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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2)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2)

가을빛에 물든 독일의 고성(古城)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오래달리기는 내 안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달리는 발걸음은 꿈과 새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眼目)을 넓혀준다. 달리기는 상상력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달리는 것은 역동적으로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시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움직임이다.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광, 변덕스러운 날씨, 땀을 식혀주기도 하고 옷깃을 여미게도 하는 바람이 다 사랑스럽다.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심연(深淵)과도 같은 깊은 고독 속에서 내 몸의 오감(五感)이 최고로 활동을 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도 열흘 가까이 비가 내리더니 어제오늘은 아침 하늘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가슴이 다 시원하다. 이런 화창한 날씨라면 메피스토펠레스도 기분을 들뜨게 할 것 같다. 미세먼지라고는 없는 독일의 맑고 깨끗한 하늘과 공기가 부럽다. 저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밭과 숲이 부럽다. 왠지 바쁘고 분주할 것으로 생각했던 독일인들의 일상이 안정되고 고요하기까지 한 것이 부럽다. 이런 곳에선 경쟁에 잠깐 낙오를 해도 크게 뒤처질 것 같이 숨 막히지 않겠다.

 

숙소를 찾아 이동하다 보니 거의 매일 50km가 넘는 강행군(强行軍)을 해왔다. 잠시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지름길로 간다고 자칫 길이라도 잘못 드는 날은 60km까지 달려야 했다. 지난번에 지도에 표시된 길보다 옆 길로 가서 조금 덜 뛰었는데 오늘 다시 그렇게 하다가 길을 잘 못 들어서 곤혹을 치뤘다. 마치 내가 소금자루를 짊어지고 가다 물에 빠져 무게가 줄어서 자꾸 물만 보면 빠져버리는 당나귀가 된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내 등에 소금자루가 아니라 솜자루가 있는 줄도 모르고!

 

아무튼 강행군 덕분에 이젠 예정보다 하루 앞서서 베를린에 도착하게 됐다. 베를린에서 달콤한 휴식이 기대된다. 내 손목에 GPS 시계는 원래도 배터리가 8시간밖에 안 가는데 오래되어 대여섯 시간 밖에 안 간다.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의 시계를 꺼놓아도 8시간을 훌쩍 넘겨 내가 간 거리를 측정할 수 없다. 지도상으로 나온 거리로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마그데부르크에서 아침 호텔 식사를 하고 7시 반이 안 되어 출발하여 힘겹게 목적지 숖스도르프에 6시가 다 되어 도착했는데 그 큰 호텔에 정문은 잠겨있고 안에는 아무도 안 보인다. 문에는 전화번호와 함께 전화하라는 쪽지만 적혀있는데 내 전화는 어떤 이유에선지 전화가 안 된다. 그냥 인터넷만 사용하는 것으로 감지덕지(感之德之)다. 아날로그 세대의 한계이다. 한참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대책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몸은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숙소에 도착했는데 들어갈 수가 없다.

 

숲속에 있는 호텔이라 주위에 식당도 없다. 이 순간적인 좌절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먼 길을 날아온 지친 새가 숲속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는데 나뭇가지가 부러진 순간 같았다. 새는 더 이상 균형을 잡을 힘이 없었다. 그 짧은 순간 살기 위해 머리는 내 짐 속에 무슨 비상식량이 있나를 계산하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서 난 참 영악하다. 어제 점심을 제때 못 먹어 서브웨이 샌드위치 큰 것을 두 개를 사서 한 개 반을 먹고 반을 버리지 않고 가져왔다. 그리고 우유 한 병, 바나나 하나, 도너츠 두 개가 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굶주릴 염려는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데 사람 소리가 안에서 나는 것 같았다.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사람처럼 아무리 소리를 쳐도 밖을 내다보지 않는다. 나는 긴급조난자처럼 소리를 쳤고 방에 있는 두 사람의 남녀는 나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애써 모른 체하는 것 같았다. 불청객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필사적으로 소리친 지 2, 30분 만에 드디어 안의 남자가 시끄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밖을 내다본다. 그가 전화를 해주어 10분 후에 종업원인지 매니저인지 차를 타고 나타나서 일요일은 사람이 없고 열쇠를 함에 넣고 전화하면 비밀번호를 가르쳐준다고 한다. 독일은 정말 일요일은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관광지가 아닌 모든 도시의 식당도 문을 닫는다. 슈퍼마켓까지 문을 닫아버리니 개인의 삶보다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우리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브란덴부르크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빨리 씻고 누적(累積)된 피로를 풀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구시가의 오래된 건물의 호텔 문이 잠겨있다. 전화를 하라고 쪽지가 정문에 붙어있는데 전화를 할 수 없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신출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길거리에는 인적이 드물다. 한참을 기다리다 지나가는 중년 신사를 붙들고 전화를 부탁하니 자기는 전화가 없단다. 또 한참을 기다리는데 이번엔 금발 머리의 여자가 바쁜 걸음으로 지나간다.

