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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아라우의 후예 2> 필리핀의 한국전쟁 참전

<아라우의 후예 2> 필리핀의 한국전쟁 참전

 

▲아라우부대장 시절 이철원 회장.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이철원 본지 회장] “태양같이 밝고 불타는 정열의 기상을 지닌 용사들!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468명의 고귀한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가호가 영원하리라!” (필리핀 한국전 참전 기념비 시문, 경기도 고양시)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는 1974년 10월 2일 건립되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하고 남산미술원장 이일영이 제작하였다. 기념비 전면 50명의 부조의 모습은 필리핀의 민속문화를 표현한다.

 

필리핀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독립국가 (1946년 7월 4일 독립)로 출범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요청에 의해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아시아에서는 제일 먼저 지상군 1개 대대 전투단을 파병하였다. 

 

▲필리핀 한국전 참전비 (c)시사타임즈
▲필리핀군 캠프 (c)시사타임즈
▲필리핀군 캠프 (c)시사타임즈

 

 

필리핀군 전투대대는 1950년 9월 19일 부산항에 도착하여 10일간의 현지 적응훈련을 마친 후 10월 1일부터 미25사단에 배속되어 왜관, 김천 일대에서 후방지역 게릴라 소탕작전과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였다. 1951년 4월에는 경기도 연천 율동리 전투에서 미3사단에 배속되어 1개 대대 규모의 중공군을 격퇴하였다. 이후 1952년 5월, 연천 이리고지 전초전에서 중공군 117사단의 파상공격을 백병전으로 격퇴하였고 휴전을 앞둔 치열한 고지 쟁탈전에서는 백석산, 크리스마스 고지를 사수하여 유리한 휴전여건을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이후에도 유엔군 사령부 경계지원 임무와 한국의 재건을 위한 민사작전을 실시하다가 1955년 5월 13일에 철수하였다.

 

▲부상항 입항 (c)시사타임즈
▲서울시가 행진 (c)시사타임즈

 

이와 같이 필리핀은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5년 동안 5개 대대 7,420명의 전투병을 파병하여 전사 112명, 부상 299명, 실종 및 포로 57명 등 460여명이 희생 되었다. 낯선 나라의 전쟁에서 불굴의 투혼을 발휘한 필리핀 참전용사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98년 필리핀 군사대학을 다닐 때도 그렇고 2014년 파병부대장을 할 때도 일부 지식인을 빼고 주민들은 필리핀이 한국에 파병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오히려 설명을 해줘야 했었다.

 

▲필리핀 8사단장 아라우부대 방문 (c)시사타임즈

아라우부대가 2013년 12월 28일 태풍피해 복구를 위해 필리핀 현지에 도착하여 보니 필리핀 군부대가 태풍피해 복구를 하고 있었는데, 필리핀군 8사단으로 한국전쟁시 예하 대대가 교대로 파병되었었다. 이부대는 아라우부대 활동지역의 책임 군부대로 한국과 인연이 있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파병기간 중 수시로 상호 부대방문을 통하여 우의를 다졌으며 우리부대에 경계부대와 공병대대를 제공하여 한국군의 재해복구지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필피핀 8사단장 아라우부대 치과버스 관람 (c)시사타임즈

파병기간 중 아라우부대를 방문한 필리핀 국방참모총장 육군대장 바우스타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였다.

 

“한국전쟁시 필리핀군만 마지막까지 남아 민사작전을 수행하였듯이 하이옌 태풍 이후 유일하게 한국군만 남아서 진정한 도움을 주고 있고 필리핀군과의 연합작전으로 필리핀군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특히, 한국전 참전용사를 진정으로 예우하는 아라우부대원들의 모습에 한국전 참전용사인 아버지가 생각나서 눈물이 났습니다.”

 

글 : 이철원 본지 회장 (전 아라우부대장, 예비역 대령,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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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원 시사타임즈 회장 wangco123@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