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르네상스운동 시리즈 (26)
[시사타임즈 = 독서르네상스운동 청년기자단 3기_독썰 김민범·전은수] 어릴 적, 학교가 끝나면 쫄래쫄래 들리게 되는 장소가 있었다. 불량식품을 사 먹던 학교 앞 문방구. 학교에서 만나지 못한 다른 반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가 되는 학원. 조금 더 커서는 만화방, 분식집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스무 살이 넘은 지금 더 많은 곳을 가지만 오히려 정서를 나누는 ‘공간’은 사라졌다.
이런 우리에게 염리동 <퇴근길 책한잔>은 어린 시절 들르던 문방구 같은 장소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모여 같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 간혹 공연도 열린다. 이제는 불량식품 대신 술을 마시고, 책, 영화, 음악, 사회까지 다방면의 수다를 떤다. 책방을 넘어서 어른아이에게 아지트가 되어주는 <퇴근길 책한잔>의 김종현 대표를 만났다.
▶ ‘퇴근길 책한잔’이라는 가게 이름이 재밌습니다. 가게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가게 이름 자체는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별로 고민을 안 했어요. 아주 단순하게 지으려고 했고, 폼 잡거나 있어 보이게 짓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책이 있고 술이나 커피 같은 음료를 팔려고 했으니까 두 개를 합쳐서 ‘책한잔’이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책한잔’으로는 뭔가 허전해서 앞에 뭘 붙이면 좋을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언제가 가장 여유롭고, 마음이 편할까 생각하다가 퇴근길이라고 붙이게 된 거죠. 이름은 5분 만에 지었어요.
▶ 전에 사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해서 책방을 하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또, 북펍(PUB)은 아직 생소합니다. 북카페가 아닌 북펍을 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0년부터 사업을 했어요. 당시에 유행하던 벤처 기업인데, 다행히 사업이 잘됐어요. 아직도 살아있고요. 그런데 똑같은 일을 한 4년 하면 지겨워요. 사업을 같이하던 친구에게 넘겨주고 저는 지분을 털고 나왔어요. 그리고 일 년 정도 놀았어요. 국내외 여행도 많이 하면서요. 놀다가 처음에는 공연장을 열려고 생각했어요. 고민하다가 제가 공연도 좋아하고 책, 술도 좋아하니까 세 가지를 다할 수 있는 콘셉트로 책방을 연 거죠. 원래는 펍보다 공간에 가까워요. 저희 공간이 일반 책방처럼 책이 많지도 않고, 공연장이라고 하기에는 공연 시설도 없어요. 책을 가져다 놓다 보니까 책방이라고 인식이 된 거지 저는 아직도 책방이라고 구분하고 싶지는 않아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 가게의 위치는 이화여대 근처 염리동에 있습니다. 특별히 이곳에 선정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서울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여기만큼 월세가 싼 곳이 없어요. 들어올 때 봤겠지만, 여기만큼 허름한 동네가 없어요. 쌀집도 바로 옆에 있고, 목공소, 점집도 있어요. 이런 곳이 재건축 때문에 옛날 동네로 묶여 있는 거예요. 들어와 보니까 정감도 들고요. 이런 책방이 만약에 강남 높은 빌딩 1층에 있다고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나요?(웃음)
▶ 퇴근길 책한잔이라는 이름에서 직장인들이 많이 방문할 거 같은데 방문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 많은가요?
