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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17)] 83. 도미니카공화국(Dominica)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17)] 83. 도미니카공화국(Dominica)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Saona 해변). ⒞시사타임즈
▲(도미니카공화국 지도). ⒞시사타임즈
▲< 국기 >파란색은 자유, 흰색은 구원, 빨강색은 영웅을 상징. 중앙은 국장. < 국장 >방패 중앙에 성경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가 열려 있고 상단에는 하나님, 조국, 자유가 적혀 있음. ⒞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도미니카 공화국은 서인도 제도의 히스파니올라 섬에 아이티와 함께 있는 나라이다. 히스파니올라 섬의 동쪽 2/3를 차지한다. 카리브 해 국가 중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수도는 산토도밍고이다. 7세기 이래로 타이노 원주민이 거주했으나,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후로 원주민의 숫자는 급격히 줄었다. 1795년 바젤 조약으로 섬 전체는 프랑스에 지배를 받았으나, 1809년 다시 스페인에 넘어갔다. 1821년 독립을 선포했으나, 1922년 아이티의 점령을 받았고, 1844년 2월 27일에 아이티로부터 독립하였다.

 

The Dominican Republic locates on the island of Hispaniola in the Caribbean region. Taínos inhabited here since the 7th century. Christopher Columbus landed in 1492, and it became the first permanent European settlement in the Americas, namely Santo Domingo, the country's capital. It became independent in 1821. The civil war of 1965, the country's last, was ended by a U.S.-led intervention. Though long known for sugar production, the economy is now dominated by services. The Dominican Republic has become the Caribbean's largest tourist destination for its year-round golf courses. 

 

1. 국명(Country) : 도미니카 (Dominican Republic)

2. 수도(Capital) : Santo Domingo

3. 면적(territory) : 48,442㎢

4. 인구(Population) : 946만명

5. 국민소득(GNI) : USS5,850불

6. 언어(Language) : Spanish

7. 독립일(Independence) : 1821.12.1

  

▲ The Naco sector, in Santo Domingo . ⒞시사타임즈


카리브해의 맏형, 도미니카공화국이여~~~

 

에메랄드 빛 카리브해

아침이면 찬란히 해가 뜨는 곳 

타이노족 평화롭게 살아가는 터

 

피코 두아르테 높이 솟았다

소코강 이가모강 유유히 흐른다

 

아름다운 해변엔 

황금모래 반짝

야자수 그늘 넘어

황혼이 진다

 

콜럼버스 멋대로 서인도라네

산토도밍고 건설하여 중남미 전초기질세

스페인 프랑스 서로 빼앗네

 

영웅들이 흘린 빨간 피

우리는 자유하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의 독립을 지키리라

우리의 풍요를 가꾸리라

우리의 평화를 전하리라

 

우리는 노래하리라

용감한 우리 부족 키스케야노스 만만세~~~

 

 

Elder Brother at the Caribbean, Dominican Republic

 

How blue, the Caribbean Sea

How bright, the rising sun there always at dawn

How peaceful, Tainos’ living way

 

How high, Pico Duarte being 3807m

How abundantly River Soko and Igamo flow

 

Golden sands twinkle and twinkle

At beautiful beach

Over the palm tree's shade does the sun set red in the twilight.

 

Columbus wrongly named it West Indies

Building Santo Domingo there at first 

Making it an advanced base to Americas

Spain and France fought each other for Island Hispanola

 

Remember heros' blood for this land 

We are free thanks to their bloods 

Truth will make us free

 

We shall keep our independence 

We shall cultivate our prosperity 

We shall extend our peace

 

We shall sing our song of Quisqueyanos Valientes. 

Hurrah, long live our nation, Dominican Republic!  

 

 

1. 도미니카 개황

 

도미니카 공화국은 서인도 제도의 에스파뇰라 섬에 아이티와 함께 있는 나라로 이 섬의 동쪽 2/3를 차지하고 있다. 카리브 해 국가 중 쿠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이며 우리 남한의 반절 크기이다. 카리브해의 최동단에 있는 작은 섬나라 도미니카 연방과는 별개의 나라다. 수도는 산토도밍고이다. 7세기 이래로 타이노 원주민이 거주했으나,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후로 원주민의 숫자는 스페인의 학정과 유럽에서 건너온 역병으로 급격히 줄었다. 스페인 지배를 받다가 1795년 바젤 조약으로 섬전체가 프랑스에 지배를 받았으나, 1809년 동쪽은 다시 스페인으로 넘어왔다. 1821년 독립을 선포했으나, 1822년 아이티의 점령을 받았고, 1844년 2월 27일에 아이티로부터 독립하였다.

