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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70)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70)

창백한 도시 아쉬하바드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이야기는 힘이 세다. 이야기의 생명은 길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아 번창한다. 중앙아시아에는 우리나라 구연(口演) 전통인 판소리와 비슷한 수천 년 전승된 광활한 대지에 펼쳐진 영웅의 대서사시 ‘다스탄’ 문학이 있다. 고로글리는 이 대서사시를 구연하는 중앙아시아식 구연 공연 중의 하나이며 무형문화재이다. 영웅 고로글리와 40인의 용사를 구연하는 전문 공연자들을 데산치 박시라 부른다. 고로글리의 구전 공연에는 구연과 노래, 즉흥 사설과 연기, 두 줄짜리 현악기 두타르와 바이올린과 유사한 기자크 등 다양한 악기가 사용된다.

 

서사시는 한 국가의 전설과 역사를 문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자를 갖지 못했던 투르크민족에게 이 구전 문학이야말로 역사 그 자체이며 그들의 생활 방식, 전통을 보여주는 훌륭한 자료이다. 오늘날 이 서사시는 젊은 세대에게 민족의 자부심과 사회 가치를 전승하고 국가 정체성과 통합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서사시에서 인정 많고, 친절하고 지도력과 용맹심을 발휘하며 연장자를 존경하는 거친 사막에 사는 투르크민족의 삶과 애환을 잘 묘사하고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터키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은 범 투르크민족으로 분류한다. 그들의 전설과 역사서는 자신들의 선조는 기원전에 나타나 기원후 4세기 초에 사라진 훈, 이어서 나타난 선비, 그다음 오구즈, 셀주크 투르크 그리고 근세의 오스만 투르크 등을 자신의 선조로 기록한다. 지난 2500년간 동서 8000km에 달하는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대제국을 건설하며 주도적 역할을 해온 기마군단의 주인공은 바로 이들이다. 여기서 오구즈는 6세기경 중앙아시아의 시르다리야 겅변에 정착하면서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을 새로운 영토로 삼았다. ‘오구즈나메’는 이 오구즈 튀르크족의 서사시로 오구즈칸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이렇게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투르크 민족이 세계 역사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서구와 중국의 합작으로 이들의 역사를 왜곡하고 폄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목민들은 자신들 삶과 문화,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정주민들은 그들을 야만인들로 생각했다. 버림받은 땅으로만 알려져 있던 중앙아시아가 이제 학자들의 끈질긴 연구에 의해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단지 중국과 유럽을 연결해주는 실크로드의 가교로만 인식되어 평가절하되었던 국가들이다.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극복하며 역사에 부침에 동참하고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는 사실은 이 평화 여행길에 만난 놀라운 발견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나그네에게 광대한 유라시아대륙에서 펼쳐진 격동의 세월을 다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을 나누는 카페트닥산맥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뼈를 드러낸 뽀죽한 바위산괴 차창 아래 마른 계곡이 ‘혹성 탈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런 척박한 곳으로 들어가면 사람이든 생물이든 빠져나오지 못하고 중간에 소멸해버릴 것 같다. 이런 곳에선 욕망마저도 기름기가 싹 빠져서 볼품없어진다. 간혹 물이 흐르다 끊기다 하는 계곡에 집 몇 채가 모여있는 마을이 보일 뿐이다. 저런 곳에서도 대를 이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버스를 타고 와서 걸어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좀 있어도 차로 국경을 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국경검문소는 한산하였다.

 

국경검문소에서 돈을 더 환전하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천 달러만 환전했는데 돈이 한 보따리나 된다. 일부를 허리백에 찼는데 그것이 눈에 띄게 볼록하다. 그것을 보고 세관원이 허리 백에 무엇이 들었느냐고 물어서 돈이라고 했더니 몇 사람이 달라붙어서 한참을 세어본다. 나는 그들이 내 돈을 세는 동안 혹시라도 슬쩍할까 봐 그들을 감시해야 했다. 다른 돈은 없냐고 물어보아서 다른 돈은 없다고 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행히 배낭 깊숙한 곳에 감춰둔 돈은 X레이로도 감식이 안 되는 모양이다.

 

짐은 샅샅이 뒤집어 엎어졌다. 그리고도 잘 훈련된 테리어 두 마리가 차에 올라타 이곳저곳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어느 나라든지 실력 없는 공무원들이 시키는 일 이상을 하려는 것이 문제였다. 독재 국가일수록 더했다. 유럽연합을 제외하고는 국경을 넘을 때마다 애를 먹는다. 마침내 지리한 절차가 끝나고 그들은 나중에 출국할 때 반납하라고 하면서 차에다 위치 추적장치를 달았다. 이 기계를 떼어내면 체포될 수도 있다는 경고와 함께였다. 경악했다. 범죄자도 아닌데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지도에서 보이는 국경선은 인류 역사상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국경선의 역사는 기껏해야 300년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 국경선은 불과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유라시아를 달리면서 국경선의 벽을 머리에서 지우면 무언가 확연하게 달리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달라진 세상을 꿈꾸며 이렇게 달리고 있다.