퇴근길이 수사적인 표현이라서 그렇지 직장인들이 꼭 많이 오시는 건 아니에요. 독립 출판물이 많다 보니 독립 출판물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서 오세요. 또 영화 모임, 음악 모임이나 공연을 많이 열어요. 비슷한 취향을 가진 분들이 오시죠. 그런 분들이 꼭 직장인분들은 아니고, 학생들도 있고 백수도 많아요. 하굣길이라고 하면 학생들이 더 많이 오는 게 아니듯이 퇴근길이라고 해서 직장인들이 많이 오는 거 같지는 않아요. 취향에 문제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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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테리어에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신경을 쓴 점은 없어요. 대신 전부 제가 직접 했어요. 손수 인테리어를 했어요. 붙어있는 걸 전부 제가 다했어요. 페인트칠도 제가 직접 했고요. 최대한 자연스럽고 제 스타일대로 하려고 했어요. 듣고 싶던 말이 친구들이 와서 봤을 때, 이거 완전, 네 스타일이라고 하는 거였어요. 배치나 허름한 느낌도 다 제 손 떼 묻혀 가며 만든 거예요. 제 가게가 간판도 없고, 책을 읽기에 조도가 낮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이 저에게 제일 좋은 상태예요. 그걸 살리려고 했어요. 만약 싫으면 안 오겠죠.(웃음) 가구도 다 DIY에요. 이 공간이 전전에는 세탁소였고, 바로 전에는 에어컨 중고 수리하는 곳이었어요. 여기는 구조 변경된 게 없어요. 처음 그대로예요. 제가 할 수 없는 건 안 했어요.
▶ 퇴근길 책한잔에 있는 책들이 기성 출판물도 있고, 독립 출판물인 경우도 있습니다. 각각 들여오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기성 출판물은 제가 읽어본 것 중에 좋은 것만 놔요.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온라인에서 사면 싸게 무료 배송으로 당일 배송 받을 수 있잖아요. 우리 책방에서 볼 이유가 없어요. 아직 많지는 않지만, 단골 분 중에는 제 책 취향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요. 오셔서 기성 도서를 사가고, 저에게 책 추천을 받아요. 예를 들어 와인바에 가는 기준은 와인 종류가 많아서가 아니라 소믈리에나 사장의 취향이 나와 맞으면 가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가서 내가 전에 먹었던 와인을 말해주면 비슷한 와인을 골라줘요. 그런 콘셉트를 생각했어요. 독립출판물들은 다 받아요. 아주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다 받아요. 독립출판물을 소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독립출판물을 기성 도서보다 더 잘 보이는 곳에 놓으려고 해요.
▶ 올해 4월에 오픈한 것으로 아는데 엘르, 보그 큰 매체 외에도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많이 하신 거 같습니다. 퇴근길 책한잔이 주목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 자랑해주신다면?
어떻게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는데 매체 인터뷰를 많이 한 거는 사실이에요. 이 공간의 장점은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이런 복합형 안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작업실인데도 마켓을 여는 경우도 있고, 음악가 친구 중에 자기 작업실에서 음악이 아닌 다른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저도 관심을 받는 거 같아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동네에 대한 관심 때문이에요. 소금길, 염리동에 3년 전 경리단 길처럼 조금씩 카페 혹은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왜냐하면, 값이 싸니까요.
▶ 단순히 북펍의 역할뿐만 아니라 낭독회, 상영회, 공연장까지 복합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다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거예요. 필요에 의해서 하는 건 없어요. 낭독회도 칼럼리스트 박사의 씨가 해주시는데, 그분도 개인적인 친분으로 진행하는 거예요. 그 분 낭독회를 좋아했는데 제가 책방을 열었다고 하니까 ‘책방에서 낭독회하시죠?’라고 제의해줘서 한 거예요. 상영회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아무도 오지 않고, 종일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심심해서 영화를 계속 봤어요. 혼자 볼 거 같이 보자고 SNS에서 올렸는데 처음에 어떻게 알고 왔는지 3분이 오셨어요. 반응이 굉장히 좋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공연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좋아했던 분들에게 먼저 연락을 드려요.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분도 있죠. 다음 달에는 ‘우주 히피’라는 분이 공연 하는데 그 분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는데 우연히 알게 돼서 공연 하게 된 거예요. 기획이라는 건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고, 제가 이 공간에서 하고 싶은 걸 계속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랑 비슷한 성향을 가진 분들이 꾸준히 온다고 생각해요.
