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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404)]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책을 읽읍시다 (1404)]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조경란 저 | 문학과지성사 | 274| 13,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조경란의 일곱번째 소설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로 이뤄진 이번 책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살피는 세심한 문장과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고백 조의 어조를 통해 작가가 지난 4년여의 시간 동안 고민해온 삶의 문제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수록 작품 중 다수에서 사람 사이의 시작되는 작은 변화들이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풀어내며 개인과 타인의 문제를 각자의 삶과 연결해낸다.

 

더불어 조경란이 지속적으로 다뤄온 가족의 형태에 관한 문제를 섬세하게 파고드는 탐구 의식 역시 이번 소설집에서 이어진다. 온전히 나로서의 나, 가족 속의 나, 혹은 사회 속의 나 등 수많은 개인 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에게 해당할 수도 있는 소설 속 삶의 여러 모습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광장,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 혹은 시시때때로 지나치는 곳. 어느 도시에 가든 우리는 곧잘 광장을 통과하곤 한다. 아주 새로운 도시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도시에서도 광장의 모습은 그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 따라 같다가도 다르다. 조경란의 이번 소설집에서 광장의 이러한 특성은 작품 곳곳에 자리한다. 19년 동안 같은 일을 해온 그녀는 낯선 도시의 광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거리음악가를 만나고(매일 건강과 시), 작가 는 로마의 수많은 광장들을 엄마와 함께 걸어 다닌다(492번을 타고).

 

그중에서도 1130속 주인공 이 머무는 광장은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며 광장의 의미를 좀더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훈은 미래를 위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사는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다. 지하철역 앞에서 미키마우스 탈을 쓰고 어학원 홍보 일을 하는 훈에게 지하철역 앞의 공간은 엄청난 사람들이 오가는 동네의 광장이자, 스스로를 노출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심부름차 한 농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처 광화문에서 환승하지 못한 채 버스에서 내리게 되고 떠밀리듯 훈은 집회 무리에 섞이게 된다. 도심 집회 행진을 위해 모인 많은 인파 속에서 어디로 가는지 분명히 알기 어렵지만 훈은 그저 지금 여기를 통과하는 데에 집중한다.

 

앞선 지하철역 앞의 광장에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 각자의 목적을 갖고 그저 유동하고 있었다면 여기서의 광장에서는 밀고 나가야 해요라는 시위 참가자의 말처럼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각기 다른 곳에서 모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에서 훈 역시 미키마우스 탈을 벗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한 장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광장을 지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다. 마치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한 발 내딛는 일뿐이라는 듯이.

 

도심 집회와 촛불, 광화문, 인파 등의 키워드는 우리로 하여금 2016년 많은 사람들을 결집시켰던 집회 현장을 연상케 하면서 그 안에 우리를 그리고, 청년 을 떠올려보게 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 생활하던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공개된 장소에서 공개된 모습으로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에서 우리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서로 하나의 거대한 무리가 될 수 있는, 서로에게 서로가 힘이 될 수 있는 희미하지만 거대한 공동체를 상상해볼 수 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따로 또 같이 지금 이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말이다.

 

결집된 무리를 지나 개방된 길에서 훈은 소리 내어 말한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오, 오늘이 말해주고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는 내, 내 내일이 말하게 하라.” 미래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오늘은 오늘의 삶을 살고, 내일은 내일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훈의 말은 결국 작가 조경란이 좀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매일매일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지지가 아닐까.

 

그럼에도 우리는 한 공간에 단순히 모여 있는 것만으로는 우리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모여 있다는 것은 그저 모여 있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서른일곱 살의 아버지의 양자이다. 나는 친구도 없고 누구를 깊이 사귀어본 경험도 없지만 부모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 아버지에 따르면 다른 집에서 온 사람이 바로 . 그리고 두 남자의 집에 새로운 가사도우미 경아가 찾아온다. 경아는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과거를 지닌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나에게 경아는 가시 없는 저 늙은 오이로 요리를 할 줄 아는 젊은 여자애”, 무엇보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내 삶에 성큼 들어온 사람이다.

 

경아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면 나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를 경아에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경아의 질문들.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 경아의 등장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나와 아버지, 그리고 경아, 이 세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는 사이, 즉 가족으로 발전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이다.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로서의 말은 이 소설집 내에서 매우 일상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짧은 문장들로 시를 쓰는 그녀(매일 건강과 시), 김진희라는 여자아이에게 전하는 정미의 말(김진희를 몰랐다), 선생님과 자신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더듬더듬 털어놓는 남자(봄의 피안), 오랜 이별을 앞두고 미처 얼굴을 보고 하기는 힘든 이야기를 서간체로 풀어내는 남자(오랜 이별을 생각함) 등 작가는 마음에만 머물던 자신의 이야기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표제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경아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태풍과 홍수로 떠내려가는 집에서 구조되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헬리콥터에서 내려온 밧줄이 한 명 한 명을 다시 생()으로 끌어당길 때 그렇게 연결됨으로써 그들에게 또 다른 내일이 주어졌듯이, “떳떳하지 못한 마음으로평생을 살았던 나에게도 작은 일상이 모여 만들어진 이들과의 관계는 나를 구해내는 끈처럼 작용하며 우리가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보게 한다.

 

어쩌면 우리를 잇는 말들은 거창한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주 일상적인 안부 인사, 서로를 향한 관심 어린 질문 하나하나에서 시작된 서로의 이야기, 이런 들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최초의 점이 아닐까. 아주 작은 말들에서 시작된 대화가 우리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따로 또 같이 오늘을 통과할 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작가 조경란 소개


주변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우수를 부감시키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가 조경란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 후에 서울예대 문학창작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6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다 할 인간 관계도 없이, 괴롭고 암담하게 그냥 막연히 책만 보며 세월을 지내다가 어느날 새벽 불현듯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며 문학에 도달했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조경란은 자신이 왜 소설을 쓰는 지 잘 모른다. 그러나 단지 분명한 것은 쓰고 있을 때가 가장 즐겁다는 것, 쓰고 있지 않으면 내가 존재하고 있기는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쓰기라는 행위는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에너지의 원천이다.

 

점점 소설 속 인물들을 소통하게 만드는 등 폭력적인 세계, 타인과의 소통의 단절을 주로 그린 초기 작품 세계에서 점차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주목되는 작가는 지인들과 맥주 마시는 시간을 좋아한다. 저서로는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나의 자줏빛 소파』『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중편소설 움직임,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백화점등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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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