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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부고] 춘천성시화운동 발아자 조남진 장로(전 강원일보 사장) 소천

[부고] 춘천성시화운동 발아자 조남진 장로(전 강원일보 사장) 소천

 

[시사타임즈 = 박수연 기자] 1972년 춘천성시화운동의 발아자 역할을 하셨던 조남진 장로님(순복음춘천교회, 전 강원일보사 사장,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명예총재 역임)께서 24일 새벽 향년 90세 일기로 하나님의 영원한 품에 안겼다.

 

▲조남진 장로(사진제공 =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시사타임즈



입관예배는 25일 오후3시 춘천 호반장례식장 1호실, 발인예배는 6 26일 오전6시 순복음춘천교회 본당에서 거행된다. 안치예배는 26일순복음춘천교회 부활 동산이다.

 

다음은 2018 109일 고 조남진 장로와 인터뷰 내용이다.

 

조남진 장로, 춘천성시화운동을 증언하다

초교파 춘천성경구락부 시작 1972년 춘천성시화운동 발아 역할 

 

 

조남진 장로(강원일보 사장 역임, 월드비전 춘천지부장 역임, 순복음춘천교회 원로장로)는 춘천 성시화운동의 산 증인이다. 더 나아가 한국과 세계로 확산된 성시화운동의 발아(發芽) 역할을 한 분이다.

 

성시화운동은 1972 7 31일부터 8 4일까지 당시 인구 10만 명의 호반의 도시 춘천실내체육관에서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춘천지역 교회들과 한국대학생선교회(CCC)가 공동으로 주최를 했다.

 

한국CCC 설립자이자 대표로 대학생선교를 모판으로 하여 민족복음화운동을 기획 주도했던 김준곤 목사가 [춘천 성시화운동 기획 노트]를 작성하여 칼빈이 사역했던 스위스 제네바와 같은 청정 도시, 민족복음화 이전에 한 도시를 송두리째 복음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비전을 품고 춘천성시화운동을 기획한 것이다.

 

김준곤 목사는 1970 12 31일 밤 0시 기독교방송(CBS)를 통해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내용의 민족복음화운동을 선언하고 민족복음화운동이라는 선명하고도 푸른 깃발을 들었다.

 

그리고 1970 12 31일부터 1971 1 4일까지 서울농대 수원캠퍼스에서 열린 민족복음화 지도자 요원 강습회를 열었다. 당시 전국의 지도자 450명이 참석했다. 그 모임에 강원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조남진 장로도 참석했다.

 

조 장로는 나는 1970년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조용기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치유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됐다. 늦게 예수를 믿다보니 성경을 잘 몰랐다. 그래서 춘천중앙감리교회에서 개설한 평신도신학원에 갔다가 강의를 하러 온 춘천CCC 대표간사 윤수길이 성령에 대해 강의를 했다. 강의를 잘 했다. 그 후 윤 간사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우리 집에서 윤수길 간사와 함께 4명이 성경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4명이 시작한 성경공부모임은 20~30명으로 늘었다. 성경공부모임의 명칭은 춘천성경구락부라고 했다. 당시는 구락부는 클럽이라는 의미다. 당시는 ‘4H 구락부  구락부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던 시대였다. 당시 멤버로는 문선재 교수(강원대 총장 역임, 소천), 이학규 장로(초등학교 교장 역임, 소천).

 

조 장로는 그 모임에 예수원 설립자 대천덕 신부도 초청해 강좌도 듣고, 한국예수전도단 설립자 오대원(David E. Ross)목사도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윤수길 간사가 춘천성경구락부에 대해 김준곤 목사님께 보고를 했다. 그러자 김 목사님께서 춘천에 오셨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평신도들이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격려하셨다. 그리고 춘천성시화운동을 기획하셨다고 회고했다.

 

김준곤 목사는 민족 복음화 이전에 한 도시만이라도 송두리째 복음화 되기를 꿈꾸면서 춘천 성시화운동 전략을 담은 <춘천 성시화운동 기획 노트>를 만들었다. 4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 담긴 비전과 전략은 춘천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기도하면서 비전으로 품고 실행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단순히 시민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을 뛰어 넘어 한 도시를 복음으로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전복음(The Whole Gospel, 복음전도와 사랑의 실천, 사회책임)을 담고 있다.

