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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91)] 차나 한 잔

[책을 읽읍시다 (1191)] 차나 한 잔

김승옥 저 | 민음사 | 168쪽 | 5,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차나 한 잔』에는 표제작 「차나 한 잔」을 비롯해 1965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서울 1964년 겨울」과 1977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서울의 달빛 0장」 그리고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야행」에 이르기까지, 대도시 서울을 배경으로 한 네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김승옥은 이십 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들 작품을 발표했고 당대의 시대정신을 오롯이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다채로운 매력과 독자적인 감수성을 글줄 하나하나에 불어넣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작품은 물론 「무진기행」이지만 이곳에 실린 네 편의 작품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왜냐하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작가 김승옥’을 단숨에 ‘한국 문단의 신화’로 만든 주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감각적이고 섬세한 시선과 작품 속에 사용한 언어적 기교를 통해 이뤄진 김승옥만의 참신함은 ‘전후 문학의 기적’, ‘감수성의 혁명’, ‘단편 소설의 전범’ 등 한국 문학사상 가장 화려한 찬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한국 소설을 ‘김승옥 전’과 ‘김승옥 후’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우리 문학의 경향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또 김승옥의 소설들은 기존의 도덕적 상상력과 윤리적 세계관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감각적인 시선, 기발하고 섬세한 묘사로 현실과 환상을 조화롭게 담아냈다. 특히 ‘사회’라는 틀에서 벗어나 ‘개인’의 감성과 감각에 의해 포착되는 현실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이전 세대의 소설들이 지니지 못했던 독특한 감수성을 소설 속에 부여하였다. 심지어 김승옥은 식민지 시대의 교육을 받지 않은 ‘첫 한글세대’였고, 따라서 그의 언어적 기교는 최초로 순우리말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한국 소설에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미증유의 지침이 되기도 했다.

 

『차나 한 잔』에 수록된 네 편의 작품들은 저마다 ‘작가 김승옥’의 문학적 성취와 한국 현대 사회 그리고 당대인의 감수성을 품고 있다. 불과 오십여 년 사이에 ‘살아 있는 전설’이 된 김승옥과 ‘한국 현대 문학의 고전’이 된 그의 작품들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다시, 또 새롭게 읽어 보는 작업은 충분히 흥미롭다. 전후 한국 사회가 21세기에 이르는 동안 무엇이 변했고 어느 것은 변하지 않았는지, 그 당시에 독자들을 매혹했던 이야기가 지금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지, 그땐 도무지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새로이 드러나지는 않았는지…. 김승옥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몌별’이라는 한 단어로 영원히 기억될 「서울의 달빛 0장」, 무미건조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고자 하는 도시인의 일탈을 그린 「야행」,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위태한 나날을 보내는 한 만화가의 하루를 블랙 코미디로 그려 낸 「차나 한 잔」, 시답잖은 술자리가 헛헛한 하룻밤 악몽으로 변해 버린 「서울 1964년 겨울」, 우리는 이제 이들 작품을 감탄과 함께 조금은 비판적으로,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해 가며 음미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대의 삶’에 다시금 의미의 조명을 비출 수 있을 테며, ‘김승옥의 작품’ 또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작가 김승옥 소개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고, 1945년 귀국하여 전라남도 순천에서 성장하였다. 순천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960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4·19세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1962년 단편 「생명연습」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같은 해 김현, 최하림 등과 더불어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하고, 이 동인지에 「건」, 「환상수첩」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김승옥은 대학 재학 때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환상수첩」, 「건」,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등의 단편을 동인지에 발표했다. 이후 「역사(力士)」(1964),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의 단편을 196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서울의 달빛 0장」,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등을 간헐적으로 발표하면서 절필 상태에 들어갔다.

 

6·25전쟁이 끝난 후 나타난 문학의 무기력증을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받으며 1960년대적인 특징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1950년대 작가들이 견지하고 있었던 엄숙주의, 교훈적인 태도, 도덕적 상상력 등을 뿌리째 흔들어버렸다는 점에서, 그것을 동시대의 비평가들은 감수성의 혁명이라 불렀다.

김승옥의 소설은 대체로 개인의 꿈과 낭만을 용인하지 않는 관념체계, 사회조직, 일상성, 질서 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성의 관념체계, 허구화된 제도, 내용 없는 윤리감각이라는 일상적인 질서로부터 일탈하려는 열망, 곧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이 김승옥 소설의 중심적이고 일관된 내용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소설은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이 현실을 압도하는바, 낭만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환상수첩」, 「확인해 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생명연습」 등의 초기소설은 환각이나 환상을 쫓는 삶 혹은 현실을 초월한 삶에 대한 강렬한 동경이 두드러진다. 「무진기행」 이후 현실의 엄정한 법칙성을 인정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며, 그의 후기소설은 초기의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 대신에 꿈이나 환상을 잃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환멸과 허무의지로 가득 찬다.

 

「서울 1964년 겨울」, 「야행」, 「차나 한잔」, 「염소는 힘이 세다」, 「1960년대식」 「서울 달빛 0장」 등 김승옥의 후기소설은 산업사회의 한 기호로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상실감을 주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로스적 열정으로 기성의 질서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의도를 담은 「보통여자」, 「강변부인」 등에서는 김승옥 소설이 지녔던 문제적인 성격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므로 김승옥의 작품 속 인물들은 반짝이는 빛의 내면과 동시에 속된 일상의 외관을 동시에 지닌 역설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빛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일상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타락한 윤리와 무책임성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1960년대만 유효할 수 있을 뿐이다. 197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왜곡된 근대화의 모순 그리고 이에 대한 응전 방식으로 발화하는 새로운 엄숙주의 앞에서는 무력하게 좌초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승옥 소설은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조응력, 배경과 인물의 적절한 배치, 소설적 완결성 등 소설의 구성원리 면에서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4·19혁명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문학적 언어로 환치시키면서 전후세대문학의 무기력증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에는 순천문학관에 그의 생애와 문학 사상을 기리기 위한 김승옥관이 마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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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