 

도미니카 국기의 파란색은 자유, 흰색의 십자가는 구원, 빨강색은 영웅을 상징하며 중앙에는 국장을 그려 놓았다. 국장의 가운데 있는 방패 중앙에 성경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가 열려 있고 상단에는 하나님, 조국, 자유가 적혀 있다.

 

골프장과 해변에 리조트가 많아 미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나는 아이티에 근무할 때, 대사관과 업무협의 하기 위해 도미니카를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한국전에 미군의 일원으로 참전했전 아이티 태생 Robert Mangones 노옹을 만났다.

 

 

2. 도미니카에서 내가 만난 사람

(아이티 유일의 한국전 참전용사 Robert Mangones)

 

▲(망고네스 옹의 군인 시절). ⒞시사타임즈


2010년 8월의 어느 날, 망고네스 명예총영사가 나의 책 에티오피아 전사들의 한국전 참전기인 『강뉴』를 보더니 자기 작은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한 아이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국전 참전 용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자초지종을 확인했다. 1919년생인 총영사의 작은 아버지인 Robert Mangones는 6‧25 당시 미국 공병장교 중위였고, 한국전에 자원하여 1951년 2월부터 1년 동안 참전하였다. 그가 각종 교량 건설에 참여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도미니카 산티아고 시에서 작은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기에 전화번호와 주소를 
 

 

받았다. 나는 우선 강성주 대사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 대사관에서는 보훈처에 통보했고 보훈처 기록으로 확인되어 이명박 대통령의 감사장을 보내와 2010년 12월에 강성주 대사는 산티아고로 망고네스 용사를 방문하고 대통령 감사장을 전달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전 참전 용사에게 관심이 많아 한 번 찾아뵙고 직접 한국전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나의 업무가 아니고 나라가 달라 쉽게 갈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1년 9월에 나의 후임 오세철 소장이 부임하였기에, 도미니카에 그와 같이 출장을 가서 대사관과 업무 협의를 마친 다음, 산티아고시로 직행하여 참전용사 Mangones 노옹(93세)을 만나 먼저 충성하며 군대식으로 거수경례에 이어 우리식 큰절도 올렸다. 그리고 준비해 간 KOICA 사무소의 감사장과 정성스런 선물을 드렸다. 노옹의 풍모는 고령임에도 당당했다. 192cm의 거구에 아직도 100kg은 넘어 보였다. 지팡이를 들었으나 허리도 꼿꼿했다. 한국이 발전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아직 다시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기가 젊었을 때 돕기 위해 싸웠던 한국이 그렇게 발전했다니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 아닌가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자기 자녀들 2남 1녀는 전부 미국 시민권자로, 미국에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자녀들도 한국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다고 했다. 89세 된 노옹의 부인은 우리에게 시원한 주스와 과일에 이어 따뜻한 커피까지 대접해 주었다. 한국의 대통령이 작년 말에 감사장을 보내오고 오늘은 한국 정부 인사가 이곳까지 와서 자기 남편의 참전에 대하여 사의를 표하다니, 지난 60여 년 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며 오히려 우리에게 거듭 사의를 표했다.

 

나는 송구스러웠다. 우리나라가 좀 더 일찍 성장했더라면 참전 용사 모두를 한국에 초청할 수 있었으련만…….지금은 생존자도 많지 않고 노년에 건강도 좋지 못하여 초청해도 힘만 드는 상황이 되었다.

 

수욕정이풍부지(樹慾靜而風不止)요, 자욕양이친부대(子慾養而親不待)라, 여기에서도 이 말이 실감되었다. 망고네스 옹이여 부디 더욱 건강하소서…….

