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1)
아시아 땅을 밟으며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12월 1일, 딱 3개월 만에 드디어 아시아의 땅끝마을 위스크다르에 도착했다. 유럽대륙을 지나 아시아대륙으로 들어섰다. 유럽의 이스탄불과 아시아의 이스탄불을 이어주는 다리는 두 개이고 하나의 터널이 있었다. 다리 위를 달려서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널 수 있다면 멋진 일이지만 쿠르드족의 테러 위협으로 다리는 보행이 금지되어있었다. 터널은 한국의 선경이 시공해서 작년 12월에 완공을 하고 올 초에 개통이 되었다고 한다. 그 터널을 달려서 통과하면 의미가 클 것 같아서 협조요청을 했더니 선경은 선전도 될 것 같아서 좋다고 했는데 보안상의 이유로 터키 정부로부터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골든혼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넘어왔다. 선경 관리사무소에 들러 간단한 환영식 및 바다를 땅 밑으로 뚫으면서 동시에 터널공사를 하는 굴착기 모형을 보면서 첨단기술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위스크다르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이다. 광활한 사막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낙타 방울 소리가 아련하게 가슴을 두드리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곳은 최고의 역사학자들도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할 오랜 옛날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로 다니는 대상들의 집결지였다. 그 낙타가 다니던 길은 지금은 고속도로가 되었고 낙타의 등대신 화물트럭과 화물선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실크로드는 유목민들의 유산이었다. 그들에게 여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일상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돈도 벌 수 있으면 그건 최상이다. 자연스럽게 한때 그들은 실크로드의 무역을 독점했다. 부럽게도 유목민들의 삶이 그랬다. 지금 이들이 숭배하는 마호메트의 삶도 그러했다.
이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을 끊어놓았지만 지중해와 흑해를 이어놓는다. 오스만 제국은 마치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동서로 영토를 확장했다. 무라드 1세는 정예부대인 예니체리를 만들고 아드리아노플(에디르네)로 수도를 옮겼다. 에디르네로 수도를 옮긴 오스만 튀르크는 본격적으로 유럽 정복에 나섰다. 불가리아를 점령하고 세르비아 동맹군을 격파하고 발칸반도에 있는 비잔티움 제국 대부분을 정복했지만 아직도 비잔티움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손에 넣지 못했다.
유목제국은 몽골이 쇠퇴한 15세기 서구가 총과 화약을 들고 세계사에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를 움직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유목민들이 여행과 문학을 꽃피운 것도 확실하다. 그들은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를 열기 전 이미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고 여행기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이븐 바투타 선배는 단연 독보적이다. 모로코 출신의 이 대여행가는 27년간 12만km를 여행하며 남긴 ‘여행기’는 최고의 여행기 중의 하나로 꼽힌다. 21세 때 메카 순례에 오르면서 그의 여행은 시작되었지만 튀니스와 트리폴리를 거치면서 여행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는 여행자로서 명성을 얻으면서 술탄과 고관들에게 후원을 받아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의 여행지를 일일이 여기서 언급하는 일은 지루함만 더할 뿐이다. 한 마디로 그는 세상의 지평을 넓혔다.
그리고 나는 마라톤 여행 문학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나는 달리기 여행의 창시자 내지는 개척자 정도는 될 것이다. 달리기 여행의 매력은 자동차 여행보다는 더 깊게 자연과 사람을 만나고, 도보여행보다는 더 빨리 가는 것이다. 이런 여행은 왕후장상이 누리지 못하는 행복감에 도취할 수 있지만 과도한 피로감과 불결한 환경에 노출되어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다.
오랜 세월 실크로드의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과 신기루, 그리고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헤쳐내며 만나는 오아시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영혼의 한쪽 끝자락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끝없이 지나가는 터번을 둘러쓴 행상과 낙타들의 행렬과 함께 사랑과 전설과 모험이 펼쳐지는 신비로운 땅이며 어린이들에게는 신비로운 동화의 대상이며 청년들에게는 아련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 길을 통하여 비단과 도자기 등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뿐 아니라 종교, 예술, 학문, 전쟁과 사랑 등 정신적, 물질적 유산뿐 아니라 동, 식물도 이동하였고, 심지어 역병까지 이동하였다.
