포맷되었다.

그리고 그 이념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것을 봤다.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길 기도하면서 나도 사랑하는 후배들을 내려놓았었다.

 

목회하면서 운동권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정치얘기가 나오자 목의 힘줄이 튀어 나온다.

안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 얼굴에서 비춰진 모습은 이것이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버린 이념.

미래의 꿈나무들이 될 우리의 후대들에게 이런 이념 교육들이 진행되고 있음을 아시는가.

 

당연한 말이겠지만 정치는 각 정당이 추구하는 철학과 이념에 의해 움직여진다.

그 철학과 이념실현을 위해 전략을 짜고 전술을 마련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를 누가 쥐락펴락하는가를 보셔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분들이 주장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드러난 목적 말고 드러나지 않은 목적을...

한가지 더 주목해야할 것은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들의 경우 이미 대학시절부터 전략과 전술에 있어서 잔뼈가 굳은 프로선수들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이념논리로 무장되어 있음도...

그 이념이 무엇인가.

 

정치는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정치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관계이다.

그렇다고해서 정치를 그냥 묵과해선 안될 것이다.

어차피 정치의 영향을 교회가 직간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의 존.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자 미국의 모든 공립학교 안에서 성경을 금하게 했다.

그 결과가 어떠한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정치의 영향력은 정말이지 결코 적지 않다.

 

중세시대에 카톨릭의 교황이 한때 왕을 무릎꿇게 한 적이 있지만(일명 카놋사의 굴욕) 그러나 왕의 힘이 강해지자 오히려 교황이 무릎을 꿇었다.

이는 정치와 종교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한 사건이다.

 

어떤 미치광이 한 사람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경우 정치를 이용하여 얼마든지 기독교의 목을 죌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교는 이런 사실들을 알고 전략적으로 정치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기독교도 정치에 관해 지혜가 참 필요한 것 같다.

나라 안 뿐 아니라 눈을 돌려 나라 밖까지도 볼 수 있는 지혜를 말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미국인들 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할 사안이다.

현재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자 중 한 사람이 몰몬교도라고 한다.

만약 이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 보는가.

뉴욕주가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합법화시켰다.

이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의 경제상황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선 우리 국내 뿐 아니라 이처럼 국외문제에까지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르자 전 세계인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일은 선교현장에서 우리나라 선교사님들이 선교하는데 아주 좋은 영향을 주었다.

만약 김연아 선수가 기독교인이라면 어떠할까.

 

이렇듯 정치 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서로 관계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린 교회안 뿐 아니라 교회 밖의 세상,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정세까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는가를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현실을 보는 올바른 통찰력을 소유하는 우리의 기독인들이 되어지길 열망한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조국을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올바른 관점으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바이다.

 

엄무환 칼럼니스트(weom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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