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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391)] 완전사회

[책을 읽읍시다 (1391)] 완전사회
 
문윤성 저 | 아작(디자인콤마) | 480| 14,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세기 중반, 전쟁의 참화를 뒤로하고 다시 번영하기 시작한 인류는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고자 타임캡슐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UN은 타임캡슐의 궁극적인 형태로 살아있는 인간을 미래로 보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저온 상태로 오랫동안 잠을 자면서 육체의 노화를 저지하는 새로운 방식이 고안되었고 과학계는 이 특별한 상태를 견뎌낼 수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준비된 인간을 찾아 전 세계를 뒤진다. 질병 유무와 운동 능력부터 고도의 지적 능력까지, 가혹한 테스트를 통해 선택된 사람은 한국인 남성 우선구. 그는 어머니의 만류도 뿌리치고 미래를 향해 가기로 하고 오랜 잠에 빠져드는데, 이윽고 긴 잠에서 깨어난 그가 마주한 22세기 미래 지구는 여자들만 살아가는 여인천하.

 

완전사회의 주인공 남자는 타임캡슐에 탑승한 채 161년 동안 잠자다가 지구에 여성만 존재하는 미래 세상에서 깨어난다. 그는 처음에 미래인들과 상당 기간 서먹한 관계를 지속하게 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인들이 주인공의 존재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 앞서, 작품 서두에서 주인공이 기나긴 수면에 들어간 시대적 배경부터 흥미롭다. 작중에서 모든 이들은 어렴풋이 인류 문명의 미래에 대해 막연한 절망을 지니고 있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막다른 끝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그 극복을 위한 노력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그저 인류 문화의 유산을 남기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서사의 시작이 그야말로 거대한 비관주의가 전제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핵무기를 사용하는 3차 대전이 발발하여 전 세계 인구의 90퍼센트가 몰살되는 끔찍한 역사를 등장시키고 그 절망에서 가까스로 일어난 인류가 또다시 4차 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핵무기를 능가하는 기상 무기, 생화학 병기 등으로 세계 인구가 고작 9천만 명 정도만 생존한다는 더 참혹한 전개이다.

 

작가는 이런 귀결의 가장 큰 책임이 바로 과학자들에게 있다고 보았다. SF로서 이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주제 중 하나이다. 이어지는 역사에서 과학자들은 정치인들에게 휘둘려왔던 전철을 더 이상 밟지 않겠다며 과학센터를 세워 세계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살아남은 인류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단기간에 비약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이룩하고 세상을 전에 없던 낙원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렇듯 초국가적인 과학센터가 세계를 지배했지만, 인간 사회의 숙명인 듯 또다시 갈등의 씨앗은 싹트고 세상은 속절없이 5차 대전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 5차 대전이야말로 인류 최후의 전쟁이라 할 만한 여성과 남성 간의 성 대결로 펼쳐지는 것이다.

 

작가가 그린, 여성이 지배하는 미래 세상은 인류 역사를 독특한 사관으로 해석한다. ‘왕후문화 웅성문화 양성문화 진성문화.’ 이를 포함해서 완전사회에는 작가가 실로 많은 공을 들인 것이 역력한 인문 사회적 상상력들이 세심하게 배어 있다. 과학기술적 상상력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어쩌면 그 이상으로 두드러지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독창적 통찰이 돋보인다.

 

한국의 SF 창작계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지금 시기에 문윤성 작가의 완전사회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은 크나큰 세례이자 선물이다. 이 땅의 SF 독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와 미래를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감히 묻고 싶다. 이미 50년도 더 전에 제시되었던 완전사회의 상상력에 과연 당신은 얼마나 근접할 수 있겠냐고.

 

21세기 들어 완전사회를 다시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되새기고 싶다. 곱씹어 볼수록 그 의미심장함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온다. 바로 진성선언이다. 이대로 남성들의 반성 없이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오래지 않아 우리는 곧 현실에서 이러한 여성선언을 만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작가 문윤성 소개


본명은 김종안(金鐘安). 1916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시절 지금의 경복고등학교의 전신인 경성제2고보에 재학 중 일본인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하고,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공사장, 광산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소설과 시를 썼다. 독학으로 설계와 배관을 익혀 뒤에 대승기업사라는 공조회사를 차려 운영하기도 했다.

 

1946년 단편 신천지에 발표하였으나 문단 활동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51세가 되던 1965주간한국의 제1회 추리소설 공모전에 완전사회로 당선, 1967년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본격 SF 장편소설로 평가받으며, 당시 기성 문단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작가는 한국추리작가협회의 초창기 멤버로도 활발히 참여하며 추리소설의 과학화를 늘 주장했는데, 탄탄한 과학적 설계를 바탕으로 덴버에서 생긴 일, 하우로드의 두 번째 죽음, 붕운동 회상, 전원 랩소디등 많은 단편을 발표했다. 장편소설로 일본심판, 사슬을 끊고가 있으며, 희곡 상속자와 장편 서사시박꽃을 내기도 했다. 2000824일 수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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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