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22)
애정 없는 연애가 낳은 예쁜 사생아(私生兒) 비엔나 커피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도나우강은 왈츠의 경쾌하고 달콤한 선율(旋律)을 닮아 생기가 넘친다. 생기가 넘치는 것을 바라보면 시선을 타고 그대로 내 가슴에 전이(轉移)된다. 어디선가 호른으로 시작되는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아침에 괼러스도르프를 출발한 지 꼬박 한나절을 달리다 도나우 강변길로 들어섰다. 강을 마주하자 나는 댄스홀에 들어서서 적당한 파트너를 물색하는 눈으로 강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렸다. 푸르고 생기 넘치는 강물은 주위의 모든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묘한 마법을 부린다.
그 마법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된 비엔나는 다시 찬란히 빛나는 진주 목걸이처럼 도나우강을 장식한다. 프라하가 고풍경이 홀로 무대에서 단독공연을 펼치는 도시라면 비엔나는 고풍경과 현대가 서로 부둥켜안고 왈츠를 추는 조화로운 도시이다. 음악과 문학과 예술은 머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광천수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 살다 죽은 곳, 사랑의 환희와 삶의 무게와 실연의 상처가 깊이 패인 곳, 성공과 좌절을 겪은 곳 그 생생한 곳에서 시작한다. 도나우강 기슭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말고도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같은 뛰어난 음악가들이 태어났고 살다 죽었다. 뿐만 아니라 베토벤과 브람스 같은 이들도 이곳에서 활동했다.
한참 강가를 따라 달리다 도나우강을 반으로 나누는 20여 km나 되는 긴 한강의 여의도와 같은 섬을 가로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땀도 식힐 겸 카페에 들어가 크림을 듬뿍 얹은 아인슈페너 한잔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땀을 훔치려 모자를 벗고 유리창에 내모습을 비추어 보니 지금껏 이발을 하지 않아 봉두난발이 강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잘 어울린다. 가을 햇살이 좋은 날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왔다. 저쪽으로는 백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다른 한쪽으로는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가 나를 놀라게 한다. 이 섬은 다뉴브강의 범람(氾濫)을 막기 위해서 만든 인공 섬이라고 한다.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고 시원한 강바람을 타고 아코디언의 풀무가 품어내는 생기발랄한 음이 들려와 호기심 많은 나그네의 발걸음은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따라 빨려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자동반응하는 센서가 부착된 로봇처럼 음에 맞춰 춤을 춘다. 저렇게 활력이 넘치는 음악이라면 아파서 시름시름 하던 환자도 벌떡 일어나게 할 만큼 생기가 넘쳤다. 연주자의 실력은 괜찮았으나 악기는 너무 낡았다. 웬만한 중산층 가정의 결혼식이나 생일 파티에서 연주할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다. 이들에게 음악은 삶의 열정이었다.
그날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 황제의 생일 연회가 있었다. 그날따라 왈츠의 선율이 감동적이며 생동감 있게 흐르는 가운데 씨씨(SiSi)는 그날의 주인공인 언니 헬레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15살의 호기심 많고 아리따운 소녀 씨씨는 미래의 형부이자 사촌오빠와 언니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으로 춤을 추는 동안 저만치서 말없이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그런데 프란츠 요제프가 어린 사촌 동생과 눈을 마주치자 사랑의 여신은 장난기가 동했다. 젊은 황제는 그녀를 보는 순간 홀딱 사랑에 빠져 헬레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헬레나에게 주려고 들고 있던 붉은 장미는 씨씨에게 건네졌다. 그는 무릎을 살며시 굽히고 머리를 숙였고, 음악이 멈추고 춤이 멈추고 정적이 흐를 때 그의 입은 사람들 앞에서 제국의 황후가 될 사람이라고 선포(宣布)를 해버리고 말았다. 씨씨는 파티가 끝나기도 전 프란츠 요제프와 손을 잡고 배를 타고 도나우강을 따라 내려와 열렬한 환호 속에 비엔나에 도착하였다. 174cm에 48kg, 50cm 허리를 유지하기 위한 어린 황후의 노력은 필사적이었지만, 불행히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남편의 사랑을 오래 사로잡지는 못했다.
씨씨는 바이에른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랐고,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엄격한 궁정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때만 해도 서로의 다른 성장배경이 불화의 시작이 될 줄 몰랐다. 그리고 젊은 황제에게는 조금씩 지반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불안하고 오래된 제국이 있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의 불화로 딸을 낳자 양육권을 빼앗기고 그 딸은 얼마 안 있어 죽고 다시 딸을 낳고 빼앗기고 말았다. 나중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따돌림에 시달리던 황후는 건강이 악화되어 폐결핵에 걸리고 말았다.
아름다운 황후의 비운은 거기서 그치질 않았다. 병은 고쳤지만 외아들인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괴한에 의해 송곳에 찔려 암살(暗殺)을 당하고 만다.’ 사랑의 여신은 심술궂게도 그녀에게 아주 짧은 사랑의 기쁨과 오랜 사랑의 슬픔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프란츠 요제프황제가 바로 나중에 세계 1차 대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조약에 사인하고 군주제를 포기하는 문서에 서명했던 오스트리아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다. 씨씨 황후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은 ‘아름다운 샘’이라는 뜻을 지닌 쇤브른 궁전이다. 참으로 민비의 운명과 너무도 흡사해 가슴이 먹먹한 이야기이다.
