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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40)] 슬픈 불멸주의자: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책을 읽읍시다 (1040)] 슬픈 불멸주의자: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공저 | 이은경 역 | 흐름출판 | 376쪽 | 16,000원

 

 

 


[시 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왜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을 추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자존감에 목숨 걸며 여러 집단에 소속되고 각종 문화 활동에 전념하는 것일까? 캔자스 대학 실험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에서 함께 연구하던 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 이 세 학자는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의 퓰리처상 수상작 『죽음의 부정』을 접한 뒤 그들을 사로잡았던 의문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이들은 인간이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한다는 베커의 주장을 바탕으로 30여 년간 500건이 넘는 연구관찰, 실험을 통해 세계 심리학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 TMT)’을 정립한다.

 

『펠 레폰네소스 전쟁사』의 투키디데스로부터 소크라테스, 헤겔,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키에르케고르, 니체, 마르틴 부버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 문학가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인간의 핵심적인 고뇌임을 이해했다. 그러나 정작 인간의 정신을 탐구하는 심리학의 영역에서 ‘죽음’의 문제는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주제로 여겨졌다. 정신분석학자들과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의 죽음과 의미에 대한 통찰은 객관적 과학의 지위를 인정받고자 분투하던 주류 심리학계의 외면을 받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실험집단에게는 그들이 언젠가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통제집단에게는 별다른 언질을 주지 않는 실험을 설계하여 500건이 넘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죽음의 공포’가 소비, 투표, 재판, 자선활동, 애국심 등 인간의 판단과 활동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동기임을 입증했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죽음의 공포’가 주는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설계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한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과 다른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고도의 자기인식(self-awareness)과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자기 자신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신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안다.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이것이다. 대뇌 신피질이 확장되고 복잡하게 발달한 덕분에 오직 인간만이 눈앞에 죽음이 닥칠 기미가 전혀 없는데도 죽음의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

 

인 간은 이 공포에 대항하여 진시황제와 이집트인, 도교의 신선사상, 연금술사, 현대의 냉동인간처럼 진짜 불멸하는 실제 불멸성(literal immortality)을 추구하기도 했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250가지 비타민제를 섭취하는 레이몬드 커즈와일이나 기계와의 결합을 이야기하는 과학자들 역시 이런 경향의 선봉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러나 이보다 더욱 보편적인 것은 묘비, 명성 등 상징적 불멸성(symbolic immortality)을 추구하는 것이다. 문화는 우리가 어떤 위대한 존재의 일부이며 우리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존재할 것이라는 상징적 불멸성의 희망을 심어준다. 이 때문에 우리는 뜻있는 집단에 속하고자 애쓰고 창조적인 예술작품 혹은 과학적 업적, 자기 이름을 딴 건물이나 사람,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과 유전자, 또는 타인의 기억을 통해 세상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군사 원정을 다닐 때마다 자신의 영웅담을 기록할 서기를 반드시 대동했다. 21세기는 평범한 사람들도 명성을 추구하고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이다.

 

초 기 인류는 실존적 절망에 굴복하는 대신 특별하고 초월적이며 영원한 우주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의례, 예술, 신화, 종교가 주는 보호 및 불멸의 감각으로 마음을 무장한 우리 조상들은 수준 높은 정신 능력을 한껏 활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현대 세계를 이끈 신념 체계, 기술, 과학을 발달시켰다.

 

우 리가 공유하는 ‘문화적 세계관(cultural worldview)’, 즉 우리가 현실의 본질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믿음의 체계는 이 세상에서 가치 있게 행동하기 위한 청사진, 그리고 불멸성이라는 약속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한 편 우리는 자신이 속한 문화 안에서 스스로가 꼭 필요한 일원이라고 느껴야 한다. 이것이 ‘자존감(self-esteem)’,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행동, 가치 있는 사회적 역할, 소임을 다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내가 지닌 세계관에 달려 있다. 한마디로 자존감이란 자신이 의미 있는 세계에 기여하고 있는 가치 있는 참여자라는 느낌을 말한다. ‘나는 소중하다’는 이러한 느낌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극심한 공포를 다스린다.