이익을 남겨 보다 나은 삶을 꾸려갈 수 있다면 비단뿐만 아니라 도자기, 유리와 보석 등 지구 이쪽에서는 흔하지만 저쪽에서는 귀한 것들을 찾아 실어 날랐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물건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문화가 오가며 첨단 유행도 오고 갔다. 당시 로마에는 하늘하늘 얇은 비단옷 속에 감추어진 여인들의 몸 곡선이 들어나는 것을 보고 퇴폐 논란이 일었지만 왕족들과 귀족들의 부인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죄였을 뿐만 아니라 축복이었다. 비단이 바로 당시 유행의 선봉이었고 최고의 패션이었다.
초원은 땅이 척박하여 자급자족하기 어려운 곳이다. 동쪽에서 밀려난 돌궐은 교통의 요지 실크로드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제상인들을 품어 안고 국제무역을 주도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군사적인 우위만 가지고 제국을 건설할 수는 없다. 그들은 오아시스의 상권을 움직이는 상인과 중국의 관료를 받아들여 제국의 틀을 다진다. 시안에서 비단 한 필의 가격이 로마로 오면 백배도 넘는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교역을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을 제국을 유지하는 기반으로 삼았다. 거대 제국 돌궐이 주도한 동서 교역은 과거 오아시스의 사막 길을 통한 한정된 교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약적 발전과 교역량 증대를 가져왔다.
그 길을 두 발의 근육에만 의지하여 달리며 ‘유라시아 실크로드’의 수만 년 숨결이 울려주는 미세하고 생생한 소리를 내 가슴에 장착된 성능 좋은 확성기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그 길을 달리면서 옛날 캐러밴들이 낙타의 고삐를 움켜쥐고 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위험을 맞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 잠들어 있는 유라시아의 무한한 가능성을 자극하여 깨워줄 평화의 여정이 되기를 희망한다. 내 발걸음을 통하여 소통과 상생의 새로운 길이 열리며, 사람들이 더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사랑하고 우리가 지금껏 누려보지 못한 더 넓은 평화를 누리게 되길 소원한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콘스탄티노플은 아직도 견고하여 함락되지 않았다. 21세의 젊은 술탄 마호메트 2세는 골든 혼 안으로 배를 댈 수만 있다면 도시를 함락시키는 건 시간문제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의 머리에 번득이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배를 가지고 반대편으로 ‘산을 오르기’로 결심했다. 나무를 묶어 궤도를 만들고 배에 수백 가닥 밧줄을 묶어서 수많은 병사와 황소들이 배를 끌어당겼다. 하룻밤 사이에 72척의 배가 산을 넘어 골든 혼 안 깊숙이 들어왔다. 배를 산으로 밀어 올려 철옹성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였던 젊은 술탄의 눈부신 전쟁사는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했다.
배가 산을 넘은 만화영화 같은 전쟁이었다. 1453년 5월 27일, 마침내 흰말을 타고 앞장서서 칼을 높이 치켜든 젊은 오스만의 황제 메흐메트 2세는 군악대의 북과 피리 소리에 맞추어 콘스탄티노플로 들어갔다. “가라, 이슬람의 아들이여! 보아라, 성전의 깃발은 드높이 펄럭이고 있다. 우리 병사는 하늘의 별보다 많다. 알라의 이름과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위해 전력을 다해 싸워라!” 마호메트 2세의 명령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싸움에 오스만 제국은 10만의 병사를 동원하였고, 비잔티움 제국은 7,000명이 못 되는 군사로 이에 맞섰다. 역사가들은 이날 “오스만은 크리스트교 천 년 역사를 품은 도시를 손에 넣었다.”고 적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성소피아 성당으로 가서 이마를 바닥에 대고 이슬람식으로 예배를 드린 후 기독교 성당인 소피아를 이슬람의 모스크로 바꾸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 후 네 개의 ‘미나레트’가 세워졌다.