 

멀리서 하얗게 바라보이는 도시는 이국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낯설다.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 지역을 지나서니 바로 수도인 아쉬하바드이다. 사막에 핀 눈꽃처럼 차갑다. 국경선 입국 절차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점심을 굶었으므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식당이었다. 거리에 간판이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찾아 헤매다 들어간 식당은 러시아계 식당이었다. 종업원들이 늘씬늘씬한 러시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이 외부와의 소통이었으므로 전화기의 심카드를 사는 일이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호텔을 찾았지만 사람들이 알려주는 곳은 모두 5성 호텔로 너무 가격이 비쌌다. 저렴한 호텔을 찾아다니다가 이윽고 밤하늘에 별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하얀 도시는 깨끗하다 못해 창백했다. 잘 포장된 넓은 도로에는 차 몇 대 다니지 않았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 유령 도시 같았다. 모두 하얀색으로 높이 솟은 건물은 네온사인이라든가 간판도 보이지 않고 상점도 그리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거리에 휴짓조각 하나 담배꽁초 하나 없었다. 심지어 먼지 하나 없는 것 같이 깨끗했다. 싱가포르가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나라인 줄 알았는데 투르크메니스탄에 비하면 상대도 안 된다. 이렇게 결벽증에 걸린 도시가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 기묘한 청결과 강요된 침묵 뒤에 거대한 폭력이 움츠리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수도 ‘아쉬하바드’는 사랑의 도시이다. ‘아쉬하’는 사랑을 의미하고 ‘바드’는 도시를 뜻한다. 그곳에 깨끗한 걸 유난히 좋아하는 지도자가 사랑마저도 청소시킨 것이 아닐까? 절망감에 빠져 둘러보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 곳곳에 휴짓조각만도 못한 경찰들이 널브러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 도둑이나 강도는 없고 불평불만을 가진 사람들뿐인데 경찰은 이들의 입을 감시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다음 날, 오랜만에 늦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는데 경찰이 호텔로 들이닥쳤다. 정보과 형사반장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힘 좀 쓸 것 같은 형사 두 명과 영어통역을 맡은 여자 한 사람을 동반하고 들이닥쳤다. 이들은 우리가 어제 이동한 동선을 훤히 꿰차고 있었다. 어제 국경검문소에서 시간을 많이 걸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 들어와서 배가 고파 식당을 찾으려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었다. 그리곤 처음에 찾아 들어간 호텔이 너무 비싸서 적당한 가격의 호텔을 찾으러 헤매고 다니다시피 했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이 나그네 기분을 확 뒤집어놓았다. 이들은 다짜고짜 당장 짐을 싸서 아쉬하바드 밖으로 나가고, 다시는 아쉬하바드에 들어오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유는 수도의 치안을 위해서라고 한다. 하루 종일 달리고 나머지 시간은 그저 들어와서 쉬는 것뿐인 내가 아쉬하바드의 치안을 해친다는 상상은 해도 해도 너무 지나친 상상이다. 나는 지금 너무 피곤한 상태라 움직일 수 없고, 대신 내일 아침 7시에 여기에서 나가겠다고 비굴할 정도로 통사정을 해서 해결이 되었다. 당장은 해결되었지만 형사반장이 내게 명령한 것보다 많은 것들이 직감을 통해서 전달되어왔다. 천둥이 울리기 전 번개가 치는 일종의 그런 것 말이다.

 

통역하던 여자에게 근처에 한국식당이 없냐고 물어보았더니 자기도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데 한국 음식을 먹고 싶을 때 가끔 가는 아시아 식당에 가면 김치도 있고 한국 음식이 있다고 했다. 창건이와 나는 그녀가 소개해준 아시아 식당을 찾았다. 거기에서 오랜만에 김치 맛을 보고 한국 음식을 맛보았고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곳 수도에는 러시아인들도 있고 중국인들도 있어서 돼지고기를 구할 수가 있었다.

 

그 식당에서 김안젤리나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고려인 종업원을 만났다. 한국말은 몇 마디 못 하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한국인이라고 말해준 것이 왜 그리도 고맙고 한국인의 발자취란 거의 없을 것 같은 이곳에서 한국이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니 얼마나 반갑던지 스카프를 한 장 선물했더니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자랑했다. 오랜 기간 돼지고기를 먹지 못했으므로 돼지고기 탕수육을 시키고 김치를 달라고 하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평화’라는 단어는 어떤 집단에게는 위험한 말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평화를 위해서 만인의 평화를 담보로 저당 잡은 사회에서는 말이다. 차량 앞뒤로 대문짝만하게 써 붙인 ‘Peace Marathon’이란 글자가 위협적으로 느껴졌을까? 거기다 내가 누구란 말인가? 2016년 겨울 작은 촛불로 시작된 것이 한반도 남쪽을 뜨겁게 불태워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독재자와 적폐세력을 용광로 속의 불순물처럼 제거해버렸던 그 유명한 ‘촛불혁명’의 나라 한국에서 온 평화운동가가 아닌가? 정보당국은 내가 ‘사드 반대 마라톤’ ‘핵발전소 반대 마라톤’을 한 이력을 파악했을 것이다. 이들은 필시 촛불 바이러스가 번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물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투르크메니스탄에 와서 기대치 않은 거물로 대접을 잘 받았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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