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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57)] 올빼미 무덤

[책을 읽읍시다 (1057)] 올빼미 무덤

강희진 저 | 은행나무 | 268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강희진의 장편소설 『올빼미 무덤』. 폐쇄된 공간 속 어긋난 집단주의와 절대 권력에 의한 개인성 파괴라는 주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남해안의 낙도에 불과했던 풍도(風島)의 특이한 장례법이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다큐에 방영되면서 섬의 초분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인기 코스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한때 멸치파시로 번성했던 풍도는 예전의 명성과 영광을 되찾기 위해 온 주민이 나서서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수단은 바로 ‘영어’와 ‘SNS’. 풍도라는 작은 공간에 한국 사회에 떠도는 여러 문제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압축해냈다는 점에서 『올빼미 무덤』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풍자 소설로 읽어도 무방하다. 위기 속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집단의 생존본능에 포섭된 개인은 자유의지를 억압당하고 허깨비로서의 삶을 이어나간다.

 

한편 『올빼미 무덤』은 우리 문학에서 가장 역량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강희진의 처음과 현재를 함께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데뷔하기 전 습작기에 이 소설의 초고를 썼다고 한다. 그를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서사는 오늘날의 이슈와 현실 상황에 맞게 가필되거나 수정되었다. 또 오랜 시간이 배어든 서사의 골격 역시 더 단단해졌다. 작가는 우리가 발 디딘 현실의 탐구라는 자신의 장기이자 진면목을 그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낸다. 사건이 전개될수록 아이러니는 짙어지고 점점 안개 속을 더듬거리며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이다.

 

초등학교 영어 전문교사인 ‘나’는 남해안의 풍도로 분교장 발령을 받아 떠난다. 풍도는 남해안 오지 섬이지만 최근 관광지로 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우선 이곳은 남해군청과 국내 최대 통신사의 도움으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사용 환경이 남해안 작은 소도시보다 훨씬 용이하다.

 

남해안의 작은 낙도에 불과했던 작은 섬이 변화를 맞게 된 데는 방송의 효과가 컸다. 마을 숲속에 남아 있던 여러 종류의 초분과 육탈(肉脫)하고 남은 뼈를 추스르는 장면 등이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서 소개되면서 풍도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인기 코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이용해 섬주민들은 예전 멸시파시 때의 명성과 영광을 되찾기로 뜻을 모으고 세계화 추세에 맞춰 ‘영어’와 ‘SNS’를 생존 전략으로 내세운다.

 

섬에 닥친 뜻밖의 행운으로 마을 주민들은 남해군청의 도움을 받아 풍도 재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들은 초분, 미역, 멸치, 영어 교육 등을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광고하는 등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 사활을 건다. 풍도를 찾아온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아이패드를 갖고 있고 SNS를 하는 모습에 놀라고, 풍도 분교에서 이루어지는 영어 교육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이곳은 오래전에 마을로 시집온 필리핀 이주여성들의 노력으로 영어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풍도를 부흥시켜준 SNS로 인해 섬은 큰 위기에 직면한다. 풍도의 한 어부가 중앙일간지에 섬의 과거사에 대해 제보를 한 것이다. 오십 년대부터 팔십 년대까지 풍도의 멸치파시와 어장을 이끌었던 마을의 지도자 행대감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였다. 그가 풍도 외곽인 잘포리에 사는 한센인들이 섬을 떠나지 않는다고 죽창과 낫으로 죽였다는 것이다.

 

권력과 폭력은 별개가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터졌던 간첩조작 사건 등이 사실은 정당성을 얻고자 하는 권력자들의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권력은 집단주의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섬뜩한 것은 비단 국가만 저질러온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찍이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 보았고 이번 강희진의 소설 『올빼미 무덤』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는바 내부의 질서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인을 배척하거나 억압해온 사실을 우리는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비정상으로 분류된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폭력은 대단히 잔혹했고 여전히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피해자들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올빼미 무덤』을 통해 작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더라도 그런 권력자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는 다소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그’가 우리 욕망의 거울이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것은 권력의 게임이다’라고 미셸 푸코는 말했다.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인정하고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권력 또는 권력의 일부가 되어 타인을 지배하려 드는 욕망의 캐릭터가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각성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금 ‘올빼미의 밤’이 찾아온다. 부지불식간 우리를 덮치려 들지 모른다.

 

 

작가 강희진 소개

 

경남 사천에서 출생, 그곳에서 성장하고 연세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즐겨 대학 때까지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문학보다 영상에 더 끌려 영화판을 기웃거렸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영화 시나리오로 썼던 작품이 KBS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 몇 년 동안 다큐드라마를 집필했다. 그 당시 취재차 만났던 여러 사건의 주인공들―연쇄살인범, 사형수, 사기꾼, 성전환자들로부터 많은 충격과 영감을 받았으며, 그때의 경험은 이후 소설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편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각종 문학상 공모 본선 및 최종심에서 미역국을 먹은 지 만 10년. 대한민국 최다 본선 진출 작가로 끝날 줄 알았다. 마지막 응모라고 생각하고 탈고한 『유령』으로 ‘세계일보’에서 주최하는 제7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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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