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시대적 어둠의 역사에 새로운 새벽을 깨울 청년은 누군가

람세스라는 책이 있다. 모두 5권으로 된 책이다.

그 책에 푹 빠졌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는 한 가지 영상.

이집트라는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영적인 전쟁.

작가는 나타난 현상보다 그 현상너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존재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그리고 이 영적존재간의 치열한 전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난 한 나라 안에서 지금도 전개되고 있는 영적인 전쟁에 대해 관심을 새롭게 갖게 되었다. 보이지 않으나 실재하는 세계 말이다. 그 세계가 영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신들 간의 전쟁에 대한 스토리다.

각각의 신은 인간을 대리자로 하여 전쟁을 벌인다.

인간세계에 전개되는 전쟁의 배후엔 신들의 간섭이 있다는 것.

그리스 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선 지금도 람세스의 저자가 언급한 것과 같이 치열한 영적전쟁이 진행 중인 것은 아닐까.

 

어둠과 빛의 전쟁.

거짓과 진리의 전쟁.

폭력과 비폭력의 전쟁.

질서와 무질서의 전쟁.

미움과 사랑의 전쟁.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세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두 세계간의 대립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전쟁의 현상들이 아니겠는가 싶다.

 

성경은 이러한 영적전쟁의 현주소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아담과 하와의 범죄사건.

동생 아벨에 대한 형 가인의 미움과 살인사건.

인간 욕망의 화신인 바벨탑 사건.

국민적 영웅이자 사위인 다윗에 대한 사울왕의 시기와 살인미수사건 등은 배후에 역사하는 어둠의 영들이 개입한 일들이라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간은 절대로 영의 세계를 스스로 알 수 없으며 이러한 어둠의 영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는 것.

단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상인줄 알고 살아가는 존재가 우리들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 주장에 노우라는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안타깝지만 이 삶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히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실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메시지다.

성경은 정확하게 영적 세계와 물질세계를 구분하고 있으며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가 나타난 열매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삶의 열매를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영에게 속했는지를 말이다.

 

영적존재에 대해서 성경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과 어둠의 영, 그리고 인간의 영이 그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은 하셨다.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파멸시키려는 것이지만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그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셨다.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는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는다.

눈에 보이는 삶의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조국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열매들이 어떠한가.

지금 우리 조국의 교회 안에 나타나고 있는 열매들은 어떠한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어둠의 영에게서 나온 것인가.

 

지금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어둠의 영들에게 장악당하고 있다.

그 열매들을 보라.

곳곳에 난무한 거짓과 음란과 사술들.

폭력과 미움과 분쟁, 탐심이 하늘을 덮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의 기본상식마저 파괴시켜버린 막말과 난무한 욕설들.

가정과 사회 그리고 나라안에 이미 실종되어버린 도덕과 윤리정신들.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우리 사회가 어둠의 영에게 장악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생각들이 눈에 나타나는 우리의 삶을 통치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영이 우리의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파괴시켜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대의 종말을 부추기는 동성애까지 사회 전반으로 퍼뜨리고 있다.

 

이러한 어둠의 영들의 역사를 막아설 자 누군가.

깊어가는 영적인 캄캄함을 몰아낼 자 누구인가.

새벽을 깨우는 그리스도의 용사들이 아니겠는가.

조국의 교회 안에 어둠의 역사를 몰아내고 새로운 새벽을 깨울 그리스도의 용사들은 과연 누구인가.

 

한편 아무리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에게 영웅대접을 받는 위인일지라도 영적세계에 눈이 어두운 사람을 가리켜 영적소경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나면서부터 육신의 소경(시각장애인)된 자가 예수님을 통해 눈이 열리는 사건을 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시에 성경박사였던 유대인들 중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영적소경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육신의 소경이 아니라 영적소경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 역시 성경을 가르치는 리더였고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영적 소경임을 드러내고 있다.

영적인 소경이란 영적세계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들어도 알지 못하며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도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이런 영적 소경들이 얼마나 많은지.

 

영적소경인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은 자신의 이성과 감정에 충실하다는 그것이다.

즉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

그리고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진리인 것으로 믿고 여기에 자신의 전 생애를 걸기도 한다.

여기서 나오는 열매가 자의식(自意識)이요 자기 의(義)다.

게중에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서 숨어 지내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간섭을 싫어하거나 거부하거나 온 몸으로 저항하기도 한다.

이름하여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어둠의 영의 역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둠의 영의 열매가 뭐냐. 자의식이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 말이다.

우리 시대에 이런 사고체계를 가진 젊은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 현상은 영적 세계를 지향한다는 한국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심히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소수일진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적 세계를 바라보며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외모라든지 자신의 업적을 쌓으려는 스펙에 치중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자신의 속사람을 드려다 보려 하며 그래서 자신의 엉망진창인 내면세계를 청소하고 잘 정리하여 온전한 자아를 형성하려는데 초점을 맞춘다.

 

난 이러한 젊은이들을 가리켜 ‘새벽을 깨우는 청년’이라 부르고 싶다.

소위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한다고 새벽을 깨우는 사람은 아니다.

자신의 내면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며 어떤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영적 성숙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이 사람을 가리켜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세상문화에 타협하지 않고 거룩함을 회복하려는 젊은이들.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려 하지 않는...바로 이러한 젊은이들이 우리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면 틀린 말일까.

 

엄무환 칼럼니스트(weomm@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