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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77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77

비비하눔 왕비의 치명적인 키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푸른 도시 사마르칸트를 에메랄드보다 더 영롱한 땀방울을 흘리며 달리는 나그네에게 박수를 보내던 색목인 여인의 오묘한 모습은 달리는 동안 계속 잔영으로 남는다. 수줍은 미소 띤 그 얼굴에 푸른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눈동자에 어리던 알 수 없는 그리움 말이다. 뇌쇄적인 푸른 눈빛의 신비감이 잠시 내 영혼을 버뮤다 삼각지대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원하는 것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보이는 환상을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곧 와줄 것 같고 꿈꾸던 파라다이스의 문이 열린 것 같다. 때로 진실보다 아름다운 거짓도 있다. 사막의 신기루가 그러하다. 끝없이 별만 보며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목이 마른다. 생명의 빛이 가물가물해지는 그는 오아시스가 필요하고 쉴 플라타너스 그늘이 필요하다. 그의 눈에 가짜 오아시스가 보인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오아시스가 꺼져가는 그의 생명의 빛에 기름을 붓는다. 그러나 방금 전 내가 본 그는 신기루가 아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창문을 열고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더니 휙 지나쳐 갔다. 한참 앞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세워 콜라를 내 손에 쥐여주며 자기는 한국의 수원에서 5년 살다가 왔는데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사내의 그 푸른 눈빛도 잊지 못할 것이다. 목젖을 타고 흘러내리던 콜라의 시원함도 잊지 못할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실크로드 주체가 중국과 로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교역을 담당했던 주역은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역 사람들이다. 장건이 이 지역으로 공식적인 출병을 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이 길을 오고간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장사꾼이었다. 중국은 그때 세계의 중심이었고 물산이 풍부했다. 그들은 단순한 전달자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실크로드를 만든 주역이었다. 말하자면 문화의 거대한 기획사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무역을 하면서 이들의 삶은 훨씬 윤택해졌다. 실크로드에서 사마르칸트는 장안과 바그다드와 비잔티움과 어깨를 겨루는 그런 도시였다.

 

중국과 로마가 직접 접촉하고 교류한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 사람들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전해 들은 것이 전부일 정도였다.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트란스옥사니아를 중심으로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활동하던 이란어계 민족을 소그드인이라 한다. 사막길을 오가며 장사를 하려면 신체 건강하고 용감하여야 하며 외국어에 능통해야 했다. 그들은 다섯 살이 되면 외국어와 수학을 익히기 시작했고, 20세가 되면 외국에 나가 장사를 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공부 잘하라고 붓을 쥐어 쥐고 오래 살라고 실패를 쥐여주었지만 이들은 아이를 낳으면 꿀을 먹여서 감언이설을 하게 하였다. 또한 아교를 쥐여주었다. 아교가 물건에 붙듯 손에 재물이 붙으라는 뜻이다. 이들은 돈이 되는 곳이면 지구 끝까지 갔다. 그들은 5세기에서 9세기에 중국과 인도, 동로마제국까지 오가며 장사를 하였다. 신라와 고구려까지 뻗쳐왔다. 그들이 중국에 정착하면서 중국식 성을 갖기 시작하였는데 강(), (), (), (), (), (), ()씨 등은 뿌리를 둔 후손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안녹산 역시 아버지가 소그드인으로 소그드인에게 흔한 안씨 성을 지닌다. 녹산은 을 의미하는 이란어 로우샨(rowshan)을 중국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구려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와 결혼한 바보 온달도 소그드인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외국인인 온달은 당연히 우리말이 어눌했을 것이고 외모가 남다르니 아이들이 집단 왕따를 놓았을 것이다. 온달이가 문밖으로 나서면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온달이는 바보래요!” 이렇게 놀렸을 것이다. 북청 사자놀이도 이곳에서 전해진 것이다.

 

삼국사기에 묘사된 그의 외모는 얼굴이 험악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밝았다.”였다. 외국인의 선 굵은 이국적인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중국에 소그디아 왕족의 성씨는 온()이라는 기록이 있다. ‘온다르라는 이름은 중앙아시아 러시아 자치 공화국 투바 일대에서는 흔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온달은 이곳 소그드인일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바보가 마누라 잘 만났다고 하루아침에 장군으로 위용을 갖출 수 있겠는가?

 

이곳에서 제일 놀라운 일은 한국말로 살갑게 인사하며 말을 거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소그드인들의 후손들은 이제 장안이 아니라 한국에 와서 돈을 벌어가고 있다. 오늘 만난 조키르라는 사람은 외대에서 3년 동안 한국어 연수를 마쳤다. 그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그는 내게 꼭 다시 연락하자고 전화번호를 주고 갔다. 실크로드는 과거의 실크로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길이고 미래의 길이며 교류는 훨씬 광범위해지고 빨라지고 깊어지고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옛 시인들은 사마르칸트는 강력한 군주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하지만 누구도 영원히 갖지 못한, 아름답고 도도한 여인을 닮았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사마르칸트가 영영 잊을 수 없는 남자가 있다.”고 했다. 그가 바로 절름발이 티무르’, 사마르칸트가 낳은 위대한 지배자 아미르 티무르이다. 14세기 티무르 제국은 카라반들이 드나들며 남겨놓은 동서양 문화를 바탕으로 황토빛 사막 사마르칸트를 푸른 에메랄드빛으로 수놓았다.

