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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데트몰트에서 하멜른으로 가는 길은 그동안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나지 못한 구릉지대를 만난다. 지금까지는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으로 그야말로 땅은 평평한 것이었다. 평원이고 구릉지이고 독일은 어딜 가나 나무가 빽빽하다. 고층 아파트 숲 대신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름다운 독일의 가을 아침을 맞는다. 나무숲은 햇빛을 받아 눈부셨다. 잘 보존된 숲은 무엇 하나 부족하거나 남지도 않는다. 그저 풍족할 뿐이다. 1906년 프로이센 공화국 때 이미 환경 보호법이 만들어졌다. 숲은 언제나 사람에게 고향과 같은 포근함으로 일상의 피로를 풀어줄 뿐 아니라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다.

 

그 울창한 숲을 홀로 몇 시간이고 달릴 때 요정이 ‘뿅’하고 튀어나와 나를 홀릴까 봐 기대도 되고 메피스토펠레스란 놈이 유혹하여 끝없는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까 봐 겁도 난다. 숲은 겁도 나고 기대도 되면서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무 사이로 파고드는 찬란한 햇살을 따라 숲속의 정령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며 거닐고 싶다. 저 앞에 한 소녀가 요정처럼 개를 데리고 달려가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영롱하게 맺힌 이슬이 온몸에 스미는 듯 개운하다. 내가 지금껏 찾아 헤매고 갈망하던 것이 이 숲속 어디엔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숲을 홀로 걸으면서 이야기를 꾸며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을 것이다. 옛날 우리 할머니는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는 두 가지를 다 가지고 계셨다. 이야기보따리와 눈깔사탕이다. 이야기를 술술 잘 풀어내는 사람은 어딜 가도 인기가 좋았다. 거기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눈깔사탕까지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면 최고의 인기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일주일 중에 하루만 빼놓고 매일 비가 오락가락한다. 날씨가 머리를 무겁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오늘도 수십 번은 더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잠바를 입었다 벗었다 했다. 을씨년스런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동화처럼 신비하고 통쾌하며 신나는 일이라도 상상하지 않는다면 우울증이라도 걸릴 것 같다. 베저강이 시내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하멜른에 들어서자 ‘피리 부는 사나이’ 조형물이 보인다.

 

독일의 마을을 지나며 생각나는 단어는 ‘동화 같은 마을’이다. 독일의 도시들은 대부분 구시가를 최대한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하면서 개발하는 방식을 따랐다. 오래된 목조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보존되며 그런 오래된 건물에 아직도 사람들이 대대손손 살아가는 모습은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어렸을 때 주로 읽었던 동화가 서양의 동화이어서 그렇겠지만 목조건물이 가져다주는 안락함과 오래된 건물이 불러일으키는 향수가 복합작용을 하는 것 같다. 집은 깔끔하고 예쁜 창문 장식이 인상적이다. 그 창문에는 대부분 동화 속 예쁜 인형들이 밖을 향해 서 있다.

 

독일은 고전음악의 나라이며 철학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동화의 나라이기도 하다. 덴마크에 안데르센이 있다면 독일에는 그림 형제가 있고 우리에겐 방정환 선생이 있다. 연년생인 형 야콥 그림과 동생 빌헬름 그림 두 형제는 언어학을 전공하였다. 나폴레옹 군대가 독일을 침공하여 전란에 휩싸이자 일자리를 잃은 형제는 고향에 낙향하여 옛날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형 야콥은 돌아다니면서 구전이나 전설, 민담을 모으고 동생은 상상력을 더해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다듬어 동화로 만들었다.

 

지구상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는 책이 바로 그림 형제의 동화집이라고 한다. 나도 글자를 배우기 전부터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와 라디오, TV, 만화나 그림책 등을 통해서 이런 동화를 접하고 자랐다. 백설 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장화 신은 고양이, 거위 치는 소녀,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과 꿈을 키웠다.

 

독일에는 그림 형제가 출생해서 성장하고 구전동화나 설화들을 수집했던 도시들을 이은 ‘동화가도’가 있다. 동화를 품은 마을을 옛 모습 그대로 또는 동화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재현하여 만든 조형물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림 형제가 태어난 하나우에서 브레멘까지 600여km를 이은 긴 구간에 인접한 도시들이 동화와 관련된 흔적들을 부각하여 관광지로 발전하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 ‘동화가도’에서 몸이 쇠약해져 더는 짐을 나를 수 없는 당나귀와 노래를 잘하고 싶은 수탉, 입 냄새가 심하게 나는 개와 쥐를 잡지 못 해 쫓겨난 고양이가 모여서 만들어낸 브레멘 음악대의 배경 도시는 브레멘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 나선 아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도시는 하멜른이다. 숲속의 공주가 잠자는 도시의 무대는 자바부르크, 신데렐라의 성이 있었던 곳은 폴레, 흥미진진하고 신기한 이야기가 도시를 따라 펼쳐진다.

