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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자의 무비스토리 (51)] 파우스트



[박기자의 무비스토리 (51)] 파우스트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진리추구를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은 박사 파우스트. 인간의 근원을 파악하겠다며 인체 해부도 마다 않지만, 그가 얻은 것은 극심한 생활고뿐이다. 어느 날 돈을 마련하고자 전당포를 비롯한 마을 이곳 저곳을 어슬렁거리던 중, 파우스트는 신비한 처녀 마가레테와 맞닥뜨리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고 만다.

 

스크린에 쓴 불멸의 고전

요한 폰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

 

16세기 독일에는 파우스트 전설이 유행했다. 학식과 재주가 뛰어난 한 남자가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고자 악마와 계약하고, 파멸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악마와 계약을 맺는 스토리는 중세시대에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유혹에 빠진 대가로서의 징벌’을 강조하며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는 데 주로 활용됐다. 반면 이 전설에는 주인공이 ‘학문의 수단을 이용해 세상의 근본이치를 파헤친다’는 새로운 모티프가 등장한다.

 

종교적•사회적 규범과 인습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新인간상은 18세기에 이르러 여러 문인들에 의해 다양하게 형상화됐다. 다섯 살 때부터 파우스트 인형극을 접한 괴테도 1772년 집필을 시작해 1832년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마지막 장면을 수정하며, <파우스트> 완성에 평생을 바쳤다.

 

‘독일의 문화적 정신성의 총체’라 일컬어지는 이 거인은 ‘인간을 시대 상황 안에서 묘사하는 것’을 주된 사명이라 여기며, 파우스트를 숭고한 삶과 세속적 쾌락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순된 존재로 그렸다. 이것은 어찌 보면 역사적•사회적 존재로서 괴테의 히어로가 겪는 필연적 운명이다.

 

 

권력 4부작의 완결편

영원히 갈구하는 인간의 드라마

 

영화 <파우스트>는 <몰로흐>, <타우르스>, <더 선>에 이은 ‘권력에 대한 4부작’의 완결편이다. 소쿠로프 감독은 독재자와 권력자를 다룬 4부작을 기획해 1980년 작업에 착수했다. 히틀러를 주인공으로 한 <몰로흐>(1999), 레닌을 주인공으로 한 <타우르스>(2001), 히로히토를 주인공으로 한 <더 선>(2005)을 발표한 데 이어, 작년 <파우스트>(2011)를 선보이며 무려 30년에 이르는 대장정을 끝마쳤다.

 

권력을 맹렬히 추구해 한 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지도자들은 어느새 늙고 쇠약해져 지배체제의 종말을 목도한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했던 그들은 자신도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쿠로프는 산 속 은신처에 피신한 히틀러, 몸져누운 환자 레닌, 일본의 전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히로히토를 묘사하며 권력의 자기파괴적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인물들과 문학적 주인공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감독은 “속기 쉬운 말에 현혹돼 하루하루의 삶을 병적으로, 불행하게 보낸 것”이라고 답한다. 4부작의 주인공들은 모두 주변인들의 욕망, 자신의 나약함 혹은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맹목적으로 권력을 추구한 이상주의자라는 것이다. 다만 앞의 세 영화가 권력의 종말에 초점을 맞췄다면, <파우스트>는 주인공이 권력에 매혹되는 과정에 치중한 것이 그 차이점이다.

 

한편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괴테의 어록과 문학작품에서 상당부분을 인용해 대사에 녹여 넣었다. 특히 주인공 파우스트와 조수 바그너가 주고 받는 말에서 독일 문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극의 구성과 맥락을 뒤섞고 때론 산발적으로 흩어놓으며, 원작과는 또 다른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냈다.

 

괴테의 작품의 경우, 이야기는 주인공 파우스트의 죽음으로 종결되는데, 파우스트는 죽기 직전 환상 속에서나마 조화와 균형을 이룬 유토피아의 모습을 보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확인한다. 이 장면은 해석에 따라 ‘인류 발전의 이상향’이 되거나 ‘현실에서 유리된 망상’으로 여겨졌다. 소쿠로프는 원작의 비극적 속성에 더욱 공감한 듯하다. 그는 ‘역사 발전이라는 허구적 믿음’에 차가운 시선을 견지하며 파우스트를 20세기 독재자와 같은 선상에 위치시켰고, 마침내 권력 4부작을 완성했다.

 

 

제6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유려한 영상미의, 회화를 닮은 영화

 

일찍이 <일식의 날들>(1998)과 <몰로흐>로 베를린과 칸의 간택(!)을 받은 바 있는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파우스트>로 2011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정작 감독 자신은 “영화제의 경쟁체제를 즐기지 않는다”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감독들이 젊은 영화인들을 위해 자리를 내줘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심사위원장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당신을 영원히 바꾸는 영화가 있다. <파우스트>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라며 극찬했다.

 

이 러시아 명장은 시적 이미지, 철학적 주제와 롱 테이크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소개된 적 없지만, 영화사상 가장 긴 쇼트로 이루어진 그의 2002년 작 <러시아 방주>는 영화마니아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돼왔다.

 

영화는 18세기 초,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박물관인 에르미타주 궁을 배경으로 200년에 걸친 러시아역사를 시간 여행한다. HD카메라와 스테디캠을 활용해 단 한 번의 끊김 없이 90분간 촬영한 끝에, 소쿠로프는 영화 역사상 최초로 하나의 쇼트만으로 이루어진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이는 200명의 배우 및 세 개의 오케스트라가 동원돼 겨울 궁전의 서른 세 개 방에서 촬영된 경이로운 기술적 성취이다.

 

<파우스트>에 이어진 영화적 실험은 사뭇 충격적이다. 필름손상 혹은 영사상의 실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울어지거나 일그러진 화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나몰픽 렌즈를 사용해 얻어진 효과인데, 소쿠로프는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2009), <아멜리에>(2001), <인게이지먼트>(2004)로 아카데미에 세 번이나 노미네이트된 바 있는 촬영감독 브루노 델보넬과 손잡아, 몽환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를 창출해냈다.

 

그는 렌즈의 앞과 옆에 유리와 거울을 부착시켜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한편, 존재의 질감과 색채까지 변형시켰다. 또 중간 톤의 색조와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활용해 비현실적인 느낌을 배가시켰다. 독특한 효과가 회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영화의 예술적 깊이가 더해진 것이다. 현대영화에서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1:1.33의 화면비율도 인상적이다. 스크린을 보고 있자면 마치 몇 세기 전으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로써 우리가 괴테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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