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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01)] 세 가지 이야기

[책을 읽읍시다 (1101)] 세 가지 이야기

귀스타브 플로베르 저 | 고봉만 역 | 문학동네 | 204쪽 | 1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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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문학의 수도사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발표한 유일한 단편집이자 마지막 완성작 『세 가지 이야기』. 말년에 이르러 어머니와 친구의 죽음 등 개인적인 고통과 함께 글쓰기의 어려움을 느끼며 회의에 빠져 있던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앞으로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 확인하려는 마음에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을 시작으로 「순박한 마음」 「헤로디아」를 차례차례 써나갔고,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인 플로베르의 단편들은 평단 및 대중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작가가 살던 동시대의 프랑스 북부에서부터 찬란한 기독교의 중세를 거쳐 이교도의 시대였던 고대까지, 전혀 다른 시공간 속을 살아가는 세 인물의 서로 다른 이야기는 각각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모두 합쳐진 『세 가지 이야기』라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커다란 주제와 통일성을 지닌다. 플로베르가 『세 가지 이야기』를 출간하며 애초의 집필 순서와 달리 새롭게 배치한 세 단편을 차례대로 따라가다보면, 그 순서가 그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순박한 마음」에는 부르주아 가정의 하녀로 평생을 살아가며 첫사랑의 배신, 조카와 주인댁 식구들의 죽음, 결국에는 앵무새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을 감내해야 하는 펠리시테의 가련한 초상이 있다.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속 주인공 쥘리앵은 사냥에 몰두하다가 부모를 살해하게 되리라는 저주를 듣고 평생 비운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사냥을 향한 욕망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다.

 

또한 「헤로디아」의 등장인물 각각의 모습은 어떠한가. 유대인에 대한 증오, 부패와 탐욕, 음란함과 잔혹함이 만연한 유대 지역의 성채에서 벌어지는 연회는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 편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 플로베르는 인간의 결핍과 그것이 욕망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드러내는데, 「순박한 마음」에서 결핍과 외로움으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펠리시테의 모습이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속 쥘리앵의 사냥에 대한 욕망으로, 「헤로디아」에서 무수한 인물의 권력, 통치, 육체적 욕망으로 이어지며 발전된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이러한 결핍과 욕망의 발현으로 작품을 마무리하는 대신, 욕망하는 세계와 욕망이 좌절되는 세계 사이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낸 인물들이 맞이하는 특별한 죽음을 통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순박한 마음」에서 죽어버린 앵무새를 박제하고 그 모습에서 성령으로서의 신을 느껴왔던 펠리시테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 성체축일의 예식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커다란 앵무새가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환영을 보며 고통스러운 삶에서 해방된다.

 

다음 이야기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의 주인공 쥘리앵의 죽음 또한 경이로운 순간이다. 부모 살해라는 엄청난 죄를 저지른 뒤 순교자적 삶을 살던 그는 나룻배의 손님인 문둥이를 집에 들이고 그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자 온몸으로 끌어안는 순간 예수로 변모한 문둥이에 의해 천상으로 인도되는 ‘구원’의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이야기 「헤로디아」 속 요카난(세례자 요한)의 참수는 한층 직접적으로 그 성스러움을 드러낸다. 참수를 명받은 사형집행인이 요카난의 감옥 앞에서 대천사를 보았다며 몸을 떠는 장면, 텅 빈 연회장에서 자신 앞에 놓인 요카난의 머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헤로데의 모습은 요카난의 죽음이 가진 이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와 같이 이야기 끝에서 인물들의 죽음과 함께 등장하는 앵무새, 문둥이, 참수당한 예언자의 예언은 차례대로 성령과 성자와 성부라는 ‘성삼위일체’를 구현하며 초월적인 존재인 신과의 만남을 대변한다.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세 이야기를 통해 플로베르는 ‘정신적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한 셈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독립적인 텍스트로서 성공적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모음집 안에서 하나로서의 전체를 형성하면서 더욱 완전해진다는 점에서 『세 가지 이야기』는 플로베르의 위대함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주제의 교훈성, 즉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용과 형식의 완벽한 일치에 의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플로베르는, 결국 예술의 가치를 예술 그 자체에서 찾으려 했던 작가다. 그는 내용과 형식을 조화시키며 자신의 궁극적 의도를 보여주고 재현한다. 전체적인 구조를 통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 한번 내재화시킨다는 점에서 『세 가지 이야기』는 플로베르의 재능이 모든 차원에서 조화를 이룬 작품이자 독자의 감각을 깨우는 책이다.