 

그건 순간이었지만 신뢰감과 더불어 유혹적인 친밀한 분위기를 가진 금발 여인의 필요 이상의 친절을 받을 때 사람들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생기는 건 확실하다. 그녀는 나를 위해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받아 정문을 열고 호텔 방에 올라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틀어 따뜻한 목욕물이 나오는 것과 잠자리까지 확인해준다. 그 짧은 시간이 비 내리는 저녁 산사를 찾은 황진이와 지새는 승려의 밤처럼 길기만 했다. 긴 듯 짧은 시간 은밀하고 끈적한 시선을 던지다 급히 거둔다. 다시 내려와서 정문의 비밀번호로 내가 문을 열고닫을 줄 아는지까지 확인까지 해준다.

 

독일 사람들은 무뚝뚝하다는 생각을 한 방에 날려 보내주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독일 사람들은 무뚝뚝하다는 말을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떠벌일 판이였다. 내가 너무 피곤하지만 않았다면 같이 저녁이라도 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사실 피곤함보다는 용기가 없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고독한 여정길에 친절하고 아름다운 여자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픈 마음이야 어쩔 수 없었다. 뒤돌아 가는 그녀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흔들려 일렁였다. 바람이 불 때 스커트 안에 감추어졌던 그녀의 종아리가 살짝 보였다. 1년여가 넘도록 내 긴장감을 잘 유지하여야 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는 압박감은 여러 가지 행동에 제약을 가져다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독일은 성(castle)의 영주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였다. 독일어 발음 부르크(-burg)는 성, 돌, 산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지나온 마데스브르크라든가 여기 브란텐브르크, 또 함부르크 같은 곳은 영주가 다스리던 공국으로 보면 맞을 것이다. 또 (-furt)라는 지명도 많다. 푸르트는 샘이라는 뜻이다. 프랑크푸르트 같은 도시는 샘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이다.

 

유럽에서 가을비에 씻긴 담쟁이덩굴이 덮고 있는 고성(古城)이 숲 사이에 솟아있는 것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일은 멋진 일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풍스러운 성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를 달리며 처음 와 본 도시의 감회에 젖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잠시 후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 멋진 건물들이 선망의 대상이던 동화 속의 왕자들이 보통사람들을 지배하며 핍박(逼迫)하던 본거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이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착취를 당했을까?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고 그것을 막기 위해 저 웅장한 건물들이 서 있는 것이다.

 

지배자는 늘 백성을 위한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오로지 한 사람의 권력자와 그의 일족을 위한 건물이라는 상념을 지울 수가 없다. 어디 건물뿐이랴. 법도 지배자의 권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지고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쩐 일인가? 권모술수와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며 힘없는 시민들의 원성(怨聲)이 성을 쌓은 돌처럼 켜켜이 쌓여있는 듯하다. 세월은 흘러 모든 것은 덮이고 아름다움만 빛이 바랜 채 남아 후세의 관광객들에게는 예술적 가치와 인간의 뛰어난 능력으로만 남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중세 한때 유럽은 거대한 바스티유 감옥이었던 때가 있었다. 성직자의 무리가 종교적 미친짓을 하며 마녀사냥에 나섰던 때가 있었다. 곳곳에서 화형장의 불길이 올랐고 책과 사람을 삼켜버렸다. 까마귀와 올빼미도 불안해 울부짖었다. 성스러움과 어리석음과 사악함은 한 몸이었다. 높이 치솟은 성탑은 억울하게 착취당하고 고문받고 죽어가는 이들에게는 악마의 화신이었을 것이다. 그때 루터가 나타났다. 그는 소리높여 “멈춰라!”라고 외쳤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다시 발걸음을 옮겨 포츠담으로 향했다. 독일이 항복하자 1945년 7월 26일 미국의 트루먼,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포츠담에 모여서 정상회담을 했다. 이미 패망한 독일에 대한 처리문제와 곧 무너질 일본에 대한 처리가 주된 내용이었다. 이 협정에서 논의된 중요 내용 중 하나는 독일의 영토 축소에 대한 것이다. 당시 미,영,소는 독일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작은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이 회담 결과 폴란드와 소련으로 넘어간 국토가 전체의 24%나 된다고 한다. 이 회담은 이주 문제도 포함되어있다. 이웃 국가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을 강제로 독일로 이주하는 것이었다. 강제 이주 과정에서 독일인 200~250만 명이 추위와 굶주림과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이 선언을 거부한 대가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의 피해를 보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한국은 해방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해방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진정한 해방이 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도 나는 점심을 제때 먹지 못하고 왔으므로 숙소를 찾았을 때는 이미 몸의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였다. 한 시간 정도 자리에 누워 에너지를 모은 다음 호텔 옆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므로 석양이 뉘엿뉘엿 지는 상수시(Sanssouci) 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포츠담에는 독일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상수시 궁전이 있다. 상수시 궁전이 있는 상수시 공원은 수천 그루의 포도나무와 드넓은 잔디가 융단처럼 깔린 바로크식 공원이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포츠담에 로코코 양식의 궁전을 지어 놓고 예술에 심취해 포츠담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곤 했다. 상수시는 프랑스어로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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