오스만 튀르크 군대의 30만의 대군은 화약을 이용한 대포와 총으로 무장하고 오스트리아의 빈까지 진격해 왔다. 오스만군은 거의 비엔나를 점령한 상태였지만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매서운 추위가 닥치고 군 보급품에 문제가 생긴 오스만군은 철수했다. 이때까지 유럽인들은 오스만을 야만의 이교도로만 취급하고 무시했는데 뜨끔한 맛을 제대로 보았다. 오스만의 강력함에 뜨끔한 맛을 제대로 보았고 이때부터 유럽인들은 커피의 뜨끔한 맛을 제대로 보게되었다.
철수한 오스만 군대의 막사에서 500포대의 커피 원두가 발견되었다. 처음엔 낙타의 배설물(排泄物)로 알고 버리려던 것을 통역사가 그것이 바로 오스만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 원두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커피 원두를 갈아 물에 끊인 터키식 커피는 너무 쓰고 진했다. 여기에 우유와 꿀을 넣어 부드러운 커피가 되니 유럽인들의 입맛에 꼭 맞았다. 이렇게 탄생한 비엔나커피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이 잉태한 애정 없는 연애가 낳은 예쁜 사생아(私生兒)이다.
미국에 아메리카노가 없듯이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2차 대전 때 이탈리아에서 미군들이 커피를 큰 대접에다 타 먹는 걸 보고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고 한다. 생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는 비엔나에서 유래하지만 그런 종류는 30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코마향 가득한 것은 ‘멜랑지’라 하고 진한 크림을 듬뿍 얹은 것은 ‘아인슈페너’를 주문해야 한다. 낭만의 상징 비엔나커피는 아이러니하게도 오스만과의 참혹한 전쟁의 전리품이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이 낳은 어여쁜 사생아는 하나 더 있다. 초승달 모양으로 구부러진 빵 ‘크루아상(croissant)’이다. 크루아상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빵의 원조가 프랑스로 알고 있다. 비엔나를 포위한 오스만군이 성안으로 진입을 준비할 때 빵집 주인이 밀가루를 꺼내려 창고로 들어가다 오스만 군대의 공격개시 계획을 우연히 듣고 신고해 오스만군의 진입을 막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 훈장을 받은 빵집 주인은 이에 대한 답례로 오스만의 군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의 빵을 구워서 사람들에게 와작와작 씹어 먹도록 했다. 이것이 크루아상이다. 프랑스에 크루아상 이 등장한 것은 루이 16세 때부터였다. 왕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합스부르크가(家)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딸이고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생을 마친 사람이다. 공주로 프랑스에 시집간 후에도 이 빵 맛을 잊지 못해 프랑스로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4살에 부모에 의해 국가 간의 정략적 결혼을 하게 되고 나중에 프랑스 왕비가 되었다. 루이는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데다 외모도 볼품이 없었다. 이런 남편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호화 파티를 거의 매일 열고 사치에 몰입하였다. 왕가에 대한 불신과 그녀의 사치가 프랑스 혁명의 단초가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굶주림에 고통받던 시민들이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자 “빵이 없으면 크루아상을 먹지!”라고 철없는 소리를 하다가 시민들의 공분을 사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녀가 전파한 크루아상은 그녀를 미워했던 프랑스 국민이 오래도록 사랑하는 빵이 되었다니 역사는 참으로 웃슬프다.
우리나라에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서 몰래 빠져나온 햄과 소시지, 베이컨과 김치의 만남은 불륜에 가까운 것이었다. 여기서 부대찌개라는 어여쁜 사생아가 생겨났다. 부대찌개는 미군 부대에서 몰래 빼낸 고기로 만든 음식을 우리가 그렇게 맛있게 먹는 사실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서도 어려운 시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이중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이태리에서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우유와 계란 베이컨으로 만든 카르보나라는 크림 파스타가 우리의 부대찌개와 같은 사생아라고 한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부대 파스타가 맞겠다.
언제라도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은 비엔나는 왈츠의 고향으로 불린다. 왈츠는 그윽한 향내 나는 와인 잔을 들고 사랑을 속삭이듯이 아주 은은하면서도 경쾌한 선율을 타고 빙글빙글 돌아간다. 경쾌한 리듬에 맞춰 수많은 사람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던 때 한 발의 총성이 사라예보에서 울리면서 왈츠는 멈추었고 광란(狂亂)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천만 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고야 총성을 멈추었다. 그중 60%는 민간인이었으며, 2천5백만 명의 부상자가 생겼고 7백5십만 명의 실종자와 포로가 생겼다.
비엔나에서 왈츠가 멈추는 순간은 대재앙(大災殃)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에도 왈츠의 선율은 멈추었고 다시 한번 대재앙이 찾아왔다. 나는 한반도에서 소주잔을 마주치며 ‘위하여’하며 지르는 소리가 끊기지 않고 노래방의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길 달리면서도 간절히 기도한다. 그것은 끊기는 것은 한반도의 재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하여!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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