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읍시다 (1457)] 의자왕 살해사건: 은고
김홍정 저 | 솔 | 362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치밀한 역사의식과 장엄한 서사로 웅장한 스케일의 역사적 상상력을 선보였던 작가 김홍정이 또 하나의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진취적인 여성들을 집중 조명해온 작가는 백제 패망의 원인을 ‘은고’라는 한 여인에게 귀착시킨 『일본서기』의 기록을 발견하고 강력한 의구심을 품게 된다. 신작 『의자왕 살해사건』은 사서 속에 잠들어 있던 백제의 마지막 왕비 ‘은고’를 백제의 운명을 손에 쥔 강력하고도 매혹적인 여인으로 재탄생시킨 문제작이다.
또한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금동대향로’를 장식하고 있는 주작새는 백제의 혼맥을 지키는 비밀결사체 ‘거믄새’로 부활하여 김홍정 작가만의 특별한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중원의 회복’이라는 대부여의 꿈을 계승한 새로운 무사집단으로 탄생하였다.
남부여 654년, 의자왕의 대부인 은고는 원로귀족인 좌평 흥수를 타파하기 위해 해루 장군에게 좌평을 사구부 옥에 가두도록 명한다. 그녀는 노회한 귀족들을 견제하고 젊은 장군들을 기용하여 싸움에서 이기는 등 약해져 있던 왕권을 강화하는 대개혁을 이끌어간다.
660년 여름, 당의 장수 소정방과 서라벌 장군 김인문이 이끄는 13만 대군이 덕물도로 침략하며 남부여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포로로 끌려간 낙양성에서 은고는 대부여의 혼을 지키고자 결성된 비밀조직 ‘거믄새’와 함께 패망한 백제 부흥을 위해 계략을 짜기 시작하는데….
사서 속에서 단 한 줄로 언급되는 은고는 ‘요망한 군대부인’ 또는 ‘의자왕의 처’로 기록이 남아 전할 뿐이다. 군대부인과 은고가 동일한 인물이며 백제 멸망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설에 의문을 제시하는 『의자왕 살해사건』에서 은고는 화검술을 겸비한 대담한 책략가이자 사랑과 대의 사이에서 신념에 따라 실천하는 능동적인 여성으로 등장함으로써 ‘은고’란 여인의 실체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의자왕 살해사건』은 ‘의자왕과 삼천 궁녀’설로 왜곡되고 축소되어왔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기존의 사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재구성하였다. 서라벌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왔던 남부여인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고구려와 왜倭 나라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으면서 당과는 대척하였던 당대의 국제 정세를 세밀히 묘사한다. 660년 6월, 서라벌의 군사지원을 받은 당나라의 13만 대군에 남부여는 패하게 되고, 소설은 대왕 의자를 비롯하여 은고와 오십여 명의 신하, 만이천여 명의 백성이 낙양성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의 이야기’를 새로운 상상력으로 펼쳐 보인다.
현재 중국 허난성 뤄양(낙양)시에 있는 용문석굴을 배경으로 측천무후의 용안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비로자나불과 일만오천 부처의 모습을 구현한 만불상이 바로 당 고종 때 포로로 끌려간 오백여 명의 백제 석공들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가정에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작가의 상상이 더해지며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의자왕 살해사건』은 낙양성으로 압송된 그해 겨울에 “병들어 죽었다”라고만 기록되어 전하는(『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의 미스테리한 죽음을 역추적해 가는 스릴러적 재미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은고의 행적과 죽음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전하는 것이 없는 것 또한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백제 멸망 이후 660년에서 663년까지 의자의 아들 여풍이 백제부흥운동을 이끌며 나당연합군과 장렬히 맞서게 된 전후에는 도대체 어떠한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의자왕 살해사건』은 거믄새의 활약과 함께 은고를 중심으로 한 장엄한 서사를 보여준다.
작가 김홍정 소개
1958년 공주 출생. 공주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후 공주여자고등학교, 공주고등학교 등에서 30여 년 교사로 근무했다. 공주교사협의회장과 전교조공주지회장으로 활동하였고, 우리 쌀 지키기 공대위, 한미FTA 공주·부여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공주·부여 농민들과 함께 FTA쌀시장개방 반대투쟁운동을 했다.
식량주권의 가치를 단순한 경제활동의 한 물목으로 여기는 권력집단, 자본가들과 이반된 농민들의 저항의식의 근본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장편소설 『금강』을 구상했다. 작가는 2005년 쌀시장개방 반대투쟁 이후 오랜 기간 역사 속에 자리 잡은 민중의 저항성이라는 주제에 천착하였고, 세월호 침몰로 숱한 시민들이 희생되고 있음에도 방관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저항의식을 장편소설 『금강』을 통해 극화했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다시 바다보기』, 소설집 『그 겨울의 외출』 『창천이야기』가 있으며 장편소설 『금강』(전6권)과 여행산문집 『이제는 금강이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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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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