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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3)

통일흥부가족과의 아름다운 동행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마라톤이 아름다운 것은 중간중간에 급수대가 있기 때문이야! 인생이 아름다운 것도 그와 같지! 살다가 지치고 목마를 때 급수대가 여기저기 있어! 황량한 사막보다 오아시스가 많다는 이야기지! 우리의 이웃이, 가족이, 친구가 그리고 간혹 기대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인생의 급수대가 되어주기도 하지!” 그때 마시는 물은 어떤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보다도 더 가슴을 적시고 첫 모금의 물이 입술을 적셨을 때는 첫 키스의 날카로움보다도 더 깊게 혀를 감전시킨다. 마치 그 물을 마시기 위해 그 먼 길을 온 힘을 다해 뛰어온 사람들 같기도 하다. 지금 유라시아 평화마라톤도 많은 사람들이 급수대가 되어주어 잘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날씨는 점점 쌀쌀해져 오는 데 다리를 다친 제비는 강남에 날아갈 수가 없다. 이때 흥부가족이 제비를 정성껏 치료해 결국 제비는 강남에 날아갔다. 나도 세르비아를 달리던 중에 다리에 부상이 왔다. 최대의 위기가 왔다. 어쩌면 나는 이 부상으로 인해 여정을 무사히 마치지 못할 수도 있다. 보통 제비의 이동 거리는 5천km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1만6천km를 달려갈 사람이다. 미사일도 비행거리가 5천km가 넘으면 보통 미사일이 아니라 대륙간탄도 미사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1만6천km를 넘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보통 대륙간탄도미사일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다. 

 

사람들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내심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럴 때는 쉬어야 했지만 하루 이틀 쉰다고 더 좋아질 것 같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제 불가리아 국경으로 가는 산악지역을 건강한 다리로도 70kg나 되는 손수레를 밀며 가는 것이 두려움에 떨 정도였다. 가는 중간에는 잠잘 곳도 없고, 식당도 없다. 가끔 지나가는 차나 행인을 만나면 그건 행운일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내가 여기서 포기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분명 몰려오는 두려움을 떨쳐버리질 못했다. 나는 매일 아침 두려움에 떨면서도 예기치 않게 마주칠 기쁨을 꿈꾼다.

 

다른 모든 것은 대체할 수 있지만 내 몸은 대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한계 너머의 세계를 여행하여야 할 때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게 된다. 나도 두 손을 모았다. 앞뒤에서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운전자들이 보행자보다 우선권을 가진 나라에서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사람은 진땀 나게 차를 피해 다니는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떻게 하든지 살아서 내 조국에 돌아가야 한다. 세르비아의 도로변에는 유난히 십자가와 함께 젊은 사람의 초상화가 새겨진 비석이 많다. 세르비아의 도로가 온통 공동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도로를 달리는 자체가 생사의 갈림길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등 뒤에 적을 두느니 적을 마주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차가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살갗을 스치듯이 속도를 내서 달린다. 내가 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은 크루세바츠로 가는 길이였다. 길은 자동차 통행이 많고 갓길이 없어 심리적인 부담을 안고 달려야 했다. 이런 위험한 길일수록 빨리 벗어나고 싶어 발걸음이 빨라졌다. 거기에 함정이 있었다. 무리하면 근육은 반란을 일으킨다. 잔뜩 긴장을 하고 빠른 속도로 달리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 근육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날 자고 일어났다. 아침에 출발은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기분 좋게 했다. 며칠 전 다녀간 김수임, 김나라씨 가족이 오늘 일요예배 마치고 다시 우족탕을 끓여서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분 좋은 출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몇 발자국 달리는데 근육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그래도 갈 길이 멀어 마음이 급해 마음을 다져 먹고 달려보았지만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때야 불길한 생각이 스쳐 가면서 나는 바로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살살 걷기로 결정을 했다.

 