 

특히 시와 같은 리듬감과 첼로의 선율 같은 울림, 비수와 같은 날카로움을 지닌 플로베르 특유의 문체를 눈여겨볼 만하다. 플로베르에게 ‘아름다운 주제’라든가 ‘추한 주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문체 그 자체야말로 사물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 속의 세 가지 짧은 이야기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토리도, 눈물을 쏟게 하는 극단적인 비극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플로베르는 독자에게 무엇을 약속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문장의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가난한 하녀의 소박한 일생,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세밀화의 세계, 성서 속 친숙한 일화로 구성된 세 편의 이야기는 이렇듯 아름다운 문체로 탄생했다.

 

 

작가 구스타브 플로베르 소개

 

1821년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고, 내과 의사의 딸인 어머니는 플로베르의 삶과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어린 플로베르는 병원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염세적인 사고를 갖게 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었고,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그의 정신을 뒷받침하는 양식이 되었다. 염세주의와 해학 정신은 자동차의 두 바퀴처럼 두 축을 이루며 끝까지 플로베르의 사고 밑바탕에 존재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플로베르는 당시의 우울한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고 ‘광기와 자살 사이에서 방황하는’소년이 되어 많은 습작을 한다.

 

바이런의 조숙한 독자이자 셰익스피어의 광적인 팬이었던 십 대의 플로베르는 여행 중에 젊고 생기 있는 연상의 여인 엘리자 슐레징거를 만나게 된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완벽한 여인으로서 슐레징거는 평생 그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녀에 대한 오랜 사랑은 그의 삶과 작품을 결정짓는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열여덟 삶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으나, 신경질환으로 인해 삼 년 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 마을로 돌아와 홀로 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글쓰기에 전념했다.

 

초기 작, 특히 『성 앙투안의 유혹』에서 그는 대담한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쳤으나, 이후에는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예술적인 객관성을 획득하고 산문 스타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낭만주의적인 풍성함을 혹독하게 훈련하였다. 이렇게 예술적 완전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그에게 커다란 고역임은 물론 생전에 제한된 성공만을 가져왔다. 1857년에 『마담 보바리』를 출간하고 나서는 대중적인 도덕률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이국적인 소설 『살람보』(1862)는 고고학적인 세부 사항의 외형적 묘사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자기 세대의 도덕적인 역사를 다루려는 『감정 교육』 (1869)은 비평가들의 오해를 샀으며, 정치적 희곡 『후보자』(1874)는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 했다. 『세 개의 우화』(1877)만이 완전한 성공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플로베르의 기분, 건강, 재정이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였다. 1880년 사후에 그의 미완결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와 『서한집』이 출간되는 것을 기화로 그에 대한 평가가 서서히 힘을 얻고 명성 또한 높아지게 되었다. 내용과 형식이 분리되지 않는 생명체처럼 완결된 작품을 꿈꾸던 작가는 1880년 5월 미완의 작품 『부바르와 페퀴세』의 원고를 책상에 남긴 채 뇌일혈로 사망했다.

 

소설에서 사실주의 사조를 처음 실현한 선구자로 평가되는 플로베르. 그는 오로지 문체의 힘으로 글을 버티게 한다는 '문체 중심주의'를 통해 프랑스 산문정신의 정수를 실현했으며, 소설에서 작가의 비개입, 몰개성을 주장한 것 역시 후대 소설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는 관습적인 도덕과 사회적인 사실성의 차원을 넘어 진리에 도달하고 미를 창조하려 했던 ‘모더니티’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그는 사실주의와 낭만주의, 자연주의와 구조주의에 이르는 현대의 예술 사조를 이끌어내는 씨앗으로서 조르주 상드, 에밀 졸라, 기 드 모파상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19세기 위대한 프랑스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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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