 

(신우영, 신해영 형제)

 

▲(신우영 회장 부부와 신해영 사장, 2011.8). ⒞시사타임즈


신우영(1944년생, 영등포공고졸) 회장은 고등학교 시절, 이회택 선수의 라이벌로 촉망 받는 축구선수였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지금도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골프도 싱글로 20대 못지않은 장타를 과시한다. 축구하다 몸을 다쳐 국가 대표를 포기하고 태권도를 연마하다 군에 갔다. 제대 후 일반기업에 모범사원으로 5년을 근무하다 뜻을 세우고 태권도 사범으로 도미니카에 1974년에 진출했다. 5년 후 그는 봉제업을 시작하여 도미니카 교포사회에서 1세대 봉제 사업가로 분류되며 미국에 수출하여 부를 축적했다. 그는 한인회장을 여러 번 역임하며 뒤에 들어오는 한인이주자들의 길잡이를 자임했다.

 

내가 2010년 7월, 아이티에 부임하면서 도미니카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신우영 사장은 도미니카에서 건축자재를 직접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소위 ‘샌드위치 수치로프’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것이었다. 도미니카뿐만 아니라 아이티에도 납품하였다. 나를 만나는 그날도 아이티 전력청에 ‘샌드위치 수치로프’를 납품하고 아이티에서 도미니카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특히 신우영 회장은 아이티가 지진이 나서 지진복구사업에 특수를 기대하고 있었다.

 

신해영(1963년생) 사장은 신우영회장의 막내 동생으로 군 제대 후 형의 권유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프로 골퍼로 뜻을 세우고 독학으로 열심히 준비하여 간신히 프로가 되었으나 좋은 성적은 내지 못했다. 다시 형의 권유로 도미니카로 와서 형을 도와 봉제공장을 운영하다 지금은 건축자재업을 형과 같이 하고 있었다.

 

내가 2010년 11월, 뎅기열에 걸려 도미니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신우영 회장 형제가 매일 같이 문병을 오고 신 회장의 부인은 죽을 끼니때마다 쑤어와 제가 기력을 회복하도록 했다.

 

신해영 사장은 아이티에 콜레라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10년 12월에 아이티에 도미니카 기술자 10여명을 인솔하고 넘어와 지방 전력청 건물을 2달 만에 완성하는 사업가 정신을 보여주었다.

 

신우영 회장의 집에 들어서면 빛바랜 고색창연한 태극기가 거실에 걸려 있다. 나는 선친이 독립운동가여서 상해 임시정부에 걸렸던 태극기로 대물림한 것인 줄 알았다. 그것은 신우영 사장이 서울에서 처음 올 때 가져왔던 것으로, 태권도장을 운영 할 때 도장에 걸어 놓았던 것이다. 송 소장이 ‘생각하는 것 같이 국보급 태극기는 아니어도 우리 집안의 가보로 큰 딸에게 넘겨줄 생각’이라고 했다. 신우영 회장은 예쁜 딸만 세 명인데 모두 애틀랜타 주립대학교에서 큰딸은 대학원, 둘째는 대학 4학년, 막내는 1학년 학생이었다. 신우영 사장은 딸들의 결혼식과 동생 결혼식에 꼭 참석하라 했다. 신해영 사장은 독신이었다.

 

“신 회장님, 신 사장님, 평안하시지요? 요즈음도 Teeth of the Dog 코스에서 자주 운동하나요? 신 사장은 규숫감 만났나요? 큰 딸의 혼처가 정해졌나요?  제가 가서 축하하겠으니 연락하여 주세요.”

 

도미니카 동해에 떠오른 태양이, 3087m 두아르테 봉과 소코강을 비추고, 황금 모래빛 해안을 산책하는 연인들이 평화를 노래하는 곳, 도미니카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3. 도미니카 풍경

 

▲(Constanza 계곡). ⒞시사타임즈
▲(산토 도밍고 전경). ⒞시사타임즈
▲(미주에서 가장 먼저 1514-1541년에 건립된 고딕식 성당 Santa María la Menor). ⒞시사타임즈
▲(산티아고 전경). ⒞시사타임즈
▲(해맑은 도미니카 어린이들 ). ⒞시사타임즈
▲(2020 총선에 항의하는 산토도밍고 시민들). ⒞시사타임즈

 


(84번째 나라 푸에르토 리코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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