걷는 것과 뛰는 것의 다리가 받는 충격의 차이는 크다. 보통 뛸 때 다리가 받는 충격은 자기 몸무게의 3배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온 종일 견디는 일을 두 달 넘게 해왔으니 탈이 날 때도 되었다. 아픈 다리로 절룩걸음을 하며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갔다. 인적이라곤 없는 곳에 운 좋게 저 앞에 두 사람이 보였다. 산 중에서 토끼 두 마리 잡은 사냥꾼은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총구가 땅으로 가게 총을 맨 두 사람은 뭔가 소득이 있었던 것에 만족한 듯 의기양양해서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내가 누군가가 되어주어서 엄지손가락을 올려주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란 없어서 내 여정을 소개하자 이번에 그들의 엄지손가락이 올라가야 했다. 조금 더 가다 물고기를 잡아서 콧노래를 부르며 가는 낚시꾼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유럽 전체를 여행하던 독일 청년 둘이 나를 지나쳐가더니 다시 돌아와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보더니 나의 여행에 대해서 흥미를 표현하며 대단하다며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느지막이 알렉시나치에 도착하여 샤워를 마치니 통일흥부가족이 도착했다. 불과 며칠만의 만남이지만 너무 반가웠다. 금방 준비한 밥상에서 우족탕 한 숟가락이 입안에 들어가면서 그리운 맛의 향연이 펼쳐지더니 한 냄비를 거뜬히 비울 때까지 뼈다귀를 물어뜯는 개처럼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멈출 줄 몰랐다. 식사가 끝난 후 오랜만에 만난 한 가족처럼 정담을 나누었다. 우리는 아마도 마음으로 이미 한 가족으로 서로를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이들은 원래 내일 하루만 동행하기로 하고 여기 왔는데, 내 다리도 시원치 않고, 내일하고 모레 나의 일정을 듣더니 중간에 식당이나 숙소도 없다며 너무 마음 아파했다. 그들은 하루 더 같이 가면서 내일 끝나는 부분에 숙소가 없으므로 거기서 숙소까지 태워다주고 다음 날 아침 그 자리까지 태워다 주기로 가족회의에서 결정했다. 내 방으로 돌아와 얼음찜질하고 있는데 양준호씨가 와서 마사지를 정성껏 해준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다리가 시원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침 일찍 보스포로스 TV방송국에서 인터뷰하러 나왔다. 지난번 베체이 TV는 지방방송이었는데 이번에는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방송국이다. 인터뷰하고 그들이 원하는 포즈와 달리는 장면을 촬영하느라 출발이 약간 지체되었다. 똑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연출하느라 시작도 하기 전에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불만을 표시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세계 언론이 나의 평화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보도해주는 것은 좋은 신호이다. 우리의 통일은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제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가던 내가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묻고는 김정은 이야기를 한다. 어디를 가나 유명하기로 따지면 김정은은 어느 한류스타보다도 더 유명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럴 정도로 한반도의 문제는 이미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 도착하는 피로트까지 약 94km이다. 중간에 큰 마을이 없어서 호텔이나 식당이 없는 아주 깊은 산악지역을 이틀 동안 가야 했다. 내가 다리가 아픈 상태라 뛰지는 못하고 산에 메아리가 울리도록 한 사람이 “평화”하면 다른 사람들이 “통일”을 외치며 함께 걸으며 평화행진을 하였다. 그 소리에 양치기 목동이나 나무를 베던 벌목꾼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러면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한국의 통일을 이야기하면 이 사람들은 유고연방의 향수를 표현한다. 세르비아 사람들 대부분은 유고연방의 재통합을 원하는 것 같다. 이들은 종교도 문화도 언어도 다 틀린 데도 말이다.

 

어진이 가진이 가족은 특별한 통일 가족이다. 8명의 응원단을 이끄는 치어리더는 역시 수임씨, 나라씨 어머니이다. 조상들이 다 독립군이었다는 이 가족의 통일 교육은 철두철미하다. 어진이 가진이는 학교 교육을 받는 대신 통일 교육을 받으며 자유롭게 놀며 자기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데 얼마나 똑똑하고 발랄한지 모르겠다. ‘통일 선창’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한다.

 

학교공부도 모자라 피아노 학원 태권도학원 등 시들어가는 아이들에 비해 열려있는 공부로 교육된 이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표정이 너무 좋다. 어진이는 제비가 왜 유럽에서 안 보이는지 스스로 연구를 하며, 가진이는 길거리 캐스팅이 될 정도로 연예인 기질도 다분하고 작곡도 한다고 한다. 그날은 아픈 다리로 47km 마친 지점에서 차를 타고 18km를 이동해 운치 있는 산장호텔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출발하였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가 내리자 기온도 많이 떨어졌다. 숲은 깊었고 두메산골의 마을은 아주 가끔 옹기종기 모여있다. 형형색색의 가을색상이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길 위에 나서면 날씨에 민감하게 마련이다. 날씨에 의지하고 몸도 날씨 그 자체가 된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는 더욱 그렇다. 저 언덕에 작은 동방정교회가 보인다. 어떤 사내가 내 앞을 질러 달려간다. 이런 곳에서 무엇이 바뻐 저렇게 내뺄까? 동네 처녀를 덮쳤는데 유부남이기 때문에 처녀 가족들에게 쫓기고 있는 거라고 웃으며 상상했다. 교회를 지나치는 걸 보니 참회의 기도나 고해성사를 할 의향은 없는 것 같았다. 그 대신 우리들이 교회로 올라갔다.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들이 있었으므로 화장실도 볼 겸, 교회를 구경할 겸 해서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교회를 지키는 사제가 나와 우리를 반가이 맞는다. 볼일을 먼저 보고 사제의 안내에 따라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초에 불을 붙였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이 들어와 촛불과 만나 빚어낸 빛이 경건한 마음을 더하게 한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 머리를 숙이고 손을 모았다. 종교는 다르지만 기도를 하는 일은 좋은 것이니 평화를 위해 기도를 했다. 사제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게 공손히 기도를 한 우리들에게 따뜻한 차를 내왔다.

 

비는 계속 내리고 구름은 산허리를 감싸고 시계는 짧아서 두려움은 몰려오고 춥고 배고팠다. 그리고 다리도 아팠다. 이런 곳에서 식당을 찾을 수는 없었다. 허름한 구멍가게를 만난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안에 들어가서 양해를 구하고 추위도 피하고 어진이 가족이 준비한 음식을 끓여서 먹었다. 구경거리라고는 아름다운 경치뿐인 이곳에 우리의 존재는 젊은 주인아주머니에게 잠시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 것이 분명했다. 표정이 그걸 말해주었다. 그러나 저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고양이 녀석은 불청객에 심통이 잔뜩 났다. 주인아주머니가 만든 신선한 요구르트도 함께 곁들이니 훌륭한 식사가 되었다.

 

다리는 통일흥부가족의 극진한 간호로 훨씬 차도를 보여 좋아졌다. 줄에 매 놓은 염소가 풀을 뜯고 앞마당의 닭들은 흙을 파며 먹이를 쪼는 호젓한 산골 마을은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아 공기가 보약처럼 좋았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지만 아름다운 동행자와 히말라야를 트레킹하는 것처럼 상쾌했다. 나는 달리는 내내 이 가족에게 물어다 줄 호박씨는 통일의 호박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만6천km를 달려서 물어올 호박씨가 가은이네 가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대박이 되었으면!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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