 

지금 내가 있는 도시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람‘이라는 전설의 고향이다. 이 이야기는 한때 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간 간 흑사병과 관련이 있다. 중세 이후에도 유럽 사람들의 위생관념은 열악한 상태였다. 그 유명한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려함 속에도 욕실이나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고 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확인되지 않은 역사에는 중세 유럽을 몽골군보다 더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은 중국 남부에서 발생했고 몽골 병사들을 통해서 북부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 흑사병이 몽골 왕실을 무너뜨렸다는 설도 있다. 원나라 통치자들의 납득할 수 없는 연쇄적인 죽음이 흑사병과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유럽의 불결한 환경에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유럽 인구의 1/3이 이 병에 걸려서 죽었다. 유럽은 그때 지지리도 가난하고 비위생적으로 살았다. 그래서 이 흑사병이 유럽에서 창궐했다는 것이다. 수도원과 같이 집단 거주지로부터 급속도로 번져갔다.

 

쥐는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도 있으며 언제나 골칫덩이였다. 하멜른은 멋진 도시였지만 어느 순간 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쥐는 곡식을 축내고 병균을 옮기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시장에게 쥐를 없애 달라고 민원을 넣었지만 시장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남자가 피리를 가지고 나타난다. 그는 시장에게 도시의 쥐들을 모두 없애 줄 테니 금화 천 냥을 달라고 요구했다. 다급한 시장은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 피리 부는 사나이가 피리를 불자 여기저기 숨어있던 쥐들이 마술처럼 모두 사나이를 뒤따라가 강에 빠져 죽고 말았다. 시장은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되자 마음이 변해 약속한 금액의 일부만 주고 사나이를 쫓아낸다. 얼마 후 이 사나이는 하멜른에 다시 나타나 피리를 불었고, 이번에는 아이들이 사나이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사나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숲속으로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이후로는 이 도시에서 아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일설에는 이 아이들이 십자군 전쟁에 끌려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작은 도시 하멜른에는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어디선가 아련히 들려올 것 같은 유혹의 피리 소리를 따라 이곳을 찾아들고 있다. 나도 한 사나이가 피리를 불며 골목골목 지나며 아이들을 물러냈던 구시가를 따라 몽환적으로 달려간다. 몇몇 아이들이 내 평화의 유모차 행렬이 신기한 듯 콧노래를 부르며 뒤따르다 돌아서 간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하멜른에서 아침 밥상에는 쥐가 한 마리 올라와 있다. 쥐에 담긴 계란을 집어서 껍데기를 벗겼다. 금방 쥐 조형물의 용기인 줄 알았지만 잠시 놀랐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빗길을 힐데스하임까지 50km를 달려가야 한다. 힐데스하임까지 왔지만 이곳 호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최하가 200유로를 넘는다. 400일이 넘는 여정을 하면서 하룻밤 숙박비로 그렇게 지불하기는 너무 부담이 컸다. 그러지 않아도 유럽의 숙박비가 만만치 않아서 부담이었는데 둘러보니 강가에 야영하면 분위기도 좋고 달도 보고 별도 보며 유럽의 대지에서 일어나는 대지의 기운을 느끼고 싶기도 했었다.

 

내가 유라시아 어느 구석에선가 들려오는 마혹의 피리 소리에 홀려 길을 나선 건 분명하지만 거기까지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자다가 환청으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따라 몽환증 환자처럼 베저강으로 뛰어들지만 않으면 될 일이었다. 혼자 야영을 할 때 제일 고려 대상은 사람이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으슥한 강기슭에 텐트를 치고 자리에 눕는다. 텐트를 칠 때만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금방 거센 바람이 불어오더니 밤새도록 윙윙거린다.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빗방울이 텐트를 때리는 강렬한 사운드트랙이 남량특집 만화영화처럼 으스스하게 들린다. 그 밤 재밌고 신비스러운 동화가 아니라 괴기스러운 동화의 밤을 지새워야 했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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