 

고대 소그디아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는 칭기즈칸 때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의 사위임을 자칭한 아미르 티무르 때 다시 부흥했다. 사마르칸트가 고향인 그는 40년간 정복 전쟁을 치르면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칭기즈칸을 능가하는 대제국을 꿈꾼 그의 티무르 제국 영토는 중앙아시아를 넘어 페르시아와 러시아 그리고 인도 델리까지 뻗어 나갔다. 그는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진주로 만들기 위해 그가 정복한 곳의 학자들과 건축가, 예술가, 상인을 불러들였고 엄청난 토목공사를 벌였다.

 

그의 잔인성은 페르시아의 타크리트 성채를 공격할 때 적병을 모조리 살상한 뒤 자른 머리로 피라미드를 쌓기도 했다. 호라산을 점령하고는 석회 속에 사람을 생매장해 성벽을 쌓기도 하는 등 잔인한 정복자의 면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다마스쿠스와 바그다드 등 그가 공략한 도시는 영락없이 폐허가 되었다. 그런 그가 사마르칸트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궁전과 사원들을 지어 이 도시를 동방의 로마로 역사에 길이 남겼다. 때로 가장 잔인한 파괴자가 가장 위대한 창조자가 되기도 한다.

 

사마르칸트에 온 여행자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아마도 모래의 땅이란 뜻을 가진 레기스탄 광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 옆에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 비비하눔 모스크가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탈색되지 않은 주름진 푸른 돔에서 뿜어 나오는 생명이 깃든 듯한 광채가 금방 나그네의 시선을 압도하고 만다. 그 신비로운 건물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탈색되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다. 사마르칸트가 숱한 이야기를 품은 도시라는 것은 아라비안나이트의 본향이기도 하지만 치명적인 키스라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9명 왕비 가운데 그가 가장 사랑한 왕비는 몽골 칸의 딸 사라이 물크 하눔이라고 한다. 비비하눔은 물크 하눔의 이야기 속 이름이다. 그는 그녀를 위해, 인도 원정을 다녀온 뒤 1399년부터 비비하눔 모스크를 짓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토목사업에 여러 나라에서 끌고 온 건축가, 예술가, 공예가 등이 참여했다. 모스크는 인도 원정에서 가져온 호화로운 원석으로 400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여기에 인도에서 데려온 100여 마리의 코끼리들도 한몫 거들어 기중기가 담당했을 무거운 돌들을 날랐다. 이 사원 건축에 꽤 공을 들였던 티무르는 터키와 이집트 원정을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데 격노해 책임자들을 처형한 뒤, 직접 공사를 하다 다시 원정길에 나섰다.

 

딱 한 번의 키스가 그렇게도 절절한 사랑도 목숨도 송두리째 앗아가고 말았다. 비비하눔은 터키와 이집트에 출정을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세상 최고의 모스크가 완성되길 간절히 바랐다. 페르시아에서 데려온 건축가의 주도로 모든 공정이 순조롭게 마쳤지만 아치 하나만 미완으로 남아 있었다. 이때부터 일이 느려지더니 마침내 중단되다시피 했다. 때마침 이집트 원정에 나갔던 티무르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거라는 전갈이 왔다. 초초해진 왕비가 다그쳤지만 소용없었다. 왕비를 흠모하던 젊은 건축가는 공사 완성을 조건으로 왕비에게 키스를 요구했다. 왕비는 매번 거절했지만 공사가 늦어지는 데 안달이나 결국 한 번의 키스를 허용하고 말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아무도 모르고 자신과 젊은 건축가만 알 치명적인 키스는 비비하눔 왕비 볼에 반점으로 자국이 남고 말았다. 티무르는 이 반점을 보고 왕비를 추궁해 사실을 알아내고는 불같이 분노하여 건축가를 즉각 처형했다. 비비하눔은 미나레트 꼭대기에서 내던져 죽게 만들었다. 한 여인을 위해 지은 모스크가 완성되었을 때, 그 여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비비하눔을 짝사랑한 건축가처럼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은 정신 나간 사내가 한둘이었겠는가? 서라벌에서 우연히 선덕여왕을 보고 사랑에 빠진 지귀라는 사내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선덕여왕을 부르다가 가슴속에서 사랑이 불타올라 그대로 불길이 되어버렸다. 지귀는 화귀가 되어 서라벌 여기저기를 불태웠다.

 

춘추전국시대 세 번째 패왕 초장왕의 애첩 입술을 훔친 정신 나간 사내도 있었다. 장왕은 어느 날 신하들과 잔치를 벌였다. 날이 어두워지고 술이 한창 올랐을 때 촛불이 꺼졌다. 한 신하가 불이 꺼진 틈을 타 장왕의 애첩의 입술을 훔쳤다. 그녀는 그의 갓끈을 끊어 왕에게 고했다. 장왕은 좌중에 명령을 내렸다. “모두 갓끈을 끊으시오.” 3년 후 진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선봉에 서서 목숨을 걸고 적을 격퇴시킨 이가 그날 장왕의 애첩의 입술을 훔친 자였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여전히 위엄있고 화려한 옛 푸른 궁전 앞 박석을 밟으며 우즈베키스탄의 빛바랜 영광을 반추하며 비비하눔왕비가 어디쯤에서 정신 나간 건축가에게 입술을 내주었을까 궁금해지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댄다. 천하를 정복하지만 제 사랑의 볼을 지키지 못한 아무르 티무르의 좌절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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