▶ 상영회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면 ‘시네필’들이 볼만한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애정도 느낄 수 있는데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궁금하고 어떤 영화를 즐겨 보시나요?
에릭 로메르, 장 뤽 고다르, 오기가미 나오코 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예요. 많이 보지는 않지만, 보는 취향은 확실한 편이에요. 반대로 이런 스타일이 안 보는 영화는 아예 안 봐요. 얼마 전에 이야기하다가 <인사이드 아웃> 이야기가 나왔는데 할 말이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보는 영화와는 다르니까요. 이제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들을 보고 그 영화들을 트는 거예요.
▶ SNS를 보면 해운대에 가기 위해 휴가를 내기도 하고, 야구장에 가기 위해 조금 일찍 닫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서점운영과 다르게 자유로운 편입니다. 대표님께서 정한 운영방침이 따로 있으신가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어요. 책방이 묘한 게 출근하듯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일처럼 되면 안 되는 거죠. 보통 사람들이 주말에 주로 하는 일이 카페 가서 책보고 음악 듣는 거잖아요. 저에게도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몇 시부터 열어야 하고, 몇 시 까지 해야 하는 ‘일’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상황이 되면 안 돼요. 그게 제1원칙이에요. 물론 여기를 아껴주는 소중한 분들이 많지만, 제가 <퇴근길 책한잔>을 몇 달만 하고 그만둘게 아니기 때문에 길게 보는 거죠. 문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기준이고 내 마음대로 하자는 게 제 원칙이에요.
▶ 퇴근길 책한잔을 찾는 분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냥 처음에 책방 만들 때 생각한 게 세상이 진짜 넓은데 다 똑같은 이야기만 하잖아요. 다 돈 이야기를 하죠. 그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건 인정해요. 그래도 숨통은 쉬어야 하지 않겠냐는 거죠. 멀리 구석에 간판도 없는 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갈 공간이 없었을까 생각해요. 최소한 <퇴근길 책한잔>에 와서는 이렇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있고, 편안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구나 느낄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 내 인생의 책 TOP3을 꼽아주신다면? 책 제목과 간단한 이유를 말해주세요.
내 인생의 책이라기보다도 대학교 때 내가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추천할게요.
비문학은 크로폿킨의 ‘청년에게 고함’이라는 책이 있어요. 아주 얇은 책이에요. 100년 전에 쓴 책인데 그 당시가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와 사회·문화적인 관념이 부딪치던 혼돈의 시기였어요. 크로폿킨은 자유주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측면을 가진 러시아 인이었어요. 그가 지지했던 사상을 몰락했죠. 그 사람도 비극적으로 죽었고요. 그런데도 당시 이데올로기가 아주 중요하고, 그걸 알아야 반대 이데올로기가 성행하는 현대 사회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주 얇은 책이지만, 아주 쉽고 젊었을 때 읽어보면 좋은 책인 거 같아요.
소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추천해요. 여러 번 읽어보면 좋은 책 같아요. 죽기 전에 비슷한 책을 한 권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쿤데라의 책은 실존적으로도 멋진 주제를 다루고 있고, 일단 재미가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사르트르의 글은 같은 불어지만,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재미가 없는데 쿤데라는 정말 재미있어요.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김수영이에요.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를 추천해요. 김수영 시인은 애석하게도 시집이 많이 없어요. 전집으로만 있고 단행본으로 엮인 건 거대한 뿌리밖에 없어요. 요즘 시를 많이 안 읽지만, 저는 시가 정말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퇴근길 책한잔
주 소 :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9-60
블 로 그 : blog.naver.com/booknpub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ooknpub
독서르네상스운동 청년기자단 3기_독썰
취 재 : 김민범, 전은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여성 그룹 텐시러브)
기 사 : 김민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사진촬영 : 김민범, 전은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여성 그룹 텐시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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