 

저 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묘사해 보라고 하거나 죽을 때 육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라는 등의 암시를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수백 건의 실험을 진행해 왔다. 죽음을 떠올리는 행위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지만, 반대로 이러한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종 교인들이 부지런히 포교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문화적 세계관이 수적 우세에서 힘을 얻기 때문이다. 신념이 실존적 공포에 대항하는 데 효과가 있으려면 사람들이 그 신념이 맞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의존하는 핵심 믿음 대부분이 사실보다는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명확히 증명될 수 없다. 그래서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그 신념이 옳다고 더 확신하게 된다. 단 한 명만이 성서의 내용을 믿는다면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똑같은 믿음을 수억 명이 공유하면 이는 난공불락의 진실이 된다. 우리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동물 이상의 존재라는 의식은 이러한 난공불락의 진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가까이 느낄 때 이 진실을 입증하려는 욕구는 더 강해진다.

 

이 책에서는 세상과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흑백 논리의 사물 체계인 ‘절벽(rock)’ 세계관과 애매모호함을 수용하고 모든 신념은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내포한다고 인정하는 ‘소용돌이(hard place)’ 세계관을 소개한다. 절벽 세계관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악의 세계를 제거하려는 독선적 개혁 운동의 희생자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힌다. 소용돌이 세계관은 연민이 넘치는 세계관이지만 죽음 불안을 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는 이 양자 사이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주면서도 타자를 인정하는 관용적인 세계관을 형성해야 한다.

 

저 자들은 인간이 죽음의 공포에 대응할 때 두 가지 심리적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죽음을 의식하는 경우 ‘중심 방어(proximal defense)’가 활성화된다. 죽음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경우 ‘말단 방어(distal defense)’가 활성화된다. 끔찍한 교통사고를 접한 후 운전 속도를 줄이는 것은 효과적인 중심 방어 대책이며, 운전을 하기 전 자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해 독한 술을 몇 잔 걸치는 행동은 그렇지 않다.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여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자존감을 증대시키는 바람직한 말단 방어이며 명품 소비에 빠지는 것은 그렇지 않다.

 

자 존감이 높은 사람은 실존적 공포를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부자와 셀리브리티가 가치 기준이 된 지금의 사회는 대중의 자존감을 한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자존감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개인이 다양한 자기 개념을 갖도록 장려할 수 있다. 다양한 정체성은 다양한 사회적 역할과 부합하며, 각각의 정체성에는 나름의 고유 기준이 존재한다. 우리 중 누군가는 다른 직원에 비해 영업 실적은 낮고 골프 실력도 형편없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아버지이자 신실한 교회 신자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 심리적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루크레티우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축제에 질린 손님처럼 인생을 뜨면 어떤가?” 높은 자존감, 포용적인 세계관과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초연함일지 모른다.

 

 

작가 셸던 솔로몬 소개

 

프 랭클린 앤 마셜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다가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꾼 뒤 캔자스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린버그 교수와 피진스키 교수와 함께 자아 존중, 문화, 종족 간 대립 등에 대해 협동 연구를 시작했고 이는 공포 관리 이론의 창시와 실증적 평가 연구로 이어졌다. 현재 스키드모어 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 제프 그린버그 소개

 

펜 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에서 사회심리학 석사 학위를, 캔자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에 대한 탐구를 연구 주제로 삼고 있으며, 여러 차례 관련 상을 수상했다. 현재 애리조나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작가 톰 피진스키 소개

 

위 스콘신 밀워키 대학을 졸업한 뒤 캔자스 대학에서 사회심리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죽음, 자유, 고립과 같은 인간 존재의 문제에 엄격한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실험적 실존심리학 분야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콜로라도 대학 콜로라도 스프링스 캠퍼스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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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