최고의 전리품을 얻은 그는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고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었다. 또 다른 천년의 제국을 열기 위하여 이곳에서 그가 제일 먼저 한일은 성소피아 성당 옆에 톱카프 궁전을 지은 것이었다. 그다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마호메트 모스크를 새로 지었다. 또한 그는 제국의 위험에 맞는 ‘그랜드 바자르’라는 큰 시장을 열었다. 이곳은 실크로드의 마지막 종착역이 되며 이곳에 없는 물건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유럽을 지나는데 꼬박 3개월이 지났다. 달리는 일이 무한 속도 경쟁을 벌이는 현대문명에 반기를 든 것이라면 나는 유럽이 시작한 현대문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그 대륙을 달려온 셈이다. 그들이 쳐주는 열렬한 박수와 그들이 건네주는 음료수를 얻어 마시며 그들이 이제 식상한 차가운 세상을 달리며 그들도 이젠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는 것을 알았다. 현대문명은 따뜻한 온기를 포기한 것이어서 피도 눈물도 인정도 따뜻한 것이면 모두 거부해 왔다. 이제 다시 끊임없는 이동과 변화 속에서 가치를 해석하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유목 시대, 노마드의 시대가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들 것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서 위스크다르에 발이 닿자 느껴지는 것은 아시아의 시대가 천천히 그러나 확연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시아의 시대는 아직도 서슬이 시퍼런 제국주의 시대를 보내고 만인이 서로 나누며 함께 즐거워하고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여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소아시아 땅을 달린다. 소아시아는 흑해, 마르마라해, 에게해, 지중해 등에 둘러싸인 반도. 터키 영토의 97%를 차지한다. 아나톨리아라고도 한다. 아나톨리아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태양이 떠오르는 곳', '동방의 땅'이라는 의미의 ‘아나톨레’이다.
이제 여기서 통일흥부가족과 작별을 하게 되었다. 세르비아 국경을 넘어와서 처음 만난 날이 11월 1일이었으니 한 달이다. 한 달 동안 많이 힘이 되어주었다. 그동안 많이 의지했는데 이제 다시 홀로서기를 하려면 한동안 무척 힘들 것 같다. 아쉬운 작별일수록 작별의 순간은 짧고 단호하게 끝낼 필요가 있었다. 만났다 헤어지는 것도 사람의 일이니 다시 한번 처음 떠날 때의 결연한 의지를 다져본다.
마르마라해의 푸르름은 영혼을 어느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철 지난 휴양도시 특유의 한적함과 편안함, 아름다움이 섞여 있다. 저 바다 건너는 ‘왕자의 섬’이라 불리는 유명한 휴양지가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역사에서나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왕자의 난은 있었는지 그 경쟁에서 밀려난 왕자들의 유배지였다고 한다. 엣날 사람들은 낭만이 있어서 피 튀기는 경쟁자들에게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배를 시켜 여생을 마치게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유배지 남해나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떠올린다.
카라반사라이는 옛날 대상들과 낙타들이 먹고 자며 쉬어가던 곳이다. 낙타가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약 45km이니 그 거리마다 쉬는 공간과 목욕탕, 시장 등의 편의 시설이 있었다. 내가 지금 이동하는 거리와 낙타의 이동 거리가 일치하는 것도 재미있다. 낙타걸음으로 평화의 벨트를 달린다. 그 옛날 수천 마리의 낙타가 함께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행진했지만 난 지금 트레일러트럭이 일으키는 먼지들 뒤집어쓰며 홀로 달리고 있다.
어디를 가나 아이들의 환영은 대단했다. 나는 왠만한 한류스타를 능가했다. 아이들이 달려들자 찻집에서 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또 나를 부른다. 이곳에서 친절을 거절하는 것은 대단한 무례이다, 이곳에도 한반도의 소식이 뉴스를 타고 전해지는데 주로 북쪽 이야기가 많았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나를 불러 차 대접을 하며 내가 한국인임을 알면 바로 며칠 전 북 미사일 발사 소식을 묻는다. 나라고 그들보다 더 많은 뉴스를 접했을 리 없지만, 터키인들과 한반도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11월 29일 북한은 고도가 4천5백km이고 비행 거리는 960km에 달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것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동시에 2단계 분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서울의 촛불 혁명이 ‘동방의 등불’로 인식되며 이들에게 전해졌었다.
유럽에서는 호텔닷컴이나 이런 것을 이용하여 하루 전에 숙소를 예약하며 잤는데 터키에서는 그게 차단되었다. 언어도 불편하고 하여 적당한 거리의 구글맵이나 맵스미에 표시된 숙소를 찾아 달려간다. 다행히 비수기이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안 해도 상관 없을 것 같지만 불안한 마음을 가실 수는 없다. 가까스로 찾은 허름한 호스텔은 비수기라 홀로 사용하였지만 공동 샤워장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더듬더듬 몸의 땀을 씻어내야 했다. 다행인 것은 바퀴벌레나 쥐가 돌아다니진 않았다. 이제 막 달리기도 끝나고 샤워도 끝냈다. 한낮의 밝음이 미명을 남기고 막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 난 하루 중 이 시간이 제일 좋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아 마음의 침잠을 이루기 좋다. 자리에 눕자 이부자리에 여자의 싸구려 화장품 냄새와 기름때가 절은 냄새가 섞여서 난다. 오늘 저녁은 마음의 침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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