 

김준곤 목사가 그런 구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장로회신학교 제1회로 졸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장로교는 종교개혁자 존 칼빈이 정립한 신학의 기초 위에 세워진 교파일 뿐만 아니라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에 망명하여 목회를 하면서 성경을 제네나 시민들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고자 시도했던 제네바 개혁운동을 교회사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특히 아름다운 산과 레만호수가 있는 제네바처럼 당시 인구 10만 명의 춘천도 호반의 도시이자 아름다운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청정도시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972년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 당시 춘천(중고등)학생연합회 회장을 맡아 전도대회 안내를 맡았던 박인관 목사(광염감리교회, 춘천성시화운동본부 이사장) 당시 춘천의 기독교는 크게 부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중고등학생들도 신앙 열정이 대단했다.”고 했다.)

 

김준곤 목사는 1971 8월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1만 명 민족복음화요원 강습회를 열었다. 민족복음화운동의 열기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춘천 성시화운동 전략노트를 만든 김 목사는 1972 7 31일부터 8 4일까지 춘천실내체육관에서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를 기획했다. 윤수길 간사와 조남진 장로 등은 김연호 목사(춘천중앙감리교회, 독립운동가)를 찾아가 성시화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춘천성시화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 설명회에 참석했던 춘천시장은 이렇게 좋은 일이라면 내가 1호로 예수를 믿겠다.”며 고백했다.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는 춘천의 교회 목회자와 성도 그리고 전국의 CCC 간사와 학생 그리고 나사렛형제들(CCC 출신 학사모임)  8,000여명이 참석했다. 낮에는 전도훈련을 받고 둘씩 짝을 지어 춘천 구석구석을 누비며 4영리 소책자로 복음을 전했다.

 

당시 CCC에서 김준곤 목사의 메시지를 듣고 인격적으로 예수를 영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김인중(안산동산교회와 안산동산고 설립자, 김준곤 목사에 이어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총재를 맡음)와 검찰청 검사로 재직하고 있던 전용태 장로(세계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를 맡음)와 최호자 권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민들레기도팀장), 두상달 장로(기아대책 이사장 역임, 한국CBMC 회장 역임,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김정우 학생(총신대 신대원 구약학 교수 역임) 등 수많은 이들이 참석해 민족복음화운동의 핵심요원으로 활동했다.

 

조남진 장로는 성시화운동이라는 명칭은 김준곤 목사님이 처음 사용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성시화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김준곤 목사가 존 칼빈의 제네바 개혁운동을 모델로 춘천 성시화운동 기획노트를 만들었지만, ‘성시화운동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시작된 ‘Made in Korea'(메이드 인 코리아)’운동인 것이다. ‘성시화운동 1972년 대한민국 춘천에서 시작되어 한국의 시군으로 확산되었고, 미국과 과테말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1982년 김성영 장로가 중심이 되어 여수시를 예수시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여수성시화운동본부를 창립하여 김준곤 목사를 주강사로 초청하여 여수제일교회에서 여수성시화대회를 개최했다.

 

여수성시화운동본부는 여수의 직장마다 신우회를 조직하고 활성하는 일을 도우면서 직장선교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1987년에는 순복음인천교회 최성규 목사가 중심이 되어 인천성시화운동본부가 창립되어 대회를 개최했다.

 

조남진 장로는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가 끝난 후 안타깝게도 춘천성시화운동이 지속되지 못했다. 대회가 마친 후 김연호 목사도 춘천성시화운동 위원장을 사임했다. 춘천성경구락부는 지속적으로 성경공부 모임을 이어가면서 춘천 성시화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주도하여 자신의 집에서 매주 초교파 성경공부모임을 시작하여 사실상 춘천 성시화운동의 모태(母胎) 역할을 했던 조 장로는 정작 춘천 성시화운동의 공로자는 윤수길 목사라고 말했다.

 

조 장로는 전용태 장로님이 청주지검장으로 재직할 때 청주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춘천 성시화운동에 대해 특강을 했다. 부산에 내려가서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춘천 성시화운동에 대한 특강을 했다고 밝혔다. 성시화운동의 확산을 위해 발로 뛰었던 것이다.

 

조 장로는 지난 2009 12월 김인중 목사와 전용태 장로를 공동총재로 하는 세계성시화운동본부가 시작될 때 미주 초대 대표회장 박희민 목사 등과 함께 명예총재로 추대되었다.

 

조 장로가 섬기는 순복음춘천교회 또한 춘천성시화운동의 역사와 맥을 함께해 온 교회다. 1972 4 3일 김주한 목사 가족에 의해 설립된 순복음춘천교회는 46년 동안 춘청 성시화를 위한 든든한 산과 같은 역할을 했다. 조남진 장로도 순복음춘천교회 사실상 개척멤버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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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